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얼굴은 저물어가는 태양을 닮았다

존 포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by 이수영

존 포드는 처음이라

존 포드John Ford 감독은 <파벨만스The Fablemans>2022에서 소개하듯이, “역사상 최고의 영화감독”이다. 수많은 감독들이 그를 상찬했고, 그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여전히 상찬하고,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 말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래서다. 그의 영화들은 실제론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이미 몇 번인가 본 것 같은 기분이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물론이고 다른 영화들까지 나에 비해 월등히 많이 봤을 평론가들이 쓴 훌륭한 비평이 이미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굳이 존 포드 감독 영화라곤 이보다 앞서 본 <역마차Stagecoach>1939를 포함해 두 편이 고작이면서, 사실상 서부극이라는 장르는 초면이다시피 하면서도,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The Man Who Shot Liberty Valance>1962(이하 <리버티>)에 관해 무언갈 쓰는 건, 역설적이게도 그래서다.

감독과 장르에 관한 정보가 빈자리로 남아있을 때, 그때야말로 그저 보이는 걸 보이는 대로 볼 뿐이다. 존 포드 영화에 관해선 이 경험이 특히 더 귀중하다. 앞서 말했듯, 그가 후대 영화에 끼친 방대한 영향, 그에 상응해 쏟아진 수많은 분석 때문에 오히려 그런 걸 잘 모르고 그의 영화를 접할 기회는 최초 한두 번에 그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허문영 평론가의 말처럼 “표준적 지식의 더 중대한 실패는 '보는 것'의 실패다. 이 실패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우리 대부분은 온전히 보는 것에 실패한다. 화면에는 많은 것들이 등장하지만 지식과 기대, 관람습관은 우리의 시선이 그들 중 극히 일부만 선택하도록 이끈다.”( 허문영,「다시 보기를 요청함」, 『씨네21』 969호.) 그의 경우 여기서 볼 것은 모뉴먼트 밸리지만, 나의 경우는 얼굴, 특히 감독의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배우 존 웨인의 얼굴이다.


23년을 뛰어넘어

“영화의 비밀을 묻는 질문에 존 포드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그런 건 없다. 그저 영화는 사람의 눈을 찍는 것’이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한 바 있다.”(허문영, 「얼굴 없는 가면들」, 『보이지 않는 영화』, 강, 2014, 231쪽.) 과연 맞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에서 배우의 얼굴은 유독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 경험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역마차>와 <리버티>를 연달아 봤던 매우 개인적인 경험으로 극대화됐다.

<역마차>에서 링고(존 웨인 분)의 등장 씬을 보자. 승객을 차례로 태운 역마차가 인디언의 공격에 대비해 후방에서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오고 있던 와중에 힘찬 행진곡 같은 배경음악을 뚫고 탕! 총소리가 들린다(순간 화면도 살짝 흔들린다). 강을 건너던 군대의 대열이 흐트러지고, 역마차의 놀란 선두마가 짧게 운다. 그리고 링고가 모뉴먼트 밸리의 상징과도 같은 사암 덩어리를 배경으로, 오른손으로 샷건을 한 바퀴 돌리며 “멈춰!” 하고 등장한다. 이때 카메라는 그에게 점점 다가가는데, 처음엔 허리까지 보이는 웨이스트 샷이었지만, 잠시 초점이 나간 이후엔 선명하게 얼굴만을 찍는 클로즈업 샷이다. 우리는 그의 빛나는 눈동자와 미간에 패인 주름, 이마에 맺힌 땀방울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이 하나의 샷만으로 그가 가진 에너지, 화면을 꽉 채울 정도로 중요한 그의 역할, 무엇보다 눈에서 보이는 어떤 힘을 느낄 수 있다. 이는 고스란히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도 이어진다. <역마차>는 그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듯 꿈틀대는 말의 생동감, 흩날리는 먼지,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생명력이 모뉴먼트 밸리를 박차며 뻗어나가는 영화다. 그와 동시에 서부극이라는 장르 자체를 태우고 나아가는 ‘역마차’ 그 자체다.

반면 <리버티>에서 톰(존 웨인 분)의 등장은 이와 사뭇 다르다. 영화는 저명한 상원의원 랜스(제임스 스튜어트 분)가 소도시 신본에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작은 마을에 이름난 정치인의 등장이라 지역 신문 기자와 편집장은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며 신본에 온 이유를 묻는다. 그는 톰 도니폰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왔다고 대답하지만, 그 자리의 누구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 랜스가 톰을 만나러 간 장소엔 아무 장식도 없는 초라한 직사각형 나무 관 하나가 덜렁 놓여있을 뿐이다. 랜스는 기자와 편집장에게 자신의 과거 얘기를 들려준다.

갓 법대를 졸업해 서부로 온 젊은 랜스는 길에서 리버티 밸런스 무리의 습격을 받아 가진 걸 모두 빼앗기고 흠씬 두들겨 맞는다. 디졸브로 장면이 넘어가며 저 구석에서, 리버티 무리가 사라진 딱 그 위치에서부터 서서히 한 남자가 말을 타고 오고 있다. 그의 얼굴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내 화면에서 그가 사라질 때까지 카메라는 약간 좌측으로 팬할 뿐, 절대그에게 가까이 가지 않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가 할리를 부를 때가 돼서야 그가 톰 도니폰임을 알 수 있다. 중간에 얼굴 반 이상을 그림자로 덮은 채 할리와 함께 투 샷으로 잠깐 보인 걸 제외하면 랜스를 침대에 눕히고 나서야 랜스의 시선으로 톰의 얼굴만을, 클로즈업이 아닌 바스트 샷으로, 단독으로 보여준다. <역마차>에서의 등장씬과 비교해 보면 지극히 평범한 연출이다. 이런 등장만 봐서는 전혀 비범하거나 중요한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제는 눈빛의 총명함도, 피부의 탄력도 떨어지고 얼굴에 주름만 는 존 웨인의 얼굴은 링고 키드와 같은 배우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다. 23년이나 지났으니 당연하겠지만 어딘가 서글픈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존 포드는 이 얼굴 하나로 서부극의 종언을, 무법과 폭력으로 일군 미국이 헌법과 연방정부로 나아가는 영화를, 동시에 한 배우의 생애를 전부 보여줬다. 이는 마치 뜨겁게 타오르다 이내 저 멀리 지는 태양을 닮았다.


말 그대로 액자가 된 구성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리버티>가 취하고 있는 액자식 구성이다. 현재 시점의 액자 밖 이야기에서 톰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얼굴은 오직 랜스의 회상으로 그려지는 액자 안 이야기에서뿐이다. 이렇게 보면 액자 안의 이야기는 그 자체가 톰 도니폰이라는 인물의 초상화로 보인다. 그리고 이 순간 액자식 구성이라는 말 그대로 바깥의 이야기는 그 초상화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액자(Frame)가 된다.

흥미롭게도 액자 안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서 신본 마을의 입지가 높아진 랜스는 지역 의회에서 주 대표로 추천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살인자라는 이유로 상원의원 출마를 포기하려 하자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톰이 그에게 말한다. “리버티 밸런스를 죽인 건 네가 아냐.”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당시 상황을 얘기할 때, 드디어 카메라는 <역마차>에서처럼 톰에게 클로즈업으로 다가간다. 링고 키드의 첫 등장과 정확히 같은 구도와 샷 크기에서 카메라는 정지한다. 담배 연기가 화면을 뿌옇게 흐리자 이내 완전히 어두워지고, 곧 카메라를 가리고 있던 새까만 등 하나가 천천히 움직인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등장한 톰은 그의 노예였던 폼피에게 샷건을 건네받고, 랜스가 리볼버를 발사하는 동시에 정확히 리버티를 겨눠 맞춘다. 이때 화면 밖으로 튕기듯 나갔다가 털썩 앞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지는 리버티 밸런스, 그를 마주하고 있는 랜스, 그들보다 전경에서 어둠 속에 묻혀 일을 마무리한 채 떠나는 톰과 폼피, 톰이 카메라를 완전히 가린 후 부드럽게 현재의 랜스와 톰으로 돌아오는 연출은 지금 봐도 조명과 인물 배치, 편집을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사용한 명장면이다.

현재의 랜스가 얘기하는 과거의 시점을 과거로, 톰이 알려주는 진실의 시점을 대과거로 설정한다면, 이 영화는 몇 개의 초상화와 액자의 중첩으로 볼 수 있다.

1)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서 톰의 대과거 초상화와 그를 둘러싼 과거의 액자. 이때의 초상화는 랜스만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액자는 시대가 끝난 무력과 총의 탄흔으로 얼룩져있다.

2)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서 랜스의 과거 초상화와 그를 둘러싼 과거의 액자, 이는 현재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 초상화로 모두가 사실이라 믿고 있다.

3)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서 톰의 초상화와 그를 둘러싼 현재의 액자. 이때의 초상화는 랜스와 그의 얘기를 들은 몇 사람에게는 진실이지만 여전히 그 액자가 감싸고 있는 그림은 2)의 랜스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즉각적인 경탄

<역마차>도, <리버티>도 영화사적 의미나 장르적 분기점으로서의 가치, 구성과 상징의 해설, 로케이션의 활용 등을 분석하는 글은 앞서 말했듯이 이미 충분히 많기 때문에 내 부족한 지식으로 덧붙일 일이 아니다. 다만 그저 보이는 것,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고, 혹은 움직이지 않고, 배우의 얼굴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가리고, 이런 면만을 말하더라도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즉각적인 경탄을 묘사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왜 존 포드를 “역사상 최고의 영화감독”으로 칭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다.

한 명의 영화 팬으로선 그저 이런 영화를 여전히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의 영화를 더 찾아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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