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의 가로줄을 '마디'라고 한다.
아! 독서 습관을 들인 지 이제 2년이 되었다.
이전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진 모든 생활습관이다. 이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회고할 시간도 전혀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나 자신을 불안 속에 던져 넣으며 생활했다. 내 딴에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방법이었지만, 사실은 나는 그렇게 하면서도 늘 불안했다.
그런데, 세상에 '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책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아직도 공부하고 있지만. 책을 통해 본 세상은 참 넓었고 생각보다 자유로우며, 또 희망이 보였다. 내게 불안하지않는 삶에 대한 희망을 준 두번째 순간이었다, 처음은 20대가 되어서야 다시 시작한 신앙이었고.
이 세상에는
천국을 꿈꾸지만 매일을 향방없이 아등바등하며 이땅의 지옥을 스스로 만들어 들어가 사는 사람도 있고,
변화에 대한 의지조차 잃어버려 매일 똑같은 생활을 하면서도 무기력 속에서 헤어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고,
타인을 밟고 올라가는 경쟁의 사회구조에 전적으로 녹아들어 시기와 질투를 삶의 동력으로 삼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발가벗겨진 내 마음을 보았다. 어느 한 때, 한 때의 내 모습들이었다.
하지만 30대가 되어서야 내가 알게 된 이 세상에는
불안을 늘 갖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었고,
두려움을 인정하고 자기자신의 내면아이를 위로하고 안아주는 따뜻한 사람도 있었고,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진실된 마음으로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폭풍같은 감동을 주는 멋진 사람들도 있었다.
30년 간 내가 본 세상과, 지난 2년 간 책을 통해 본 세상은 너무 달랐다. 하지만 문득 아직도 30년 간 본 세상의 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느낀다.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래서 '본다'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다. '본다'는 것은 시각적인 기능이 10%밖에 안 되고, 사람의 머릿속에서 형성된 경험에 의한 의도가 90%나 된다는 것을. 경험이 적고 단편화되어있고 자신에 대한 해석이 부정적이며, 한정적인 사람에게는 세상이 그렇게만 보인다. 100을 보여주더라도 자신의 경험 필터가 10밖에 못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있는 나도 아직 나의 부족함을 종종 느낀다. 세상을 알수록 하고싶은 것이 너무 많고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분명 안다 생각했던 삶의 이치들이 막상 기억이 안나면 '여전하구나'싶어 답답하다. 마음만 너무 앞선 게 아닐까.
대나무의 가로줄 같은 선은 마디(node)라고 부른다. 마디가 생기는 이유는 대나무가 빠르게 자라기 위해 마디마다 성장을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마디는 대나무를 튼튼하게 서 있도록 해주고, 영양과 물을 잘 전달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강한 연결 지점' 역할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지금이 그 '마디'가 아닐까. 다시 성장하기 위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잠시 멈춰야하는 때. 눈 가리고 앞인 줄 알고 무작정 달리지 말자. 방향이 맞는지도 계속 주변을 둘러보고, 스스로에게 이미 잘 자라고 있으니 절대 쉬지 말라고 속이고 있지 않은지도 지켜보며, 그맇게 마디를 남기며 성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