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불안장애 치료의 근황

나는 잘 지낸다, 행복하게.

by 선지국호로록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쓴다. 체감상으로는 얼마 안 된것 같은데 벌써 4개월이나 지났다.


그 사이에 구독해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별 것 아닌 글을 쓰고 있는데 구독자가 꽤 늘어났다.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도 계실거고, 주변인이 문제를 겪는 분도 계실 것 같다. 물론 그냥 흥미를 갖게 되어 구독하신 분도 있을 것이다.


4개월간 나는 어떻게 지냈는가. 나는 잘 지냈다. 지금도 잘 지낸다. 그간의 근황을 한번 읊어보고자 한다.


지난 글들에서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후에 힘들었음을 많이 토로했다. 지금은 별 생각 안든다. 때때로 생각나긴 하는데 그냥 그렇다.


마지막으로 쓴 글을 읽어보니 그 당시는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지금은 개강을 3주 정도 앞둔 방학기간이다. 1학기 성적은 어떻냐고? 2.7점 정도. B-가 대부분이다. C+도 하나 있다. 교양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꽤 열심히 했다. 아쉬운 점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는 다음 학기에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성적에 대해 별로 불안감이나 부담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있을 뿐이다.


약물치료는 그만두지 않았지만, 투약횟수를 줄였다. 기존에 아빌리파이 2mg, 에스벤서방정 50mg을 아침저녁으로 투약하던 것을 하루 한 번으로 줄였다. 줄인 이유는 약 먹는 것을 잊을 때가 많았고, 그럴 때도 불안증세나 기분조절장애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약을 갑자기 끊어 부작용인 비현실감과 어지러움증이 느껴지고서야 약을 몇번 빼먹은 게 생각나 먹은 적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의사선생님께 하니 약을 줄여도 되겠다고 판단하셨다. 7월 중순부터 줄였으니 지금 약 한달 째 유지중이다. 줄였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 오히려 요즘은 약을 중단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강하고 6월 말에는 학원알바 면접을 보았다. 알바몬으로 지원하니 두 곳에서 내게 연락을 주었다. 첫 학원은 시급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보조강사보다는 메인강사로 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면접 분위기에서도 내가 요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질책하셔서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두 번째 학원에서는 분위기가 좋았다. 원장님과 부원장님 모두 친절하셨고, 나랑 같은 서울대 출신이셨다. 간단하게 학년과 학부, 나이와 출근가능일을 여쭤보시고는 면접이 끝났다.


면접이 끝나고 며칠 후, 두 학원에서 연락이 온 곳은 한 군데 뿐이었다. 두 번째 학원. 이곳은 초등학생들을 위주로 영재원 입시 / kjmo 수학경시대회를 대비하는 학원이다. 내가 맡은 역할은 종종 카운터를 보는 것과 아이들의 자습시간 / 매일 보는 테스트를 감독하는 것. 나는 그렇게 두 번째 학원으로 출근하게 된다.


출근이 확정되고 나는 첫 출근일 전에 학기중에 10년지기 친구와 계획했던 태국여행을 떠나게 된다. 9박10일의 일정.


태국여행은 재밌었다. 친절한 사람들, 아름다운 유적지, 맛있는 음식, 싼 물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왔다. 10일이나 있었는데도 마지막 날에 돌아가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태국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내가 깨달았다고 해야할까? 몇 가지 인생을 살면서 마음에 품고 살아갈 만한 생각들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통제하려고 하지 말자"이다. 세상에는 별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우연에 우연이 겹치던, 굉장히 사소한 일이든 무엇이든 거대한 흐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빙산을 향해 다가가는 타이타닉호의 질량이 커서 방향을 바꾸기가 쉽지 않듯이, 세상 일을 내 맘대로 흘러가게 하기란 쉽지 않다. 생각해보면 나는 중고등학생 때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해서 불행했던 것 같다. 그게 당연한 것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래서 "세상을 통제하려고 하지 말자". 이 생각을 갖고 지낸다. 이 말은 삐걱대는 인생을 흘러가게 해주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가려고 하다보니 삐걱대던 인생을, 방향은 약간 다르더라도 부드럽게 흘러가게 만들어준다. 설령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래, 내 맘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겠어. 괜히 세상을 통제하려 하지 말자.' 이것만 생각하면 별 생각 없이 흘려보내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나는 한국에 돌아오면 정말 재미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 너무 즐거웠기에. 그래서 일상을 좀 더 즐겁게 만들려 했다. 물고기 베타를 키우기 시작했고, 행잉플랜트도 세 종류 정도 사서 커튼봉에 매달아 기르고 있다. 운동도 다닌다. pt 8회를 집앞 헬스장을 끊어 다니고 있다. 여기에 더해 동아리도 나간다. '설다연'이라는 차 동아리인데, 차도 마시고 사람들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즐겁게 다니고 있다. 이러다가 인연도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주 5일을 알바를 나가면서 화, 목만 쉴 수 있는 상황인데 이것저것 할일을 벌려놓다 보니 꽤 바쁘게 지내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상담도 시작했다.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을 신청해 지원금을 받고 상담을 나간다. 과거의 힘든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상담의 특성상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고 내게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매주 나가고 있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 지내고 있다. 새로운 취미를 발견하려 하고,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열심히 벌고, 상담도 받고 있다. 꽤 잘 지내는 듯 하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밌다는 생각도 들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냥 행복하고 막 재밌지는 않다. 사람을 더 만나봐야 할지도?


이제 다음학기도 곧이다. 알바하는 학원의 방학특강기간이 끝나면 매주 토/일만 출근을 하는데, 마침 방학특강이 끝난 다음주가 개강 일주일 전이라 이 시기에 일본 마쓰야마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귤과 도미가 유명하다고 한다. 알바비는 살살 녹지만. 그래도 여행은 즐겁다. 이번에도 깨달음을 하나 얻어올지도 모른다.


내가 이렇게 잘 지내리라고 기대한 사람이 있을까. 나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나아질 수 있었을까. 내 약물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나는 마무리 단계임을 직감한다. 곧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나아질 수 있었던 이유를 나는 항상 해결책을 갈구한 것 덕이라고 생각한다. 잠이 잘 안오고 불안감을 심하게 느끼고, 그런 감정들을 느꼈을 때 스스로 직접 병원을 예약하고 교내상담을 신청한 것, 가만히 있지 않고 여행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려 하고 휴학하지 않고 어떻게든 해내려 했던 것, 혼자서라도 놀러다닌 것들. 모두 내가 나아질 수 있는데에 한스푼씩 도움을 주었다.


다음 글에는 어떤 내용을 담게 될까. 약물을 중단하는 과정을 담게 될수도 있고, 학원알바를 하는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다. 참고로 학원알바는 즐겁게 하고 있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이 하고 원장님께 혼난 적도 있지만, 최근에는 노하우도 생겨서 아이들을 즐겁게 지도하고 있고, 원장님도 칭찬해 주셨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자. 다음 목표는 약 끊기랑 여자친구 만들기랑 알바하면서 학점 높이기이다... 할게 좀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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