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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Sep 23. 2020

독서가 중요하다는 건 독재자일수록 잘 압니다

독재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독서하는 국민이다.

간혹 팀 프로젝트를 할 때, 논쟁을 펼치느라 아무 소득 없이 모임이 끝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건 이러해서 안되고, 저건 저러해서 안되고.. 한 명이라도 나서서 절충안을 내지 않으면 팀이 폭파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발표자료를 띄웠는데, 조원 이름으로 한 사람의 이름만 들어가 있던 에피소드가 널리 퍼졌던 게 떠오른다.) 


이런 일은 구성원들의 고집이 너무 강하거나, 참여 의지가 미약한 경우에 왕왕 발생한다. 그러나 내가 다루고 싶은 상황 한 가지가 더 있는데,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발생하는 경우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로는 ‘정치’를 들 수 있겠다. 법안을 개정할 때, 대부분의 국민들이 동의하더라도 온갖 이유 때문에 진행이 안 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물론, 그 덕에 이론적으로는 개정되는 법안의 합당성이 최소한으로나마 보장될 수 있는 거겠지만..) 


지식인보다 비지식인이 다스리기 쉽다.

 

“수 세기에 걸쳐 수많은 독재자들이 잘 알고 있었다시피 대중은 문맹일 때 가장 다스리기 쉬운 집단으로 남는다. 책은 독재에 맹독으로 작용해 왔다.”
- 알베르토 망구엘, <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작가의 말처럼, 독재자들은 아는 게 많으면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 쉬운 일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독서 활동에 제한을 두며 ‘건강한 독서’라는 명목 하에 온갖 검열을 실시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때를 생각해보자. 일본은 <보안법>, <신문지법> 등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눈을 가렸다.(독서를 읽는 활동으로 바라보자.) 조선총독부를 통해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내용이나 부당함을 보도하는 활동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말을 쓰면 모질게 탄압했고, 오직 일본어만 사용하도록 통제했다.(그 목적에는 ‘일제를 비판하는 한국어 신문을 볼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나 싶다.)


영국의 노예 소유자들도 비슷한 사례로써 소개해볼 수 있다. 그들은 노예인 흑인들이 글을 읽는 방법을 교육받는 것을 극도로 반대했었다. 만일 노예들이 글을 읽을 수 있고, 노예 제도를 비판하는 글을 본다면? 아마 대대적으로 저항 심리가 일어나 그동안 누리던 편안한 생활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들은 영악하게도 이런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노예들이 조금이라도 글을 배우려는 노력을 보이면 모진 채찍질로 벌을 내리기도 했단다. 


우리의 삶에서 독서는 3가지 이유로 필요하다.

 

앞에서 한 말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알면 알수록 다루기 힘들다.’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정반대로 생각해보면, ‘알면 알수록 당하지 않는다.’라고도 바꿀 수 있다. 우리가 모르면 당하고만 있어야 하지만, 알면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오히려 상대에게 반격을 가할 수도 있다. 여기서 ‘앎’이라는 건, ‘지식’으로부터 시작하고, 지식을 쌓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시중의 자기 계발서들을 읽어보면, 단골손님으로 나오는 말이 ‘독서하세요~’다. 독서가 주는 신비한 힘 때문이려나? 그래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책을 읽다 보면,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점점 더 강조된다. 그래서 나도 나름 정리해봤다. 독서가 주는 3가지 이점을 말이다. 그 세 가지는 생각하는 힘, 풍부한 대화, 그리고 마음의 치유라고 본다.

 

 1.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 

 

우리 뇌에는 ‘전두엽’이라는 부위가 있다. 이곳은 ‘생각하는 뇌’라고 보면 되는데, 생각하거나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중요한 건, 독서를 하면 이 전두엽이 활성화된다. 책에 담긴 다양한 지식들을 저장되기 쉽도록 가공하기 때문이다. 테니스도 반복적으로 연습하면 실력이 좋아지는 것처럼, 전두엽도 자주 활성화시켜주면 성능이 좋아질 수 있다.

더군다나, 다양한 상황에 대한 간접경험들은 비슷한 일을 당했을 때 올바른 방향을 판단하는 데 참고할 수 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부당하구나!’ 라거나, 합당한 사람을 봤을 때 ‘이 사람 찐이네~’라고 스스로 판단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이는 사회를 살아갊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보인다. 합당함과 부당함을 구별할 줄 모르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사회적으로도 우리에게 도움되는 일인지 판단하는 데 생각할 줄 아는 힘은 필요하다.)


 2. 풍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독서를 꾸준히 하다 보면, 항상 똑같은 지식들만 얻게 되는 게 아니다. 소설책을 예로 들면,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면서 소설 배경의 시대상과 문화를 배울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경험도 간접적으로 겪는다. 하물며 자기 계발서나 여러 분야의 책들을 보게 되면 어떨까? 정설로는 한 분야의 책을 5권만 읽어도 그 분야에 대해 가볍게 토론할 정도가 된다고도 한다. 분야를 하나 둘 넓힌다면, 어떤 분야든 어렵지 않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남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듣기만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3. 마음을 치유해준다. 

 

마지막으로, 독서를 하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늦은 밤, 모든 일을 마치고 침대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사소한 일상이 담긴 에세이. 좋아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 주변을 돌아보게 해주는 심리학 서적 등등.. 별 것 아니지만, 검은 획으로 그려진 글자들을 쳐다보면 자연스레 나른해지기 마련이다.(잠이 안 올 때 수면제 대신 책을 읽는다는 사람도 보았다!) 


* 고대에 있던 테베라는 나라에서는 도서관을 ‘영혼을 치유하는 곳’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책의 마음 치유 효과는 유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부터 조금씩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네 마디 요약> 
온갖 부당함이 빗발치는 현실 속에서 모르면 당하지만, 알면 반격할 수 있다. 
‘앎’은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고, 동시에 ‘생각하는 힘’도 기를 수 있다. 
더군다나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돼 삶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지금 지친 상태라면 처방전으로 ‘독서’만 한 게 없다. 


이 말을 하고 있는 나도 의식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로 삶의 많은 부분의 변화를 느낀다. 우선, 누군가의 강요에 무작정 따르면서 속으로 앓던 때와는 다르게 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온갖 논리적인 이유를 대며 상대와 생각이 다름을 어필할 줄도 안다.(심지어 직장 상사에게도!) 직장에서는 무작정 밀려오는 일들을 억지로 수용하지 않고, 적당히 쳐낼 줄도 안다. 적당한 행복감을 찾을 줄 알게 됐다는 말이다. 따라서 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도 (책을 멀리하는 분이 계시다면) 독서를 시작해보길 권유드린다.


조금이라도 좋다. 10분이 됐든, 10페이지가 됐든 오늘부터라도 책을 펼쳐보자. 조금씩 쌓여가는 간접 경험들은 훗날 귀한 자산이 되어줄 거라고 자신한다. 


"시키는 대로 따르는 쉬운 사람이 될 것인가, 의견을 존중받는 어려운 사람이 될 것인가?" 이를 결정하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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