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정도는 건너야 만나지나요, 세상 부부 인연

나는 그의 뒷통수를 감지했다.

by 스텔라

뉴욕 맨하튼의 작은 학원

학생의 순수함도 잃었고, 직장도 잃은 한 노처녀가 학원의 공기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었다. 이제 막 서울에서 뉴욕으로 도착한 회색 가득한 그녀. 옷차림도 회색빛, 얼굴 빛도 회색빛의 그녀였다.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원하는 것을 끌어당기면 이루어진다길래 열렬히도 열심히 소원했던 그였다. 직장을 갈구하고, 시험에 합격하기를 기원했으며, 내가 마음에 담은 그가 나를 바라봐주길 소원했다.

그렇게 20대 전부를 열렬히 구하는 것에 열정을 쏟다가 그녀는 이제 지치고 말았다.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지만 그렇게 선택한 뉴욕행 비행기. 그 어떤 새로운 삶을 기대했다기 보다는, 그저 삶의 무대를 옮겨보고 싶었다. 12년전 이맘 때, 뉴욕공항에 비를 잔뜩 머금은 11월의 뉴욕의 알싸한 날씨가 낯설면서도 신선했다. 무엇을 기대하다가 지친것이 습관이 된 그녀 애써 '아무 기대하지 말아야지' 어금니를 앙 다물었지만, 심연의 그곳에서 꾸물거리며 올라오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뉴욕행 비행기에서 내가 쓴 다이어리

유독 외로움이 짙은 시절, 다이어리에 이런 글이 많이 써 있다. "바로 이 사람이라는 그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그걸 알아보는 순간이 정말로 있을까?" "그 느낌을 알아챘다면 바로 그 순간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만날 때 마다 최선은 다 했으나, 그 인연은 모두 내것으로 남지 않았다.

20대의 청춘, 꽃다운 나이지만 모진 마음은 꽃답지도, 영글지도 못했기에 좋은 사람이 와도 내 인연으로 만들 재주가 없었다. 그렇게 제법 많은 인연들을 뒤로 하고 선택한 미국행에서 나는 무엇을 바랬을까?

그 시절의 다이어리를 다시 뒤적거려 본다. 놀랍다. 내 기억속의 12년전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삶에서 더 실망할 것도 없이 허무주의에 빠진 29살의 애매한 청춘'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시절을 기록한 나의 글은 나의 기억과 확연히 달랐다.

이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일 가운데 가장 멋진 일을 내가 선택할 기회가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좋은 인연, 연인'을 만나고 싶다.


해방감이란 이름의 맨하튼

공부를 하겠노라고 왔지만 공부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높은 곳만 쳐다보는 고질병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의 이상향은 콜롬비아대학의 저널리즘 석사과정이지만 나의 현실은 토플, 그것도 기초라이팅부터 다시 손봐야 하는 단계였다.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은 국경만 달리했지 똑 같은 나였다. 그렇게 공부에 대한 현실감 있는 계획도 없이 그렇다고 그렇게 로망하던 맨하튼을 누리지도 못하고 짙은 나의 방황은 계속 됐다. 무대를 달리해서 새로워지고 싶었는데 서울에서 뉴욕으로 배경지만 달라졌을 뿐 내가 하는 행동은 아무것도 다를게 없었다. 그렇게 학원시간이 되면 학원을 가서 수업을 연달아 죽 듣고 끝나면 커피한잔 손에 들어 하염없이 시내를 걷던 일상을 반복했다. 그래도 맨하튼의 상징들 엠파이어스테이트나 42nd st. 트라이베카, 유니언스퀘어, 자유의 여신상, 티비나 영화에서 보던 곳을 육안으로 구경하며 젊음과 고독의 기운을 만끽하며 거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끔 진한 행복감을 맛보기도 했다. 구석구석에 있는 서점, 빈티지 샵이나, 맛있는 디저트 집, 커피숌을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겁기도 했다. 서울처럼 여전히 방황을 했어도, 그곳에서는 느끼지 못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분명 그 곳에는 있었다. 하지만 온 도시가 크리스마스 알람으로 무장한 듯 반짝거리는 조명과 화려한 트리장식으로 둘러 쌓인 맨하튼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일상이 계속 즐겁기는 무리였다. 고유의 칼바람이 뼈를 때렸고, 외로움이 그 차디찬 바람을 타고 가슴에도 사무쳤다.

29살의 크리스마스, 화려한 맨하튼에서 난 지독히도 외로웠다.


다시 한인타운의 작은 학원

학원을 가기 싫은 날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나이에 벌어놓은 돈도 없이 시집자금이라고 생각하고 투자해달라며 부모를 졸라서 온 유학이기에 학원생활에 적어도 성실은 해야 했다. 아침 일찍 이모네집인 뉴저지에서 나오는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를 달리고 30분은 걸어야 도착하는 학원은 나의 출퇴근지이자 주 생활무대였다.

외국인들만 잔뜩 모여있는 학원에서 그 누구와도 섞이지 못하는 방황기를 겪고 2009년 해가 바뀌자 학원도 바꿨다. 한국스타일로 가르치는 토플학원, 종로구에도 수없이 많은 토플학원을 다니려고 이 멀리 왔나, 내가 한심하면서도 한인들 사이에 있다는 것만으로 빠르게 정서적 안정을 찾아갔다. 나는 이곳에 정착해야만 했다. 그렇게 방황과 출퇴근으로 슬그머니 적응기를 보내고 이제는 제법 내 자리같은 그 곳에 여느때와 같이 도착한 강의실, 뒷자리 내 고정석에 짐을 풀었다.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본능적으로 강의실을 한번 훑어보던 내 시선이 다시 왼쪽 앞자리 누군가의 뒷통수에 멈춰섰다.


내가 왜 이곳에서 시선이 멈추지?

맥락이 없는 시선고정이었다. 캡 모자를 쓴 특별할 것이랄 것은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 뒷모습에 내 시선이 자꾸 머무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당황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나는 그곳에서 시선과 관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수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전격적으로 그를 훔쳐봤다. 얼굴의 4분의1정도만 흘낏, 강사를 쳐다볼 때마다 옆라이 잠깐씩,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강아지처럼 생긴 인상이긴 하지만 특별한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내 나이 또래의 남자로 보이는데, 분명한 것은 강하게 느껴지는 어떤 기운이 나에게로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찌릿하는 느낌이기도 했고, 뭔가 셀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 감정 뭐지? 하는 당혹스러운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다시 내 감정을 객관화 시켜보려고 해도 전반적으로는 마음이 다시 뛰고 설레고 있는게 맞았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감정이 낯설기도 당혹스럽기도 했다. 이성적으로 수식이 맞아야 하는 나의 성미상, 처음보는 사람에게 아니 얼굴도 아닌 뒷통수에 대고 느껴졌다는 것에 해석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낯익은 얼굴들 사이에 낯선 것을 보아하니 오늘 처음 온 사람 같기도 하고, 나도 이제 한 달 남짓 이 곳 생활을 했지만 딱히 물어볼 사람도 친분도 없었다.

이 느낌에다가 주석을 달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방법은 모르겠고 시간에 흐름에 어느덧 수업은 끝나 있었다.



스터디룸에 앉아있는데.

수업시간이 그렇게 끝나고, 몰아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우왕좌왕 하다가 스터디룸으로 들어왔다.

공부를 혼자서는 하도 안 해서, 스터디가 있다길래 함께 하고 있었다. 함께 단어시험을 보고 리스닝을 한 챕터씩 풀고, 리딩공부를 하는 모임이었다. 다행히 왕고는 아니었다. 나이에 예민했던 그 시절, 내가 아주 많은 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이 스터디 모임에서 마음을 풀고 있는 중이였다. 다섯살 어린 동생들부터 몇 살 많은 언니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모여 있어 쑥쓰럽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모임을 주도하던 리더도 둥글둥글 좋은 성격의 사람이라 까다로운 내가 맴버들과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기도 했다. 뒷모습 에너지에 대한 의문이 해결이 되지 않은 어리둥절한 마음을 털어내려고 애쓰던 중에 스터디 시간이 시작됐다.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고 바로 공부를 시작하던 리더가 오늘은 보드칠판 앞에 서더니 말을 꺼낸다.

오늘은 스터디 시작에 앞서, 소개할 사람이 있어요.
오늘부터 우리 스터디맴버로 합류하게 되신 최성필씨랍니다.
환영해 주시고, 성필씨는 간단한 자기소개 좀 부탁드려요


앗, 저 ... 뒷통수!!!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사람들 물결에 사라졌던 저 뒷통수가 정면얼굴을 달고 우리 스터디룸에 나타났다. 그리고 뭐라고 서서 얘기하고 있다. 얼굴이 빨개지지 않으려, 태연한 척 하려고 너무나 애를 썼다. 그는 나보다 한 살이 많다고 했고 보스턴에 있다가 내려온지 얼마 안 됐다며 잘 부탁한다고 했다.

목소리가 좋았다. 게다가 얘기할 때마다 살짝씩 들어가다가 웃을때는 확 패이는 보조개는 치명적이었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강아지상 얼굴에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에 내가 환장하는 보조개까지, 그리고 딱 좋은 한살 많은 나이에 성격좋아보이는 저 서글한 말투까지..망했다.연애감정 이런거 느끼면 안되는 시국인데..



난 그때 직감했다. 이 사람과 나는 인연이 될 것이라는 것을. 보통의 지나치는 인연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과 운명의 짝까지는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가 마음에 들어오자 마자 그가 처한 현실도 내 마음에 함께 들어왔으니까,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우리, 우리가 공통으로 학생이기엔 늙었지만 니 인연은 이게 마지막이다라고 하기엔 덜 늙은 나이. 이렇게 애매한 나이 다시 고등학생, 대학생의 마인드가 되어 우리는 함께 '토플공부 동지'가 되었다.


그는 빠르게 내 마음을 접수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조금도 나의 첫 느낌과 감정을 새어나오게 한 적 없었고 철저히 틀어막기 위해 노력했다. 최대한 감정에 끄달려 가지 않으려 애썼다. 나의 감정과 상관없이 그도 나에게서 어떤 에너지를 얻었던걸까? 그렇다고 말한적은 없지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나에게 쏟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너를 이성으로 관심이 있어해"라는 말은 사실 썸을 타는 연인사이에서는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런 말이 신성한 썸의 기운을 퇴색시키기도 한다. 이런 닭살 대패 언어를 함부로 쓰지 않고 가만가만히 나를 챙겨주는 뉘앙스만 풍기는 것 조차 마음에 쏙 들었다. 스터디가 결성되었는지 꽤 되었지만 사적인 영역이 분명한 어른학생들이기에 그 누구도 '회식'이나 '밥먹자'소리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때 그가 합류했다. 첫날부터 "우리 이것도 인연인데, 회식해야죠. 공부의 시작은 음주가무입니다. 하하" 넉살좋게 식당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내 앞자리에 앉은 그, 나만 알 수 있는 신호들로 챙겨주는 것이 느껴진다. 이 매너가 원래 갖춘 매너인지 관심을 전재로 한 매너인지 알아내느라 온 신경을 집중했다.

태연하게 밥을 먹으며 연신 그를 관찰했던 첫날의 나, 나와 달리 자신의 감정에 직선인 그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빠르게 연인사이가 되었고, 그는 보통의 젊은 남녀사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강한 안정감을 나에게 주었다.




12년 후 2020년 11월의 새벽 5시40분이다. 내 옆에서 또각또각 키보드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본다. 11년전 맨하튼의 작은 학원의 스터디룸에 있던, 내가 자주 훔쳐보던 그 옆모습 그대로다. 여전히 잘 생겼다.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 이상형과 같이 사는 것은 불가능 하다던데, 어쩜 나는 무슨 복이 있어서 평생 봐도 질리지 않고 볼 수록 찰떡같이 내 스타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남자와 살고 있는지...

주름이 좀 더 생겼고 깨우자 마자 눈꼽도 안 떼고 서재방으로 들어온 바람에 잠옷을 입고 있다. 주름과 복장과 장소 그리고 토플 공부가 아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 우리는 여전히 11년전 스터디룸의 그 에너지 속에 살고 있다. 말은 시키고 싶지만 서로의 작업에 방해가 될까봐 마음속으로 애정 에너지를 전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그 기운과 분위기가 똑 닮아있다. 달라진게 또 있다. 나를 글선생삼아 내가 운영하는 새벽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고 있어, 매일 글쓰는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다. 그저께 동네 까페에 마주 앉아 그에게 우리 '부부공저'를 준비해 보자고 했고, 그는 두 꼭지를 써냈고 나에겐 이 글이 그 기획의 시작원고이다.

참, 깜빡 할 뻔 했다. 우린에게는 함께 키우고 있는 아이가 있다. 그것도 넷이나.

10년전 맨하튼에서 서로를 알아본 불꽃 튀는 애정 에너지의 결과물 쯤으로 정의해 두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