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끝의 영원한 무지
나는 늘 예측했다.
미래에 의심은 없었고, 내일의 윤곽을 더듬었으며
오늘을 바닥에 내려놓는 일이었다.
인간이 하는 허망한 산술
현실과 그 틈에는 언제나 체념뿐이다.
내일을 믿는 자들에게 다가온 건 무심한 끝임을 알고도,
멈출 수 없었고, 끝없이 갈망했다.
나는 영원히 앎에 실패할 것이다.
시간도, 육체도, 하루도—
오직 소멸이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으며
모든 게 죽어가고 있다.
문득, 무지했던 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갈망이 찾아들곤 한다.
예측 없는 하루는 두렵고 불안했고
예측을 붙잡아야만 잠들 수 있었다.
진실을 외면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악몽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한 번도 앎을 가진 적 없는 자는
오만한 갈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
이건 세상이 만들어 놓은 족쇄일까
아니면 내가 만든 필사적인 생의 재료일까
우리는 생존을 위해 삶을 제각기 오역하며 버틴다.
그렇게 오역되는 갈망을 세상은 그저 관망한다.
숨이 이어지는 동안, 삶은 위태롭게 계속된다.
태어남은 어느덧 살아갈 이유이자 목적이 되었고,
나는 죽음의 이정표대로 걷기 시작했다.
삶은 영원한 무지 속에 우릴 가두며,
어리석은 예측을 조롱하기라도 하는 듯
유유히 스쳐 지나간다.
우린 그 찰나에 홀린 자처럼
보이는 것, 잡히는 것에 매달린다.
헤엄을 익히기도 전에 스스로를 심해에 내버린다.
품을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다.
몸부림은 구원이 아닌 자기 폐쇄의 본능이 된다.
욕망하지 않고 스스로 헤엄친다면,
자유에 도달했을 때, 과연 기쁨이 찾아올까
우리가 스스로 죽음을 향해 헤엄쳐 왔다는 사실에 대한 환희—.
이제 나는 삶이 아닌 자유를 갈망하려 한다.
‘자유.’
길의 끝에서 비로소 들어찰 해방감,
몸서리치게 두렵고 과도하게 평온한 지점.
자유는 오직 끝에 닿아야만 고개를 들고,
내가 스러지는 순간 비로소 온 세포는 해방된다.
파편처럼 흩어지고, 경계는 사라지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듯 흘러가 버릴 그 끝.
고요는 찰나에 찾아온다.
자유로의 해방.
by. sos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