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자유가 될 수 있을까 -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이해라고 하기에는 감정적이고, 이입이라고 하기에는 이성적인, 혼잡한 감상에 기대어.'
처음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았을 때 남겼던 감상이다.
내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처음 본 것은 OTT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한창 메릴 스트립을 동경했고 그녀가 찍은 로맨스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더더욱이나 중년의 사랑 얘기라니 흥미로웠다. 무심히 시작 버튼을 눌렀고, 프란체스카의 떨리는 손을 카메라가 줌 인 했을 때는 앞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꽤나 혼란스러웠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불륜'에 대한 얘기였고 나는 그렇게 울어 놓고도 이 감정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모를 나이였다. 프란체스카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이는 더더욱이 아니었고.
나는 그 영화를 다시는 열어 보지 않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 사랑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 뒤로 같은 작품을 뮤지컬로 보았고, 책으로도 읽었다. 그러고 나서야 그 감정의 윤곽을 어렴풋이나마 그려 볼 수가 있었다. 그녀의 행동에서, 말에서, 마음에서 나와의 접점을 마침내 찾게 되었기 때문이다. 떨리는 손으로 차마 문을 열지 못하는 프란체스카를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란체스카는 나폴리의 바람과 파도를 맞으며 자란 여인이다.
그런 그녀의 눈앞에 황량한 벌판과 끝없는 옥수수밭이 나타났을 때, 프란체스카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어쩌면 잘해 보고 싶었을 것이고, 어쩌면 좌절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프란체스카는 제가 선택한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했을 테다. 전쟁의 포성을 뒤로하고 간신히 부지한 목숨이니까. 어디에 있게 되든 본인의 삶을 포기하게 되리라는 것은 그때부터 자명했을 테니.
어쨌든 프란체스카는 잘 해 냈다. 아이들을 낳고, 이웃과 잘 지냈고, 남편과 사이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도 프란은 외로웠다. 그녀는 아이오와에 속했으면서도 완벽한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홀로 커피 포트를 사용하고, 이탈리아 억양이 남아 있고, 남편은 싫어하는 펜넬을 기르는 이방인. 파도를 따라 몇 번 만나 보지도 않은 미군 남편의 손을 잡고 배에 올랐던 소녀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아이오와의 한복판에서 옥수수의 껍질처럼 말라붙어갔다.
사방은 황야, 도무지 떠날 길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이나 가족의 사랑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였고 나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에서 나를 읽었다.
나는 성인이 된 후, 늘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한 톨의 근심이 없는 날에도 삶이 무거웠다. 속 시원하게 기쁜 날이 없고 갇힌 듯 갑갑했다. 집과 학교, 그리고 직장에서는 늘 나를 찾는 사람들과 일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누구도 나의 심연을 눈치채지 못했고 그래서 외로웠다. 모두가 내게 너는 독립적인 인간이고 혼자서도 잘 해낼 거라고 말했고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열심히 견뎠다. 그러나 이 상황이 계속되자 나는 돌을 아무리 던져 넣어도 메워지지 않는 우물처럼 비어갔다.
한 번도 떠나 본 적 없는 내 나라, 가족, 집에서도 때때로 나는 외계인 같이 느껴졌고 오히려 누구도 나를 모르는 장소에 이르러서야 나로 서곤 했다.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땐 도망치듯 비행기를 탔고 혼자가 되었을 때에는 잠시 사는 듯했다가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이유를 몰라 나의 일기는 물음표로 가득했고 대체 어떻게 모두가 이런 삶을 견디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만 이런 것인지 알 수가 없어 헤맸다.
그때가 되어서야 내가 다시는 그 영화를 열어 보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프란체스카와 마찬가지로 바닥까지 메말라 있었다. 이 지긋지긋한 공허를 메워 주고, 이 구덩이에서 나를 꺼내어 함께 나서줄 길라잡이를 지독하게 갈망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런 기적 같은 일은 온 우주의 모든 생을 통틀어 본다 해도 내게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니 무서웠던 것이다. 내게는 나를 구원해 줄 사람이 없고, 설령 나타난다 해도 이 영화처럼 예쁘게 포장되어 종결되지는 않으리란 것이.
그러나 프란체스카는 절대자의 사랑을 받은 까닭으로, 로버트라는 단 한 번의 기회를 갖게 된다. 그녀를 어린 시절로 돌려보내 주는 사람, 예전처럼 환하게 웃을 수 있게 하는 사람. 아무도 몰랐을 습관을 알아차리고, 평생을 살 맞대고 산 사람은 모르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눈치챈 사람. 나의 공허를 메우려 애쓰는 게 아니라 그 텅 빈 공간 안으로도 바람이 부는 길이 있음을 알려준 남자.
세상을 떠도는 파도와 바람 같이 자유로운 남자를 프란체스카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와 이야기하는 그 모든 순간에 프란체스카는 비로소 숨통이 트였을 것이다. 내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늘 떠돌며 이방인으로 살아오던 로버트는 프란체스카가 자신이 마침내 찾아낸 안식처라고 말한다. 평생을 길 위에서 살았던 그 남자가 당신의 손을 잡기 위해서라면 주저앉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집을 찾아 헤매던 남자와 자유를 꿈꾸던 여자는 단 사흘만의 서로의 세상이 되었고 집이 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두 사람은 엇갈릴 수밖에 없다. 프란체스카는 갇힌 몸으로 자유를 꿈꾸고, 로버트는 자유로운 몸으로 집을 꿈꾸기에. 서로가 서로의 이상이고, 그 사람에게 찾아낸 것이 나의 바람이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선택할 수 없다. 프란체스카가 그를 선택하면, 로버트는 길이 아니라 집이 된다. 로버트가 프란체스카를 선택하면, 그녀는 집이 아니라 길이 된다. 이 부분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통틀어 가장 잔인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도 '머무름'과 '떠남'을 동시에 가질 순 없기에.
개인적인 생각으로, 나폴리에 있었어도 프란체스카는 아이오와에서처럼 갇힌 삶을 살게 되었을 것이다. 프란체스카가 매인 것은 국가나 도시가 아니라 나의 책임,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탈리아를 떠나지 않았더라도 언니, 그곳에서 만났을지 모르는 남편, 태어났을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발목 잡혔을 것이고 또다시 로버트와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와 함께일 때만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고향'인 자유로의 희망을 만나기 때문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프란체스카는 로버트와 떠났어도 -그녀 역시도 알고 있듯이- 떠나온 가족을 그리워하고 때때로 후회했을 것이고, 그래서 다시금 집으로 발길을 돌렸을 수도 있다.
그러니 두 사람은 지독히도 찾아 헤매던 그것을 앗아갈 수가 없다. 서로에게서 자유와 집을 빼앗느니, 차라리 이 찰나의 순간만을 간직하고 서로를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다. 로버트의 말처럼 이것이 생애, 어쩌면 수많은 생들 중에 단 한 번 찾아오는 사랑임을 알았기에.
그 아침 빨리 떠나라 독촉하면서도 거듭거듭 했던 다짐이 스러지는 순간에 프란은 얼마나 많은 것을 잃고 얻었을까. 내가 없이는 안 될 것 같은 아들과 딸, 사랑하지는 않아도 나를 구한 남편. 그리고 어쩌면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나를 나로 서게 하는, 그래서 초조하고 눈물 나고 발을 구르게 하고 마침내는 무너져 내리는 그 사랑 사이에서.
나의 공허에는 이유가 없다는 것을, 내가 길을 찾아 나서게 되더라도 그 길 끝에는 결국 공허가 도사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의 손을 잡고 싶은 사랑. 그것이 마음이 갇힌 사람들의 오랜 소망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이 겁쟁이 같이 비겁한 내게 손을 내밀어 적정한 핑계가 되어줄, 나를 더 멋지고 행복한 세상으로 이끌어줄 나의 메시아를 찾아내는 일 말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프란체스카는 행운아이다. 그 찰나의 순간이라도 그녀는 이 세상의 어딘가에 나의 구원이 있다는 걸 알고 살았으니.
이런 사랑이 없을 줄을 알면서도.
이런 마음이 없을 줄을 알면서도.
설령 있다 해도 이것이 자유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로버트와 같이 내게 바람을 몰고 와 줄, 나의 자유가 될 사람을 오늘도 기다린다.
여기 아이오와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