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의 봄으로부터 온 문장
"인생은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다."
나는 이 문장을 유독 좋아한다.
내게 세상은 상상으로 시작해서 망상으로 끝났었기 때문이다.
2n년간 내가 머릿속으로 만들어 낸 우주는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도 결말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은 참으로 실망스러운 전개다.
그러니 나는 무책임한 작가이자 창조주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나는 내가 저질러놓은 이야기들에게 결말을 끝맺음시켜주고 싶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작가'라는 명칭이 부끄럽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공식적으로 글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없다. 그냥 방구석 작가일 뿐이다.
그래도 나는 글 쓰는 것이 좋다. 뭐, 그거면 되는 거 아닌가?
아래는 내가 고등학생 때 끄적였던 짧은 시나리오, 혹은 낙서라고 봐도 될 것이다.
하루 종일 폭우가 쏟아지고 별도 뜨지 않은 밤하늘 아래,
쌀쌀한 공기를 가르고 비틀거리며 검정 후드티를 뒤집어쓴 소녀는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고 서 있던 시내버스 위로 올라탔다.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시동을 걸었고 소녀는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떨리는 두 손에 동전들을 버스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버스에 타고 있던 5명의 손님들이 일동 소녀를 쳐다보았고
그들이 다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소녀는 알 수 없는 분노에 아랫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소녀의 진정되지 않는 두 손은
마치 자아를 잃어버린 채 멋대로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버스 안에서 이리저리 부딪히고 다니던 소녀는
버스가 급정거하게 되자 튕겨져 나가듯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일순 정적이 감돈 버스 안에서 소녀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흐르는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조심스레 소녀의 곁에 선 버스기사가 그녀의 처진 어깨에 손을 얹으며
약간은 겁에 질린듯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일어설 수는 있겠니?
그 광경을 지켜보는 5명의 승객들은
창문밖 풍경엔 안중에도 없는 듯해 보였다.
소녀는 버스기사도 다른 승객들도 아닌
어딘가를 바라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
또다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소녀가 이성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떠오른 장면엔
그녀의 두 손이 버스기사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것이었다.
소녀의 두 눈이 완전히 생기를 잃고
짙은 밤색에서 소름 끼치는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소녀는 버스기사를 완전히 질식시킨 뒤―
그의 목덜미를 물었다.
버스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시의 내가 무엇을 상상하며 글을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핵심 키워드는 버스, 분노, 충동, 재앙의 시작이 될 것이다.
아마 소녀는 흔히들 좀비라고 부르는 상태지만
단순히 좀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분노 상태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잃고
태초의 짐승으로 변하면서 본능만이 남는다는 설정이다.
좀비를 상상할 수 있으면서도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
짐승 같은 존재가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지에 대해 상상해 본 결과다.
그럴듯한 명칭을 붙인다면 '극단적 분노 조절 장애'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인간의 많은 감정들 중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어쩌면 떳떳하지 못하고 숨겨야만 하는 감정이 되어버린 현대의 사회에서
분노가 극대화된다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나의 목표는 내가 상상한 이 이야기,
나의 주인공 소녀에게 결말을 만들어 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