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너랑 함께했을 거야, 영원히.
가장 초라했던 그때, 가장 눈부시던 우리.
고향 가는 고속버스에 올라탄 은호(구교환)와 휴학 후 어디론가 떠날 결심을 한 정원(문가영),
나란히 앉게 된 두 사람은 뜻밖의 인연을 맺는다.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의지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연인으로 발전한다. 웃고, 싸우고, 화해하며 세상을 다 가진 듯 뜨겁게 사랑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 두 사람은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다시 마주한 순간 은호는 정원에게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한마디를 꺼낸다.
“만약에 우리...”
/ synopsis
누군가의 헤어짐을 지켜보는 일은 묘한 감각을 부른다. 더 정확히는 연기된 헤어짐이 지극히 실감 나고 설득력 있게 다가와 내 감정을 움직인다는 사실이. 스크린 속 사건은 분명 내 일이 아닌데, 몸은 그걸 내 일처럼 받아들인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 기억 속 ‘만약에’들이 일제히 켜지고, 한 장면 위에 또 다른 장면이 겹쳐 흐른다.
우리는 자주 ‘만약에’를 말한다.
‘만약에, 그때 네가…’
‘만약에, 다음에 우리가…’
그 질문은 결국 묻는 것이다. 당신의 마음에 현존하는 후회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미래를 담아둘 마음의 자리는 얼마나 남았는지. 지나간 인연을 어떻게 놓았는지, 지금의 나를 어떤 힘으로 붙잡고 있는지. 지나간 인연을 어떻게 놓아주었으며, 지금의 나를 어떤 힘으로 붙잡고 있는지. 나는 그 답을 확인하고 싶어 ‘만약에’를 꺼낸다. 사실은, 그걸 알아야만 이 숨 막히는 불확실성 속에서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만약에’의 대답은 대개 내가 듣고 싶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과거의 인연이라면 너무 쉽게 놓아버린 것 같아 질책이 들고, 지금의 인연이라면 나를 더 강하게 붙잡아줬으면 하는 욕심이 솟는다. 장면은 겹치고 시간은 흐르고 마음은 계속 달라서, 우리는 쉽게 엇갈린다. 그리고 그 엇갈림이 또 다른 인연을 밀어 넣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은 가끔 서글프다.
그래서 더 쉽게 놓아버렸던 걸까.
그래서 더 강하게 붙잡을 힘을 내지 않았던 걸까.
“지나갈 인연은 지나간다.”
“사랑은 타이밍이다.”
“인연이라면 결국 만난다.”
이 문장들이 쉬운 체념을 부른 적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지쳤고, 지쳐야 할 날들이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며, 힘을 낼 구석이 더는 없는 것 같았는데.
그렇게 고갈된 우리 앞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눈이 마주치는 누군가가 나타나면 우리는 서둘러 그 손을 잡는다. 굳이 일어나 달리지 않아도, 애써 힘을 내지 않아도 목소리가 닿는 사람. 놓친다 해도 미련과 후회가 덜 남을 것 같은 사람. 우리는 그런 안락한 관계를 ‘평생의 인연’이라 이름 붙이며 매달린다. 다시는 그 어둡고 축축하며 숨 가빴던 상처의 계절을 통과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아서. 이렇게 사람들이 ‘인연’이 아닌 ‘쉬움’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걸까. 그리고 그 쉬움이 때로는 우리를 살려주기도 하니까.
하지만 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그 시절이 생각난다. 눈을 감으면 그 어둠이, 비가 오면 그 축축함이, 숨을 참으면 그 가빴던 시간이 되살아난다. 그때의 나는 1분 1초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았다. 한 번의 숨, 한 번의 눈 맞춤, 잠깐 새어 들어온 빛, 비 갠 뒤 떠오르던 선명한 무지개,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으려 더듬거리다 마주 잡았던 온기까지. 그 모든 조각이 뇌의 일부처럼 박혀 있다. 기억을 떠올리는 절차도 없이, 모든 생각이 나오기 전에 거칠 수밖에 없는 통로처럼.
지금은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오늘 아침 햇살이 어땠는지도 흐릿한 일상이 이어진다. 그 시절의 내가 간절히 원했던 평온함이다. 너와 함께 나누고 싶었던 그 평온함 속에 정작 너만 빠져 있다는 사실이, 이토록 쉽게 평온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허탈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평온은 늘 늦게 오고, 꼭 비어 있는 자리에만 들어온다. 그래서 문득 평온이 미운 날도 있다. 내가 원했던 것이었지만, 내가 원했던 방식으로 오지는 않았으니까.
이 이야기가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이 문장에도 확신은 없다. 네 곁의 나는 늘 그랬다. 내 과거 속에 너무도 귀했고 간절히 붙잡고 싶었던 너라서, 너에 관한 것은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너를 놓아준 것도, 지금을 붙잡고 있는 것도 모두. 불확실성에 매달리던 날들과 그 속에서 수없이 버려졌던 순간들을 지나, 이제는 흘러가는 것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럼에도 살아진다는 걸 알았으니까. 성숙해진다는 것이 이토록 무미건조한 과정임을 누군가 귀띔이라도 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덤덤해진다는 건 꽤 오래 슬퍼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있다. 그 시절을 다시 겪을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 다만 너와 나눴던 시간만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때의 감정들은 내 생애 가장 역동적이었고,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사랑을 통해 가슴 벅찬 법을 배웠고, 이별을 통해 숨 막히는 법을 배웠으며, 시린 겨울 홀로 남겨진 듯한 서러움을 견뎠다.
내게 사계절을 가르쳐 준 것도 너였고, 긴 겨울 속에 나를 가둔 것도 너였다. 하지만 그 겨울을 지나 다시 봄으로 걸어 나온 건 나였다. 이제 나는 나만의 계절을 살아간다. 그리고 함께 사계절을 살아갈 누군가를 만나 서로의 계절을 나란히 굴려 간다. 그래서 나는 너와의 기억을 ‘성장’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키가 작았던 날이 좋았다고 해서 다시 작아질 수 없고, 어렸던 날이 행복했다고 해서 다시 아이가 될 수는 없는 것처럼.
너는 이제 ‘만약에’라는 말로만 돌아온다. 그 사실이 내게는 유난히 아팠다. 그래서 나는 그 말로 너를 여러 번 불러내곤 했다. 문장 하나를 정성껏 꿰매면 네가 잠깐 살아나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만약에’는 늘 나를 과거로 데려간다. 아쉬움이 먼저 서 있고, 슬픔이 뒤늦게 따라오는 곳으로. 나는 그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그 문장 속의 우리는 충분히 애썼고, 빛났으며, 그것으로 이미 충분히 지나갔다.
그래서 너를 수식하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붙잡지도 않을 것이다. 너를 온전한 과거로 남겨두려 한다. 어쩌면 이런 다짐조차 너를 통해 만들어진 습관이겠지만, 너를 빼놓고는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너를 후회나 미련이 아니라, 이제는 고쳐지지 않는 버릇처럼 내 곁에 두기로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