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못해서 행복합니다
아내의 발이 되어주는 남자
"주유구 좀 열어주세요"
"아.. 네. 주유구라... 주유구 버튼이.. 어디 있을까?"
아무 버튼이나 일단 눌러본다. 갑자기 썬루프가 열리고 차 뒷좌석이 창문이 열리고, 다시 잠겼다가 트렁크가 열린다.
"저기요.. 주. 유. 구 오픈해 주. 시라. 고요!! 주유구 모르세요?"
"아.. 네. 네"
"엄마!!! 바로 그 왼쪽 아래에 있잖아요!"
큰 아이를 낳고 세 식구가 어른들의 이쁨을 받고 살던 미국 신혼시절, 우리가 부러워하는 유독 금슬이 좋으신 중년의 부부가 계셨다. 아저씨가 20년 만에 처음 와이프를 두고 한국에를 다녀오신다 해서 만난 저녁식사 자리.
그런데 이건 무슨 얘기지? "일단 기름을 다 채워 넣었는데 나 올 때까지 버티려나 몰라" 그날 자리에 있던 모두 이 말만 들어서 '무슨 말..씀..??' 할 때 나는 이게 어떤 상황인지 딱 알아채 버렸다.
같이 사는 20년 동안 아내는 차에 기름을 한 번도 넣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차가 신발과 같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는 동네니 1인 1차가 당연한 텍사스에서 '그게 가능해?' '말도 안 돼' 소리가 절로 나올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단박에 이해했다니.. 그 이유는 중년의 아내는 운전실력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그런 면에서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던 분이었기에 남편이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직관적으로 알아낼 수 있었고 뒷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게 사실이었다. 나도 그때까지 차에 기름 한번 넣어본 적 없음은 당연했고, 미국이라서 그랬나? 싶지만 그 고질병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찬가지다.
"여보 내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 그런데 운전 좀 해서 여기 좀 와주면 안 돼?"
"...."
"..... 알았어요.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나는 여전히 차를 모는 게 싫고, 자신이 없기도 하고, 무섭다. 면허를 딴지는 언 20년 운전을 전혀 안 하고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여전히 '20년 차 운전 초보'의 삶을 살고 있다. 불편한 점이 꽤 있다. 특히 아이들 라이딩 문제를 도맡아야 하거나, 지난주처럼 연일 폭우가 쏟아지는데 움직여야 할 때, 자유자재로 동선을 취할 수 없다는 게 나를 무기력하게도, 이렇게 삶에 진취적인 나를 일순간에 소극적인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으로도 변모시킨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과거 무용담이 되려면 지금쯤은 "그땐 그랬지" 하며 한 팔로 여유 있게 운전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여전히 운전대를 잡을 일이 있으면 승모근은 또 손가락이 안 들어갈 만큼 딱딱하게 굳고 건너편에서 큰 차가 지나가면 내가 운전자라는 사실을 까많게 잊고 두 눈을 꼭 감아버린다는 거다.
모든 면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운전을 기피하고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해석해보니 이런 내 삶도 나쁘지 않다.
일단, 원체 안정적으로 운전을 잘하고 안전에 민감도가 있는 남편이 자청해서 나의 발이 되어준다. 웬만한 가야 할 곳은 모두 대중교통이나 걷기 정신으로 승부 보려는 내가 안타까운지 그는 자주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또 더 자주 데리러 와준다. 장거리도 99% 그가 도맡아 하는 것이 당연해졌다. 나는 보조석에서 그가 운전에 지치지 않도록 조잘거리고 간식넣어주고 애들 변죽맞춰주면 된다. (사실 업무강도로만 치면 이게 더 어려운듯 한데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대중교통을 타게 되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꽤 많은 삶은 참 좋다. 특히 버스를 타고 차창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 풍경, 하늘, 차량, 간판을 생각 없이 쳐다보는 '멍 힐링'시간은 아이들에게 또 일상에 시달린 나에게 편안한 안식처 기도 하다.
20대의 나의 짙은 방황은 대부분 버스를 타고 달렸다. 회사는 그만두고 집에다가 그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했던 난 매일 정장을 입고 출근 코스프레를 했다. 갈때도 돈도 없던 그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낙은 '버스여행'이었다. 가난한 청춘, 때론 먹은 게 없이 너무 버스를 오래 타다 보니 속이 니글거려 아무 곳에나 내려 한량없이 걷기만 하다가, 지쳐 허기라도 달랠라쳐도 주머니속 셈에다 혼밥의 부끄러움까지 더해져 식당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하루 종일 굶어버린 나의 청춘이.
자양동에, 대치동에, 노원역에, 광화문에, 남부터미널에 그렇게 서울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얼마 전 두번째 책 원고가 하도 안 써져서 작캉스를 다녀오겠다고 남편에게 휴가를 내고 평창동 산자락에 있는 어느 작가님이 운영하시는 북 스테이 하우스에 1박을 예약하고 출발하던 날. 어김없이 짐을 바리바리 들고 나오는데 차 운전석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그가 반가웠다. 가볍게 볼 뽀뽀로 차비를 때운 나는 한손으론 운전대 반대편에 남은 한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커피를 마시며 다리를 꼬고 평안하게 창밖 풍경에 눈을 둔다. 문득 광화문에 도착한 내 눈에 26살의 내가 훤히 보인다. 거래처 미팅으로, 취재원 인터뷰로, 편집회의하다 커피심부름 나왔는데, 이대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꾸역꾸역 붙든 걸음으로, 또 내키지 않는 소개팅으로, 설레는 데이트 약속으로, 동기모임, 친구약속으로 청춘의 무게를 이고 지고 동동거리며 걷는 내가 풍경 곳곳에 서 있었다. 무엇을 해도 마음이 불안했던 그 시절의 영혼을 가만히 위로해주고 싶었다. 조금만 더 버티라고, 10년 후쯤엔 백마까지는 아니지만 따뜻하게 네 삶에 발이 되어줄 인생 파트너를 만나게 될 테니 그 시간을 잘 이겨내라고. 그렇게 20대의 서성이는 내 지난 영혼을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내 상식으로는 걸으면 될 것 같은 거리인데 그의 상식으론 '차 있는데 굳이 걸을 필요가 없는 거리가 10년간의 공동생활을 통해 간극을 맞춰가고 있다. 대중교통과 친하지 않던 그의 지갑에 드디어 교통카드가 상주하고, 버스,지하철 타다 보니 이게 서울살이에 참 편리하고 적합한 이동수단이라는 것을 그는 배웠다.
무조건 걷거나 대중교통만 고집하던 나도 가끔은 남편이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가만히 운전석에 앉아 두 팔에 가득 힘을 주어 본다. 막상 해보면 다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걷기도, 대중교통도, 운전도.
술과 차를 좋아하는 그와, 술을 전혀 못 마시고 운전은 할 줄 아는 나 사이에 '부인 장미 대리' 문화도 생겨났다. 집까지 2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에서 야구시합 후 저녁 회식자리 그의 동공은 연신 흔들린다. 딸린 6,5.4. 그리고 2세의 아이와 와이프의 가자미눈을 못 본 채 뒤통수를 따갑게 남겨두고 그는 끝내 야구 형님들이 권하는 술을 받아먹는다. 대리를 부르자니 돈도 아깝고 6명이 딱 들어차는 차에 탈 자리도 없다. 한숨을 푹푹 쉬며 운전석에 앉아 승모가 승천하도록 온몸에 긴장하여 고속도로를 밟고 집에 돌아온다. 그는 오자마자 뻗고 나는 네 꼬마를 겨우 다 원상복구 시킨 후 코골고 자는 그를 향해 한숨과 욕을 들이붓는다. 그리고는 문득 '아니, 거기서 여기까지 오는 대리비가 얼만데!!' 하며 그의 지갑을 빠르게 찾는다. 처음엔 지폐 한두 장을 빼다가 '아니, 왜 내가 일반대리비보다 싸야 돼? 그리고 내가 운전만 하나? 동반자들 다 씻겨 재우고, 정리하고 게다가 같이 누워서 잠도 자주는데,,,"
그날따라 유독 어디 쓸데가 있다며 넣어두었던 꽤 큰돈이 들어있던 그의 지갑은 장미 대리녀의 손을 거쳐 텅텅 비게 되었고, 그날 이후 크게 깨달음을 얻은 그는 차를 두고 술을 먹을 것 같거나, 혹시나 와이프가 운전대를 잡아야 할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질 날엔 지갑에서 현금을 빼 어디 다른 데다 미리 숨겨 둔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아예 싹 비워놓았다가 장미 대리녀가 빈정이라도 상하면 그날뿐 아니라 다음날 그다음 날까지 여파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까치밥처럼 지폐 몇 장은 지갑 속에 남겨둔다는 설도.. 난 못 이기는 척 그 돈이라도 챙겨두었다가 글이 너무 안 써지는 어느 날, 지리멸렬한 일상의 분위기 전환을 하고 싶은 어느 날 평소 못 먹는 '비싼 디저트 사치'에 그 대리비를 쓴다는 소문도 함께 흉흉히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