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나는 이 정도면 됐다.>

프롤로그

by 신 작가 수달샘

하루를 다 살지 못한 날들이 있었다.
해야 할 일은 남아 있었고,
말하지 못한 말도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다음 장면을 불러왔지만,
몸은 이미
오늘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날의 나는
끝내지 못한 것들 앞에서

자꾸만 멈춰 섰다.
하루가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붙잡아 세웠지만,
사실은 이미
많이 사용된 상태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전의 나는
이런 날을 실패라고 불렀다.
다 하지 못했으니까.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으니까.
어제보다 나아졌다고 말할
근거를 찾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하루의 끝에서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왜 그랬는지 설명하라고,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건지
정리하라고.


오늘이 부족했던 이유를
말로 붙잡아 두면
내일은 조금 나아질 거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 질문들이

나를 앞으로 데려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오히려 오늘을
더 무겁게 남긴다는 것도.


질문은 많아졌지만
잠은 더 얕아졌고,
정리는 했지만
마음은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하루를 평가하는 일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잘했는지 묻지 않고,
못했는지 따지지 않고,
그냥 여기까지 온
사실만 남겼다.


아침에 시작했던 마음과는
다를지라도,
중간에 흔들렸을지라도,
그래도 오늘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는 사실만.


오늘의 나는
아주 대단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성과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하루도 아니었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았고,
완전히 놓아버리지 않았고,
자기 자신을
함부로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하루를 끝내기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다.


그 정도면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


이 글들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기록이 아니다.
어제보다 성장했음을
증명하려는 글도 아니다.


다만
하루를 끝내기 전에
나를 다시 데려오지 않기 위한 글이다.


이미 지나간 오늘을
붙잡고 서 있지 않기 위해,
내일로 넘어가기 전에
오늘을 제자리에 두기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 밤,
이 글을 연 누군가가
하루를 떠올리며


“나도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라고


속으로
한 번쯤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