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11
#오늘부터는 성실히-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짐을 깨닫는다. 사람도 상황도 내 마음도.
이렇게 명료하게 알고 있음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아집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쌓인 경험들은 힘이 아니라 상처가 되어 밑도 끝도 없는 고집으로 나를 지키고 싶어진다.
#나이가 들면 포기하기가 싫어지는 것 같다. 선택지는 좁아지고 더 나은 미래는 이제 상상하기 어렵다. 가능성은, 꿈꿀 수 있는 자유는 언제나 청춘의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내가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놓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꼰대가 되어가는가.
#주변의 친구들이 문을 닫는 순간을 볼 때가 있다. 20대때 수많은 문을 열어두고 했던 이야기들이.. 현재의 상황에 의해, 마음의 상처에 의해, 걱정에 의해 수많은 이해 관계에 의해 하나씩 문이 닫힌다. 이해하고 싶지 않거나 논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생기고 그렇게 문이 닫힌다. 아마 나 역시도 그러겠지.
#가끔 최은영의 <순애언니>가 생각난다. 어떻게 “엄마”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순애 언니”를 져버리는 일을 수 있었는지 나는 안다. 상처받지 않는 관계들을 찾고 싶고, 힘든 일은 피하고, 안 좋은 것은 보지 않고 싶다. 일상은 숨막히지만 이 일상에 안도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과 싸우기엔 난 이미 일상에, 기억에, 삶에 두들겨 맞아서 그로기 상태가 되어 있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난 종종 닫힌 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나의 순애 언니와 내게 무자비하게 들이닥치는 감정과 누군가의 상처들. 그 지겨운 레퍼토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