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자리에 앉는 사람

<핵개인사회> 35화

by 신 작가 수달샘

미라는 그날도 같은 카페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종소리가 한 번 울렸다.


이번에는
낯설지 않았다.


안쪽 자리.
햇빛이 닿지 않는 곳.


미라는 의자를 당겼다가
잠시 멈췄다.


바로 옆 테이블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여자였다.
노트를 펼쳐 두고
연필을 쥐고 있었다.


서로 보지 않았다.


그게
규칙처럼 느껴졌다.


미라는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컵을 내려놓는 소리,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

머신이 김을 내뿜는 소리.


말은 없었지만
시간은 함께 흘렀다.


같은 공간 안에서
각자의 속도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후
옆자리 여자가
의자를 조금 밀었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살짝 긁었다.


미라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여기 자주 오세요?”


여자가 물었다.

질문은 가볍게 떨어졌다.


대답이 없어도 괜찮은 톤이었다.


“네.”


미라는 짧게 답했다.


“저도요.”


여자는 노트를 덮었다.


그 말로
대화는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여자는
조금 더 말을 붙였다.


“이 자리가

편하더라고요.”


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은 필요 없었다.


빛이 닿지 않는 자리,
말이 길어지지 않는 거리,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방향.


그 이유들은
굳이 꺼내지 않아도
이미 공유된 것 같았다.


둘은 각자의 컵을 들었다.

거의 동시에 마셨고,
거의 같은 순간에 내려놓았다.


미라는 문득
집을 떠올렸다.


집에서도
이렇게 앉아 있었다.


각자 다른 자리에,
각자의 일을 하면서.


차이가 있다면
여기에서는
그 모습이 설명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었다.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
그게 미라에게는
작은 안도처럼 느껴졌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혹시
내일도 오세요?”


미라는 잠시 생각했다.

그 말은
약속처럼 들리지 않았다.

확정도 아니었고,
기다림을 요구하는 말도 아니었다.


다만
가능성을 남겨두는 질문이었다.


“아마.”


미라는 그렇게 말했다.

여자는 웃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미라는 노트를 꺼냈다.


오늘은
새 문장을 쓰지 않았다.


대신
옆자리의 기척을
조용히 의식했다.


종이 넘기는 소리,
연필이 멈추는 순간,
컵이 내려놓이는 타이밍.


연결은
항상 말보다 먼저 온다는 걸
미라는 알고 있었다.


카페를 나서며
미라는 한 번 더
그 자리를 돌아봤다.


의자는
다시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었고,
아무 표시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도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있을지,
없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일,
그 자체가
이미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게 미라에게는
충분한 변화였다.


관계는
약속이 아니라
반복으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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