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듦의 무게는 다른 사람이 측정해주는 게 아니잖아요

타인의 힘듦을 공감하지 못하는 '라떼'는 이제 좀 그만해주세요

by 금교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퇴직’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의 고민이라고 할까? 그 고민의 한 무더기를 덜어내 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자기를 힘들게 만든 조직을 걱정하게 됐을까?
이건 말 그대로 피해자가 가해자를 걱정하는 것 아닌가?’


내게 고민을 털어내던 그 사람은 전부터도 우울증 증세가 심각해 보였다. 일하기 시작한 지 한 달쯤 후부터였던 것 같은데, 어떻게든 꾸역꾸역 1년가량을 버텨내더니 마침내 절정에 다다른 듯했다. 실제로도 인생 자체에 회의감이 밀려오고, 앞이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를 ‘직장 우울증’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나? 문제는 이런 현상이 비단 그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현상이 아니라는 거다.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 스타트업에 뛰어든 친구, 공직에 자리 잡은 친구 누구 하나 다를 것 없이 사회초년생이라면 누구나 이런 현상을 겪는 걸 봐왔다. 한마디로 ‘돈’의 크기가 힘듦을 막아주는 데는 상관이 없다는 말이리라. 그들의 고민을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조직’의 문화나 ‘사람’의 성향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눈치가 사람을 망친다.


먼저 조직의 문화를 볼까? 모든 조직의 문화가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유해하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정적인 문화도 분명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사람을 괴롭히는 문화로 꼽고 싶은 건 바로 ‘눈치’다. 이 눈치라는 게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목소리를 집어삼키도록 만든다.


일의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해서 하루하루 꾸역꾸역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지나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마무리해야겠다.’라는 생각에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사가 다가온다.


“김사원! 이 서류들 좀 분야별로 정리해서 이메일로 보내줄래? 오늘 내로 보내~”


순간 퇴근 직전에 생긴 일이라는 점에서 한 번 놀라고, 그 압도적인 양에 두 번 놀라버렸다. 어라? 가만 보니 내게 처음 보는 서류들을 던져놓고 간 상사가 퇴근하겠다며 슝-하고 사무실을 나간다. 치솟아 오르는 의구심과 짜증이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모습이 떠오르는가?


‘이렇게 하고 자기는 혼자 가버린다고? 내가 잘못된 건가..?’


바로 여기서 ‘눈치’라는 게 발휘된다. 이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다 하고 갈 것인가, 내일 일찍 출근해서 정리할 건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눈초리가 느껴진다. ‘불쌍해.. 그래도 다 해놓고 가겠지?’라는 생각이 들리는 것만 같다. 마치 안 하면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며 책망받을 것 같은 눈치. 마음속을 쿡쿡 찔러대는 바로 그 눈치. 직장생활에서 이런 눈치가 일어나는 상황은 차고도 넘친다. 내게 고민을 털어낸 사람도 이런 ‘눈치’때문에 자신의 행방을 고민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해보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이 일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책임감 없는 사람일까? 만약 본래 맡은 업무들을 모두 처리한 상태라면, 차근차근해 나가고 있었다면 그것도 책임감 없는 행동이었던 걸까? 일을 던져놓고 간 상사는 그럼 어찌 됐건 일을 맡겨놨으니 책임감이 있는 걸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런 애매한 상황 속에서 조직보다는 자신을 탓한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낮추고, 조직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 조직이 나를 거둬들였으니, 나를 희생해야지 뭐..’


모든 일은 사람으로부터 생긴다.


이 상황을 잘 살펴보면 시작은 사람이다. 말 그대로 모든 일은 사람으로부터 생긴다. 회사부터가 사람이 만든 거니 어쩌면 당연하다. ‘일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생긴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한번 자신의 경험을 잘 떠올려보자.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이 좋으면 할 만한 의욕이 생긴다. 반대로, 일은 단순한데 사람이 꼰대 짓을 많이 하고, 불합리한 지시를 계속 내린다면? 일 의욕이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다. 군대를 예로 들어도, 전역할 때면 그 방향으로 소변도 안 눈다고 하지 않는가.(군대라 함은.. 사람 때문에 힘든 걸 견뎌내는 제1 관문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그런데 더 심한 문제는 다음에 발생한다. 힘들 때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방법이 바로 ‘고민상담’이다. 내 얘기 좀 듣고 공감해주세요 하고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고민을 토로한다. 중요한 건 이런 힘든 일에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거다.

부모님들에게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하고 고민을 얘기하면 무슨 답변이 돌아오는가? 물론 공감해주는 분들도 많겠지만, 결론적으로는 ‘사회생활은 다 힘들어~’란 답변이 돌아오진 않는가?(만약 이런 답변 말고 ‘정말 힘들겠구나.. 잠시 쉬어보는 건 어때?’라는 말을 해주는 분들이 계시다면, 정말 부럽다고 답 해주고 싶다.)

다른 직장 선배들에게 얘기하는 건 또 어떤가? 정말 신기하게도 나의 고민으로 시작해서 ‘나 때는 말이야~’로 끝나는 분들이 꽤 많다. 정말 심한 경우에는 ‘너 그 정도로 힘들다고 하는 건 네가 나약해서다?’라는 식으로 답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말이지 그런 분들에게 상담받는 건 말 그대로 시간낭비다. 조언이랍시고 해주는 그런 말들은 대개 위로보다는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지고 있는 힘듦의 무게를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세상.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며 자신의 힘듦으로 내 힘듦을 가려버리는 세상. ‘힘들겠구나’라는 위로보다는 ‘더 잘해야지!’라는 힘 빠지는 조언만 팽배하는 세상. 우리는 지금 이러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럴수록 우리는 정말 우리를 공감해줄 수 있고 따뜻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고통을 나눠들 수 있기 때문이다.(이게 참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자신의 주변에 나를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면 ‘소셜 살롱’이라는 모임을 찾는 방법도 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기에, 내 얘길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아보는 거다. 끝내기 전에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 하나만 더 전달해주고 싶다.


“힘듦의 무게는 다른 사람이 측정해주는 게 아닙니다.
내 힘듦은 내가 측정하는 겁니다.
내가 100톤만큼 무겁다면 정말 그만큼 힘든 겁니다.
위로랍시고 힘 빠지는 조언만 하는 사람들은 되도록 피하세요.
당신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을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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