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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국호로록 Apr 09. 2024

그녀를 점점 잊는 줄 알았는데

    시험이 1주일 남은 오늘, 머리를 자르고 와서 친구와 온라인 스터디 모임을 했다. 


    오늘따라 공부가 안되더니 그녀가 생각이 났다. 차단당한 인스타 염탐 방법까지 검색해봤다. 그녀의 블로그는 차단되지 않아서 볼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 글이 없던 블로그에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작업물들의 사진이 있었다. 글 마지막에는 힘든 모습의 셀카와 함께 '살기 실타'라는 한마디. 사진속의 그녀는 내 추억만큼 예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리웠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봤을 때의 상황, 분위기, 대화가 생각이 난다. 


    블로그를 보고 나자 인스타를 보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마약이 나쁜 것을 알지만 참지 못하는 중독자가 된 기분이다. 봐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은 안다. 대부분이 작업 사진. 바쁘게 사는구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그 사이에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지는 않아 안심했다. 


    인스타와 달리 속내를 더 드러낸 블로그에서는 그녀가 힘들게 지내는 것 같았다. 기분이 복잡하다. 잘 지냈으면 했는데 한편으로 나는 나 없는 그녀가 행복하지 않기를 바랐나 보다. 그런 내가 조금 싫다. 그녀가 더 힘들어져서 결국 나를 다시 찾기를 바라는 내가 싫다. 나 없이 잘 못 지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안심하는 내가 싫다. 그녀가 나보다 잘 못지내기를 바라는 내가 싫다. 머릿속이 그녀 생각으로 가득이다. 마음이 아프다. 


    현재 내 감정: 걱정, 안심, 불안, 자기혐오, 무기력감


    내가 보지 않을 때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없이 행복한 그녀의 모습은 보고싶지 않다. 그랬다면 내가 그녀에게 정말 별 것 아니었던 인연이라는게 느껴질테니까. 이기적이고 역겨운 내 솔직한 마음이다.


    그간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보려 노력했다. 다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을 뿐. 소개팅으로 이성을 만나는 일은 내게 복잡한 심정을 준다. 예전이라면 그냥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한 번 연애를 하고 나니 상대를 더 따지게 된 것만 같다. 누구나 애정할만한 점이 있을 터인데, 나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한 번의 만남에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것은 알지만 누구도 여러번 만나더라도 내가 애정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터인데. 상대방들은 내게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그녀가 생각나는 상황은 아직도 많다. 올리브영을 갈 때, 배라를 지나갈 때, 그녀가 좋아하던 옷을 입을 때, 심지어 샤워할 때, 인센스를 피울 때 등. 특히 그녀와의 추억이 쌓여있는 소재인 인센스는 내게 그녀를 향한 향수를 강하게 불러일으킨다. 요즘에는 너무 자주 피웠더니 방에 연기냄새가 배어 속이 좋지 않다. 


    지도를 보다 종종 그녀가 살던 동네가 눈에 띈다. 골목길 사이, 같이 갔던 가게들, 집앞, 공원 등이 생경히 떠오른다. 


    통화로 헤어지자고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헤어질 결심을 한 상태가 아니었고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내게 그녀와의 마지막 기억은 헤어지는 기억이 아니다. 행복했던 기억이다. 이 점이 나를 괴롭게 한다. 마지막 만남은 자꾸 생각나는데 그게 내 뇌에 착각을 일으키는 듯한 기분이다. 자꾸만 뇌가 그녀와의 관계를 그 기억을 떠올려 착각해 내게 상실감을 느끼게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그녀와 대면으로 마지막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녀가 내게 주었던 본인의 페르소나도 돌려주고, 남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 후 나를 차단했고 아직도 내 뇌는 정리되지 못한 느낌이다. 


    그녀에게 여유가 생기면 내게 마지막을 정리할 시간을 줄까? 나는 아직도 그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나 혼자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와 인연이 되면서 겪은 일들은 내가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행복이 타인과의 관계에 존재함을 알려주었다.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겪어보지 않는 게 나은 행복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다른 것과 비교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과거의 행복했던 자신이더라도. 자꾸만 내 일상을 과거의 행복했던 모습과 비교하게 된다. 과거의 행복을 추구하려 한다. 즉, 연애를 갈망한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혼자서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연애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라고. 정말일까?


    그녀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밤이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착각 속에 빠진 뇌를 정신차리게 만들고 싶다. 한편으로는 내 브런치의 글들을 그녀가 읽었으면 싶다. 내게 내 브런치를 알려달라 했었는데 나는 거절했었다. 대신 제목을 불러주며 읽고 싶은 글 하나를 고르라고 하여 보내주었다. 예전에 내가 보내줬던 브런치 글을 가지고 있으려나. 아니면 톡방을 나갔으려나. 보내줬던 글은 "내 불안의 역사". 솔직히 구글링하면 내 글이 나올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게 그 정도로 신경을 쓸 여유도 관심도 없겠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녀에게 내가 어떤 존재였든, 지금 어떤 존재이든.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내게 그녀는 첫사랑이다. 큰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고 계속 생각날 수 밖에 없는 사람임이 변치 않을 것만 같다. 10년 후에 우연히 그녀를 만난다면 기분이 어떨까. 나만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 그녀에게는 한달 간의 짧은 인연이지만 나는 짧더라도 첫사랑이니까.


    역겹고 이기적인 내 마음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하려 한다. 이것마저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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