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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지국호로록 Apr 07. 2024

첫 연애와 그 이별, 그 이후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다, 그리고 그 극복은?

 내 첫 연애는 기대보다 빨리 끝났다. 상대는 내게 매력을 느끼지 못 한건지 나를 좋아하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였다.


 내 전 여자친구, 무민은 아픔이 많은 사람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비밀로 지켜주고 싶은 내용이 많아 여기에 자세히는 적지 않겠다. 어찌됐든 그녀는 순수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으나,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인간에 대한 불신이 싹트는 한편 사람들에게서 순수함을 찾고자 하는 자신을 놓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괴로움을 느꼈다. 자신이 바라는 세상의 모습과 실제와의 차이.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자신의 모습과 실제와의 차이. 그녀는 순수했던 자신의 과거 모습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의 자신은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무민의 불안정한 상태마저 사랑했으나,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왜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내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고백을 받아주었을까. 그녀에게 이를 물었더니 처음에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고. 우리 관계가 서로 사랑하려 했으나 실패한 관계라고 했다. 나는 어쩌면 그녀가 그저 사람이 필요한 불안정한 상태라서 그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런 바다에 표류하는 그녀 앞에 마치 떠다니는 부표처럼 나타난 사람이었고, 그녀가 나를 붙잡았다. 


 무민과 처음 소개팅으로 만났을 때 나는 그녀에게 확신을 갖지는 않았지만 관심은 생겼다.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와 미대라는 특수성, 그리고 내게 보여준 적극적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내게 전화를 걸어주며 매일 몇시간씩 통화를 하는 시간이 행복했다. 그러면서 점점 애정이 생겨났다. 솔직히, 무민이 나를 꼬신거나 마찬가지다. 두번째로 만나 처음 손을 잡았을 때, 내게 깍지를 먼저 끼는 모습이나, 식당에서 내게 양손깍지를 끼며 플러팅하던 상황을 생각하면 내가 너무 빨리 고백한 것은 그녀의 과실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렇게 우리는 너무 빨리 연인이 되었다.


 나는 첫 연애, 그녀는 3번째 연애였다. 우리는 굉장히 빨리 자신을 오픈했다. 그녀는 내게 과거에 있었던 힘들었던 일들을 얘기해주며 본인이 현재 우울증과 불안장애로 약을 먹는다는 것을 얘기해주었다.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던가.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용기를 얻어 내 치료과정도 알려주게 되었다. 그녀는 약을 꽤 많이 먹고 있었다. 프로작을 매일 4알씩 먹고 거기에 두개 약물을 추가로 먹었다. 심지어 밤에는 수면 관련 약까지 투약중이었다. 나는 그걸 보고 그녀가 약물을 줄일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양한 처음을 그녀와 함께했다. 내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녀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사귀고 한 달쯤 되던 날, 그녀는 내게 전화를 걸어 연애를 그만하고 싶다며,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연애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고 했다. 나는 거부하고 싶었으나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힘들어 보여 알겠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무민과 헤어지게 된다.


 헤어진 후 다음날, 나는 생각보다 멀쩡했다. 병원을 가는 날이어서 병원을 갔고 의사선생님께 내게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렸다. 약물 증량이 필요할지 내게 물으셨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실제로 괜찮았다. 일요일까지는.


 일요일 오후, 무민이 내게 전화했다. 너무 힘들다고. 자신이 약을 먹지 않은지 일주일 째 되었으며 평소에도 호소하던 척추 통증이 너무 심하다고 얘기했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 끊기 전에 약을 먹으라고 얘기하고 그녀가 약을 먹는 것을 확인하고 잠시 얘기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카톡을 종종 나누었다. 나는 일요일의 갑작스러운 통화 이후 그녀가 너무 걱정이 되었다. 그녀의 힘든 목소리가 계속 생각나 힘들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돌아오는 왜 전화했냐는 내용의 카톡. 나는 자신이 힘들 때는 나를 찾았지만 내가 힘들 때 그녀가 내 전화를 받아주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나는 걱정돼서 전화했다고 이야기했고 내 심정을 얘기했으나 별 반응이 없었다. 자신은 약을 내 덕에 다시 먹기 시작해서 괜찮다는 얘기를 하며 그 이후에는 그저 알겠다는 대답 뿐. 그녀는 그저 자신의 힘듦을 토로할 때만 내게 먼저 카톡을 보내곤 했다.


 그 이후에는 연락이 며칠간 두절되었다. 나는 이 때 그녀와의 추억이 생각나 많이 힘들었다. 증량을 하지 않은 것과 필요시 약을 처방받아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친구에게 전화해달라고 매달려 상담을 받곤 했다. 그렇게 보내기를 며칠, 나는 마음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고 그녀를 다시 만나서 얘기를 나눠야 내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게 그녀에게 만나서 얘기를 나누자고, 재회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내용의 카톡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답장이 없이 읽기만 하였다. 나는 불안감에 그녀에게 답장을 재촉하는 카톡을 보냈다. 몇 시간이 지나 그녀에게 온 답장은 "미안해 내가 여유가 없어" 라는 한마디. 그리고 그녀는 나를 차단했다. 카톡도 인스타도.


 무민과는 그렇게 마지막이 되었다. 나는 이 때 엄청난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두 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메웠다. 내가 더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면 그녀가 떠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과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쉽게 차단당할 정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구나 라는 생각. 나는 이 두 생각때문에 이틀간 굉장히 힘들어했다. 거울을 보며 자기혐오에 빠졌으며 내가 한 사랑이 짝사랑이었구나 하는 괴로움. 첫 연애가 너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했다.  스스로 매력적인 사람이라 믿었다. 또 행복은 내 안에 있다고 믿었다. 스스로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녀와의 이별은 내 믿음을 깨뜨리기에 충분했다. 우선 그녀가 나를 좋아할 수 없었다는 말이 내 자기애를 깎아내렸다. 내가 남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꼈다. 애매한 얼굴, 재미없는 성격, 나쁜 학업성적 등 단점들만이 내게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 줄 수 없는 것 같았다. 또 그녀와 있으며 느꼈던 행복들이 너무 컸는지, 스스로 느낄 수 있는 행복에 대해 한계를 느꼈다. 혼자서는 내가 추구하는 행복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이러한 생각은 내게 무민을 잊기 전에 다른 사랑을 찾으려는 헛된 시도를 하게 만들었다.


 자기혐오에 빠진 나는 극도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느꼈다. 필요시 약을 털어넣고 싶었으나 남은 약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 매달리게 된다. 계속 전화해달라고 말하며 그와 통화하며 내 괴로움을 토로했다. 내 친구는 귀찮은 티를 안내지는 않았지만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녀를 잊으라고 말하며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한 부분을 지적했다. 그가 내 얘기를 들어준 덕에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자기애를 되찾았다. 나도 꾸미면 꽤 잘생겼다는 생각을 다시 갖게 된다. 누군가는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되었다. 자신이 없다면 나를 더 가꾸면 된다.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며, 옷도 깔끔하게 입으려 하면 된다. 말주변도 익히면 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행복이 내 안에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사랑하는 관계에서 오는 행복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그녀와 헤어지고 두 번째로 병원을 찾은 날, 나는 증량을 결정했다. 내가 더 안정되기 위해.


 그리고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해줄 사람을 다시 찾고 있다. 다만, 그녀가 한 실수, 또는 내가 한 실수는 하지 않도록 내가 사랑할 수 있고 상대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지 확신을 가지면 관계를 시작하고자 한다. 그녀와의 관계에서 고통만을 느끼지는 않았다. 배운 것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필요한 경험이었다.


 아직도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가?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아직도. 그녀를 잊지 못했다. 뭘 하던간에 무민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것이 있으면 그녀의 생각이 난다. 꽃을 보든, 인센스를 피우든, 베개를 껴안든 그녀 생각이 난다. 다른 여자를 만나보려 해도 내가 사랑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고 그녀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점점 옅어진다는게 느껴진다. 이게 아쉽기도 하면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그녀와의 관계는 내게 행복감도 주었지만 불안감도 주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불안정하고 예민한 모습, 그리고 내게 확신을 갖지 못하고 밀어내는 모습은 내게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였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서로 긍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항상 내게 건강한 관계를 얘기했지만 우리는 별로 건강하지 못했다. 


 나는 다음 연애를 언제 쯤에나 시작하게 될까. 솔직히 빨리 다음 사람이 내게 찾아와주면 좋겠다. 나는 아직 행복이 고프다. 사랑이 주는 행복을 추구한다. 찾아오는 사랑를 상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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