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원 Dec 09. 2024

도시의 생얼 4

디스토피아 한국을 구성하는 감정

지난주 평균 스크린타임이 평소의 두 배다. 뉴스라이브를 보느라고 머릿속에 굴리고 있던 생각이나 글감이 다 날아갔다. 일도 제대로 안되고 회의 중에도 뉴스와 연결되어 있다. 2분 차이로 ‘속보와 철회’, ‘철회의 철회’를 챙겨보며 내적 탄식과 각성을 번갈아 하고 있었다.  


공포 > 탐욕, 무관심, 오만, 망각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은 너무 오만하다. 스스로의 기반이 어떻게 조성된 건지 깊이있게 성찰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알면서도 나 역시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다. K리그는 안 보다가 월드컵 때쯤 한국 축구 선수이름을 겨우 파악하는 수준으로 정치에 관심을 둔다.

최근 몇 달 아침마다 뉴스를 접하면서 2016년의 겨울보다 한참 더 퇴행적임을 감각했다.(그때는 태블릿 발견 이후 바로 손절 치지 않았는지) 하지만 시간을 들여 관심을 두기엔 생업과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많은 현실이었다.

결국 12월 3일에 공포를 느끼게 되어 무관심의 시기가 끝났다. 그 공포는 탐욕이 기저에 깔린, 지금 내가 욕망하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될까 하는 공포다. 탐욕지수와 반비례하는 공포지수 - 그나마 아직 공포를 감각해서 다행인 건가.


부채감

12월 3일 10시 30분 헬스장 탈의실에 "자기야, 계엄이라는데?" 도망쳐야 돼?"라는 귀가 따가운 통화소리를 들은 것이 시작이었다. 뉴스를 틀었고:

'누가 이런 가짜영상을 만들까?' 

라는 생각은

'차에 휘발유가 얼마나 있었지?'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기난긴 밤 유튜브 라이브를 보면서 마음에 남은 건 부채감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나도 독립운동을 했을거라 막연히 상상했던 내 자신의 용기는 단순한 망상임을 깨달았다. 동시대에 일어나는 사건을 대하는 나의 태도로 숨겨온 패가 까인 느낌이었다. 이런 나와는 달리 군용 차량 앞에 엎드러진 사람들, 총부리를 잡는 사람(안귀령 님), 마스크를 써 얼굴이 보이지 않는 무장군에게 몸을 밀착한 사람들 여러 유튜브 라이브를 번갈아가며 다리를 덜덜 떨면서 시청했다. 근처에 있었다면 갈 수 있었을까? 그다음 날 무사히 출근하며, 전날 국회 앞사람들이 만들어준 일상에 대한 감사 이상의 부채감을 해결하고자 주말에 국회 앞으로 나갔다.


배타성, 타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도시에 살권리(카를로스 모레노)의 95page 전후에 기록된 내용을 요약하면 -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고 닿기 쉬운 초연결 세상을 살면서 타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장벽을 쌓고 구역을 나누는 것에 찬성하는 세상에 산다. - 돌이켜 보니, 내가 12/3에 계엄상황을 지켜보면서 느낀 두려움은 모든 군인이 같은 복장을 입었음에도, 그들 중 누군가는 이 상황을 게임처럼 여기거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상상이었다. 타인을 향한 내재된 두려움이 군인들을 움직이는 무지한 힘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컸다.


혐오

22년 대선시기 이른바 2찍이라 불리는, 대선기간 중 한동안 밥을 혼자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했던 대화들도 생각나고, 문재앙이 망친나라 윤석열로 바꿔야 한다고 스토리를 올리던 어느 인친에 대한 혐오, 그리고 계엄이 시작되자마자 비트코인 이야기로 들썩인 어느 탐욕이 영혼을 지배해 버린 대화들에 대한 혐오, 그리고 이어질 혼란동안 내 마음을 지배하게 될 혐오는 다시 공포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인류애의 시작은 부끄러움

최근 내가 소비한 스크린 타임 중 가장 귀한 시간은 한강작가의 연설 '빛과 실'이다. (전문이 올라오는 대로 다운로드하여 필사하리라.) 한강작가는 사랑에 대해 질문하고 계속 쓰려는 작고 빛나는 생명체 같아 보였고 조금의 마음의 영향이나 공격도 삼가는 조심조심한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자주 혼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나마 남은 정신을 살려가며, 뇌의 용량 결핍으로 더 즐겁게 토론한 책 <도시에 살 권리>에 새겨진 문장 중.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 - 인류애를 구현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 인류애에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카를로스 모레노의 문장을 보며 큰 산을 옮기기 위해 눈앞의 돌을 옮기듯, 나는 희망을 품는다.

거시적인 주제나 문장에 도달하기 전, 부끄러움과 부채감을 성찰한다면 탐욕과 혐오를 멈출 수 있을 것이라고. 내가 하려는 모든 행동 중, 인류에게 부끄러울 일 앞에서는 손과 입을 멈출 수 있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