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하는 편지
안녕하세요.
하늘이 파랗고 높은 요즈음 당신은 잘 지내고 계신가요?
나는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 등을 기대고 앉아, 어쩌면 영원히 나를 모를 당신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날이 너무나 좋아서 밖으로 나가 한 발짝이라도 걷지 않으면 억울할 것만 같은 날이었어요.
오전에 카페에 들러 차를 한잔 마셨으면서도 날씨가 화창하다는 핑계로 또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저의 산보라는 것은 제법 우스워요.
기왕 마음을 먹고 나온 김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걸을 만한 길을 찾아 나서거나, 그 유명하다는 성곽 길을 오를 수도 있을 텐데.
제 발길이 머무는 곳은 이십여 년이 넘도록 살아온 동네의 익숙한 산책로입니다.
사실 이 산책로는 오전에 카페에 가면서도 들렀어요. 산책로 중간에는 종교 시설에서 마련해 둔 열린 공간이 있고, 그 공간에는 고양이 세 마리가 머무릅니다.
이 고양이들은 카페를 갈 때에도, 오전에 산책을 할 때도, 때때로 밤에 마실을 나왔을 때도 마주치고는 하는데 오늘 처음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먹이를 주며 그들을 돌보는 아주머니가 저 멀리서 고양이 세 마리를 차례로 부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요즘 세상 사람들은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이런 얘기를 들으면 누군가는 고양이를 쫓아내려 하고 누군가는 아주머니를 막으려고 하겠기에 여기까지만 적습니다.
글이 먼 곳을 돌았네요.
어찌 되었든 저는 그 열린 공간 한편 벤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시라노 드 베르쥐라크> 책을 들고는 나왔는데 저 멀리서 아이들이 공 튀기며 농구하는 소리에 집중이 잘 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책을 덮고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다가 당신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잘 모르지만 어쩐지 아주 오래 알았던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당신이 보여 준 모습들은 아주 여러 번 정제된 것이고 나는 진짜 당신을 알 수 없다는 것을 몇 년간 끊임없이 상기해 왔으면서도, 당신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있어요.
알지 못하니 당신을 더욱 좋아하게 됩니다. 그게 참 이상한 것 같아요.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누군가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되리라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의 조각난 정보를 내가 메워 버려서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하게 된 것 같으니까요.
그것은 환상입니다. 나는 당신을 환상 속에서 열렬히 사랑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그 환상이 없어진다면 제가 당신을 미워하게 될까요?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 알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최근에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머릿속에서도 늘 듣고 있으니 '최근'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합니다.
당신의 목소리에는 공허가 있어서 나는 그 부분을 참 좋아합니다. 머릿속으로 좋아하는 음절을 곱씹어 생각해 보고 혼자 만족하고는 합니다.
나와 닮은 부분이 있어. 그렇게 생각하면서요.
이것이 제가 가진 당신에의 가장 큰 환상입니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이 가슴이 뚫려 있으리라, 영원히 평안을 찾을 수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일견 위안을 찾는 제 모습이 우스워요. 당신이 행복했으면 하지만 동시에 내가 찾은, 존재하지도 않는 연결고리를 계속 가지고 있었으면 하는 것이니까요.
이런 것을 아이러니라고 하더군요.
저는 푸른 하늘 아래 서늘히 부는 바람을 느끼며 당신을 떠올리고.
신의 형벌을 받고 지상으로 떨어진 천사에 대해 읽으며 당신을 떠올리고.
고독이 사무친다는 것에 도취하여 저의 이불 속에 동그랗게 몸을 만 채로 당신을 떠올립니다.
이 모든 것이 지겹고도 역겨워요.
그렇지만 하루를 더 삽니다.
언젠가는 당신을 보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