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역설

원두는 열을 머금고 있다는데, 그럼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차가운 열원인가?

by 금교준

차가운 열 덩어리


책을 보다가 이런 내용을 봤다. 커피와 차의 차이에 대해서. 조용헌 작가님의 [방외지사]에 따르면 커피는 양의 기운을, 차는 음의 기운을 품고 있다. 왜일까? 이유가 정말 흥미롭다. 커피는 태양열을 많이 받는 뜨거운 지방에서 자란다. 심지어 원두로 가공되기 위해서는 ‘뜨거운 불’에 볶아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면 몸에서 열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차는 어떨까? 녹차를 예로 들어보면, 연평균 섭씨 13~16도에 강수량이 1,300mm 이상인 지역에서 자란 차나무를 사용한다. 더군다나 3~4월 초경에 딴 차를 최고로 치는데, 차나무에서 딴 여린 잎을 건조하는 과정을 거친다.(물론 찻잎도 ‘덖기’라는 익혀내는 과정이 있다. 그래도 결국 서서히 낮은 온도로 덖으며 건조하기 때문에 커피에 비해 한기가 강하다고 보는 것 같다.) 따라서, 주로 스님들이 수행하거나 명상하실 때 많이 마신다. 녹차를 마시면 열이 낮아지면서 몸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참선에 적합해서다.

여기서 나는 열을 낸다는 커피에 집중해봤다. 왜? 최근 생긴 ‘얼죽아’라는 말에 편승하듯,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푹 빠져있기 때문이다.(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로 겨울에 많이 쓰인다.) 실제로 카페에 가서 뭐 마실래? 하면 ‘나는 아아’라고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체 열을 내는 커피에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만든 것이 왜 그리 열풍인 걸까? 열기를 얼음이 식혀주기 때문인 걸까? 그래도 몸에서 열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을 텐데? 나는 이런 생각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참 역설적이라는 걸 느꼈다. 본업 중에 컨설팅 업체 사람들과 식사를 하며 이 내용을 논의했는데, 누군가 유사한 개념 한 가지를 제시해줬다. 바로 ‘스톡홀름 증후군’이다.


스톡홀름 증후군, 이해되기 힘든 역설의 한 예


스톡홀름 증후군은 범죄심리학 용어로,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거나 동조하는 현상을 말한다. 다른 말로는 막대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걸 말한다. 문득 훈련받을 때가 생각난다. 10명의 교관님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악독했던 ‘두두’라는 교관님이 있었다. 그분은 누구보다 거칠고 강하게 우리를 훈육하셨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주적’으로 그가 지목된 것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또 모순적인 게, 마지막에 가서는 그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교관님’이 되어 있었다. 이거야 말로 스톡홀름 증후군의 가장 좋은 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단순했다. 평소 악독하게 괴롭히던 사람의 이미지를 한마디 칭찬으로 180도 바꾼 것이다.(훈련받을 때는 흡사 인간의 ‘무력함’, ‘바닥’을 경험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참 단순했었다.) 실제로 그 교관님은 후반부에 갈수록, 온갖 명언이란 명언들을 마구 쏟아내셨다.


“지금까지 너희가 견뎌온 시간들을 떠올려라. 너희는 강하다. 오늘의 결과가 이를 증명해준다.

앞으로 남은 기간도 훌륭하게 이겨내리라 믿는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다. 수고했다.”


사실 명언이랄 것도 없다. 그때는 그냥 ‘좋아 보이는 말’이면 다 명언이 된다.(주옥같은 말들도 많았지만!) 어쩌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온갖 뜨거운 열기란 열기는 다 품어놓고선, 차가운 얼음 몇 덩이만으로 그 이미지를 바꿔낸다. 한여름에 시원함을 가져다주는 이미지 말이다! 차갑게 마신다고 해서 열기가 식는 건 아닐 텐데. 아아 두 세잔을 연거푸 마셨을 때 쿵쿵거림도 해명하지 못할 텐데. 잠이 오지 않음을 설명할 수 없을 텐데. 얼음 몇 덩이로 완성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우리에게 흥미를 끌어냈다. 이 어찌 역설이 아닐 수 있겠는가!


오늘도 난 ‘아아’를 주문한다.


그런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역설을 증명하듯, 나는 오늘도 ‘아아’를 주문한다. 그것도 연거푸 두 잔 째. 덥디 더운 여름날의 오후를 ‘아아’ 두 잔이 시원하게 식혀준다. 그리곤 심장을 마구 눌러댄다. 쿵쿵. 쿵쿵. 해안가에 가득 들어찬 바닷물이 덥다고 태양 빛을 내게 미뤄대는 것을 밀어내려는 것처럼. 덕분에 이번 여름도 시원하다. 이게 바로 내가 뜬금없이 해석해 본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역설이다.



**참고하면 좋을 책 : [방외지사 2] - 조용헌 <마음을 치료하는 한의사, 임형택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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