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인사회> 36화
종이 울린 뒤에도
아이들은
바로 흩어지지 않았다.
복도 끝,
사람이 잘 모이지 않는 자리에서
서아는
지민과 함께
계단에 앉았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꺼냈고,
누군가는
가방을 어깨에 올렸다.
움직임은 있었지만
서두르는 기색은 없었다.
수업은 끝났지만
대화는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까 그 말 있잖아.”
지민이 말했다.
서아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계단 아래를 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아무 말 안 하면
다른 사람이
대신 말한다는 거.”
서아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조용히 답했다.
“응.”
지민은
자기 휴대폰을 열었다.
메시지 창이었다.
손가락이
몇 번 움직였고,
문장이 정리되어 있었다.
토론 정리
— 기술은 관계를 바꾸지 않는다.
— 이미 약해진 걸 보이게 할 뿐이다.
—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지민은
그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대로 보내기에는
조금 망설여지는 문장이었다.
“이거,
보내도 돼?”
지민이 물었다.
서아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그냥
정리한 거잖아.”
설명도 없고,
주장도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가볍게 느껴졌다.
지민은
그제야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단체방이 아니었다.
딱
한 사람.
말을
확산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
오, 이 말 좋다.
누가 한 거야?
지민은
서아를 봤다.
서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들었어.”
지민은
그 말을 그대로 옮겼다.
그냥 들은 말이래.
그 문장은
더 이상
출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끝났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서아는
주변을 둘러봤다.
아이들은
각자
이어폰을 끼고,
각자
자기 화면을 보고 있었다.
말은
소리를 잃은 채
움직이고 있었다.
누가 말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어디로 흘러가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버스가 도착했고,
문이 열렸다.
서아는
뒷자리 창가에 앉았다.
창밖으로
학교가
천천히 멀어졌다.
익숙한 건물이
조금씩 작아졌다.
휴대폰이
가볍게 진동했다.
지민이었다.
방금 그 말,
다른 애도 물어봤어.
서아는
잠시
창밖을 보았다.
누가 했냐고.
그 문장은
이미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서아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이 말은 이제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이
여러 사람을 지나며
조금씩 자리를 바꾸는 순간,
그 말은
더 이상 한 사람의 것이 아니게 된다.
버스가 출발했다.
서아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말은
이미 전달됐고,
그걸로
충분했다.
말은
주인을 잃을 때
가장 멀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