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텔라 Mar 14. 2023

‘진짜 나’는 이렇게 만나는 거래요.

리얼미는 남친이 아닙니다.


오늘 새벽글쓰기 학교의 글감, 화두다.

리얼 미. 진짜 나.

남친이 아니라 나!! ㅎㅎㅎ

주제 말에 ‘그는 요즘 뭐라던가요?..’라고 써서 리얼미가 남자친구나 남편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글벗님께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은하수님 자꾸 놀려서 죄송합니다. 너무 귀여우셔서..ㅎㅎ)


리얼미와 소통하고 있느냐는 질문은

쉽게 말하자면 보이는 나 말고 보이지 않는 나, 육신의 나가 아닌 정신의 나. 사회속에 내가 아닌 내 마음속에 나는 누구이고 그와 어떻게 소통의 길을 쥐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내 이름 석자가 내가 아니다.

나는 내 이름이 싫었다. 손지선 이 이름으로 나를 드러내면 사람들이 어색해 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지금 이 이름이 스텔라라고? 어색하시죠? 저도 어색합니다. 그렇다면 상상한 장면 현실화 성공!!ㅎㅎ)


이름이 특별히 촌스럽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촌스럽다고 느꼈다. 알고보니 이름의 문제였다기 보다는 이 이름으로 살아온 나의 시절들을 바라보는 내 관점의 문제였다. 그래서 29살 미국으로 현실도피성 ‘도망’을 가기전에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왜 가는지, 미국에서 얼마나 있을지, 그 당시로서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는 아무도 관심없는 나의 이름을 정성을 다 해 지었다. 영어 이름마다 어원이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알게 됐다. 스텔라. 별 그것도 바다위에 별을 의미한다고 하는 해석에 마음이 확 꽂혔다.


나는 별이고 싶었나보다. 나는 나로서 빛나는 그냥 존재자체로 의미가 있는 별이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탄생했다. 스텔라

(맥주 이름은, 그 뒤에 인식을 했고 최근에 누텔라와 어감이 비슷하다는 것도 글벗님 덕에 인식했고, 오늘은 심지어 떡볶이집 창업했냐는 말도 들었다.)

나름 슬픔끝에 도망끝에 만든 이름인데, 이렇게 맥주이름 떡볶이집 이름으로도 불리는게, 싫으면서도 좋다. 자기 세상밖에 모르던 어린아이 하나가 세상속에 등떠밀리듯  툭 튀어 나와 어설프게 섞이는 느낌, 지금의 나의 삶의 모습을 이름의 정체성이 대신 말해주는 것도 같고.





내 직업도 나는 아니다.

나의 현재 직업은 쓰고 쓰게 하는 사람. 그리고 최씨 5인의 관리자다. 이건 사실 직업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직업의 정의는 어떤 일을 하고 그 일로서 돈을 버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최씨 관리인이라고 돈을 받지 않는다 (아. 아닌가. 남편에게 버는 월급이 그 돈이 아닌가?) 나는 글을 써서 돈을 받지 않는다.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받는 회비는 돈이 아닌가?)

앗, 이거 직업맞구나.


그런데 다행히(?) 이 직업도 내가 아니라 한다.

나는 이 직업을 사랑하는 듯 하지만 가끔 아니 자주 아닌것도 같고.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어디를 향해 가는 과정이고 종착지는 아닌듯 하니, 이건 내가 아니다.





오늘, 주제는 누가 냈는데. 디럽게(?!) 어렵다.

진짜 나와 소통하냐고, 진짜 너가 뭐냐고?

어쩌라고? 어떨티비?


그게 내가 아닌데, 뭐 어쩌라고.!!


사실, 나는 우리 모두 이 소중한 새벽 1~2기간

글벗들이 그 어쩌라고 속에 자신을 담궈놓고 생각해 보는 시간들을 갖기를 바랬다.

오랜시간동안 나는 정말 궁금했었다. 나는 뭐길래 이 세상에 던져졌을지. 왜 이 세상에 왔고 지금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내가 가진 지구미션은 당췌 뭐길래 이렇게 손에 안 잡히는지.


모든 이유가 하나로 꿰어지는 첫 번째 순간은

30년이나 기다려서야 만났다. 아! 반쪽자리로 살아온 내 모습이 나머지 반쪽을 드디어 만났구나.

지난 세월은 그럴려고 살아졌구나. 내가 완전한 반쪽이라는 것은 나머지 쪽을 만나고서야 알아볼 수 있는 법이었다. 그 때, 나는 비로소 지난 내 고생과 그 말로 설명하지 못할 아픔들을 대략 해석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 30년을 통째로 그 하나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통속에 살아냈던 매일이 얼마나 긴데, 그깟 남자 하나(?)로 다 퉁을 치냐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 순간이 있다.

지나고 나야 지난 세월에 하나의 축으로 꿰어지는 그런 순간.


우주에서 내려다보면 우리의 인생은 ‘순간의 기억력’으로만 인식된다고 한다. 하루하루 이렇게나 지난하게 살아내지만 결국 우리가 다시 각자의 별로 돌아갈 때는 그 사람에게 반짝이는 한 두 가지 순간기억만을 남긴다고.


당신의 반짝이는 순간은 무엇일까?

또 앞으로는 무엇이고 싶은가?


나의 첫번째 반짝이는 순간은 그를 알아본 그날이었고, 두번째 반짝이는 순간은 이제 언제올지 모르겠다.


30에 왔으니 60에 왔고 90에 한번 더 오려나?

세번의 반짝임. 이 긴 인생을

단 세번의 반짝임을  만나기 위해 산다고?


그런데 보면..

사실, 크게 보면 인생이 이토록 별거 아닌건가? 싶기도 하다.

이 별거 아닌게 이렇게나 어려워서 매일 발버둥을 치는것인지. 별거 아님을 어느 날은 깨달았다가 삶에서는 자꾸 잊어버려서 그걸 알아채려고 매일 이렇게 새벽을 깨우고, 글을 쓰는것은 아닐런지.


일단 내가 한바퀴 크게 경험한 바에 따르면 지금의 나는 그 언제가 만날 (지금으로선 60대로 추정됨) 반짝임을 만나기 위해 산다. 그 때가 되면 이 모든 망설임, 고민, 짜증, 눈물, 회한등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경험에서 나온 믿음이 있다.


나의 리얼미는 그곳으로 가면 알 수 있다고 말해주지만 사실.내가 가는 것이 아니다. 발걸음은 내가 걷지만 세월이 등을 떠밀어 주고 나는 그 떠밀림에 발걸음을 옮긴다. 어찌됐든 내가 그 전에 죽지 않는다면, 나의 60은 오게 되겠지만 그 길을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걸었느냐 아니냐로 반짝이는 순간에 내가 서있을 곳이 정해지는 거일테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찾기 위해 매일 헤맨다.

그리고 신중하게 찾았다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몇 걸음 내딛다가 자주 주저앉는다. 주저 앉은채로 쉬고 싶으면 편히 쉬면 될텐데. 주저 앉아 짜증을 낸다.그렇게나 짜증을 낸다. 함께 걷던 사람들에게 미안한마음도 들지만 짜증이 멈추지를 않는다. 그럼 일어나서 가면 될텐데 금방 털고 가고 싶지도 않아한다. 이런 나의 변덕과 이상함에 질린다.


다행이다. 질려도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만들어 놓아서 나는 비로소 혼자가 아닐 수 있다.


또 다행히, 내가 되게 특별히 문제는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게, 알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짜증을 내면서 꾸역꾸역 산다고들 한다.

얼마나 인식했냐, 얼마나 표현하느냐의 차이일 뿐.


나는 이 마음들을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들과


너 솔직히 인생 별루지?
사실 나도 그래.
왜 사는지 알아?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그래도 이런건 좋아. 좋은거 오랜만에 나왔는데. 자랑한번 할까?
좋아!! 들어보니 아주 기쁘네, 잘 했네. 이런 거 또 생기길 기다릴테니 많이 만들어와!!


이런 모양새로 진짜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눌 사람들, 친구, 벗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그렇게 찾아낸 사람과 함께 살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그런 사람과 현재 아이를 넷 키우며 살고 있고 소원이 없을 것 같은건 살아보니 그렇지 않고,

그 말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해졌다.


너와 나 말고 진짜 다들 이렇게 사는거 맞지?

이 질문에 함께 동참해 줄 진짜 나를 드러낼 용기를 가진 사람들.


그 사람들과 매일 새벽에 만나 이 마음을 나누는 이상, 여전히 주저앉고, 짜증내고, 걷는것도 뛰는것도 아닌, 쉬는것도 아닌 삶을 살고 있지만 적어도 외롭지 않다. 그래서 나의 60까지 그럭저럭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안전지대. 벗들의 안전지대.

별똥별처럼 언제 떨어질지 모르지만, 너와 나의 반짝이는 순간을 함께 기다려줄 진짜 인생친구.


이 시간과 공간을 함께 하고 있는 나는...

이건 리얼 미, 진짜 나인것 같다.


하루에 1시간만 진짜 나와 만나도 성공할 수 있다고 김미경 선생님이 책에서 그랬다.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

어쩜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이 딱 1시간인것을 딱!

알고 말씀하신 것처럼 ^^



오늘도 쓰기 전에는 찌뿌둥 하더만

쓰고 나니 한결 낫다.!



오늘 쓰기 전의 나는

새벽글쓰기만 하고 관리인 5인 모두 내보내고 눈떠질때까지 잠만 자야지!! 실컷 무기력해버려야지!!

이런 결심(?)을 했는데, 글을 마무리 하는 지금으로선 그러지 않아도 될 기분이다.



일단 최씨 5인을 무사히 각자의 사회적 위치로 내보내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 보고 그 다음 다시 나에게 묻고 그 물음의 답대로 해볼꺼다.


이 자유를 가지려고 그렇게 애쓰면서 살았으니,

쓰기전엔 무기력이란 표현밖에 생각이 안났는데 쓰고 나니 무기력 대신 ‘누림’이란 표현으로 태도도 바꿔도 지는 것 같다.


글쓰기의 힘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