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갇힌 사람들을 위하여

프롤로그

by 공명




불 꺼진 사무실, 활자가 정신없이 흘러가는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나는 불행을 곱씹었다.

모두가 퇴근해 불금을 즐기는 동안 나는 이 작은 책상 앞에 앉아 뻐근한 눈두덩을 문지르며 일을 했으니까.

감당해야 할 일은 점점 많아지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또 다른 일에 쫓겨 잠자리에 들어서도 일 생각을 하는 날들이 많았다.

이 상황이 버겁고 지겨워진 것은 꽤 오래되었다.

숨이 막히고 답답했다. 너무나 떠나고 싶었다. 자유를 찾고 지겹도록 많은 시간과 장소에 파묻히고 싶었다.


어른이 된 이후 나는 늘 이런 감상에 시달려 왔지만 작년엔 더 했다.

끊임없이 여행을 다녔고, 책을 읽고 뮤지컬을 보았고, 트인 곳이라면 어디든 돗자리를 폈다.

범자들은 내게 자유로워 보인다고 했다. 대단하다고 했다.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냐고 했다.


그러나 나의 모든 것은 불행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집에서도 갇힌 듯 답답했고 숨쉬기가 어려웠다.

낯선 도시가 서울보다 편안했고, 내 세계와 갈라진 허상의 세계만이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고 나면 잠시,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 불씨는 아주 작게 타올랐다가 이내 꺼졌다.

원래 그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를 주는 화면 속 사람들은 말한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자기 연민은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나와 타인을 비교하면 그것부터가 불행이 된다고.

때로는 당신이 처한 상황보다 불행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도 한다. 그들을 생각하면 일어나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불행과 남의 불행을 비교하는 것으로 나의 불행이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면 왜 그리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등졌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행복이나 불행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마음을 정의하기에 단어라는 것은 너무도 얕기에.


그래서 나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나의 답답함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이 마음을 불행이라고만 부를 수 있는지.

나는 대체 어떠한 인간인지.


이런 생각에 오래 시달리다가, 나는 마침내 내 일생을 함께해 온 '이것'을 '갇힌 마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바꿀 수도, 날아오를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갇힌 마음.


어쩌면 삶이 다하는 날까지 계속될 이 마음을, 인정하고 들여다보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는 세상에 나지 않는 편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고 싶다.

그리하여 언젠가 그 마음이 풀려나기를, 마침내 자유로워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