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똥은 식기전에....

고스톱에 담긴 부부의 서사

by 스텔라

"저는 엄마에게 걸래요"

"아니, 아빠가 더 잘하나?"

"2000원 투자하면 얼마벌 수 있어요?"

"아, 쌌다."

"오 투고, 여보 나 흔들었어요~"


고스톱은 참 매력있는 민속놀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한독립에 열을 올리는 대신 놀이와 게임에 중독되라고 일본통치자들이 퍼트린게 고스톱게임이라던데 과연 그 명성에 걸맞게 언제 어디서든 참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밌는 국민게임이다. 어제 오랜만에 아이들은 방학이고 내일 역시 한가한 하루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여유가 생겼던걸까? 아니면 방학이라도 여전히 나의 월요일은 새벽의무로 시작해야 하는데, 왠지모를 월요압박감에 반발하고 싶었던걸까? 뜬금없이 남편에게 고스톱을 들고가 물건을 확인하게 한 후 방으로 따라 들어오라는 눈짓을 했다.


아이들은 진짜 흥미에 즉각반응하는 유기체라했던가? 분명 살금살금 기어갔고 이제 막 시원한 안방침대에 마주 앉아 패를 돌리고 첫 패를 펼쳤을 딱 그 타이밍에, 막힌 인터체인지 뚫리듯 한꺼번에 문안으로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럴줄 알았어. 아빠 엄마만 재밌는거 하고 있네! 얘들아 여기 와봐~~"

"너희 아까 둘씩 놀이 파트너 정하드만. 잘 놀고 있길래 아빠엄마도 둘이 놀이파트너 한거지"

"방해 안하고 구경만 하는 조건으로 머물기, 아니면 나가야 한다~"

(넷다 단체로 입모아 합창을 한다) "네!!네! " 생전 들어보지 못한 떼창 대답, 남녀노소를 모두 순식간에 현혹하는 고스톱, 이 출구없는 매력은 과연 무엇이길래?






대학시절 캠퍼스는 꽃이 흐드러지고 많은 젊은이들이 학문을 탐하고, 이성을 탐하고, 취미와 동아리에 도굴을 팔때 시커먼 우리 동아리방에서는 연신 고스톱판이 벌어졌다. 이제 막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어른세상에 흉내라도 내 볼 수 있는 그 시절, 전공수업시간도, 조별과제미팅도, 데이트도 미룬 채 우리가 골몰했던건 '악기연습'도 '치열한 토론'도 아닌 그저 심심풀이 점심내기 고스톱이었다. 점심내기가 끝나면 짜장면집에 배달로 바통을 이어받아 저녁내기로 돌입한다. 저녁내기가 끝나면 술내기가 기다리고 있고 술내기 사이사이 간식내기. 돈떨어지면 건강고스톱으로 판사이사이에 푸쉬업과 윗몸일으키기로 땀을 낸다. 내기와 적당한 손목스냅 운동과 사이사이 주전부리를 하며 오가는 대화와 농담따먹기는 젊은 혈기의 우리를 땅굴속에 머물게 하기 충분한 매력덩어리였다.


"아가야, 니는 왜 더 좋은게 있어뵈는데 이거부터 묵냐?"

"아버님, 원래 똥은 식기전에...."

"뭐?? 하하하하.. 호호호호 "

세개 비슷한 결의 패가 덩어리져 있는 중 남은 하나의 패를 몹시 기대하고 있는 시부모님께 며느리가 말한다. "아버님 어머님 혹시 이거 기다리세요?" 하며 똥 피 하나를 이마에 턱 붙이고 이마에서 깔려있는 패로 공중조준하여 낙하시키는데 성공. "아이고 어머님이 싸신 그거 제가 치울게요. 대신 수고비로 피한장씩 주세요" "하하하하..." "호호호호..."

결혼하고 처음 시부모님과 함께 떠난 어느 조용한 섬 여행, 저녁상을 물리고 바다를 하염없이 보다가 이 말없으신 경상도 부모님과 어떻게 허물없이 친해져볼까, 새색시는 머리를 굴려본다. 그때 신혼여행 가방때부터 계속 여행가방속에 머물며 나와 자취를 함께 해온 고스톱이 번뜩! 생각이 난다.


"아버님, 어머님 이거 치실줄 아시죠?' 하며 시작해 한판승을 벌이고 까르까르 웃던 그때, 딸이 없이 무뚝뚝한 아들들에 익숙해지신 부모님은 생전 처음들어보는 고스톱 신조어를 날리며 연신 애교와 코맹맹이 소리로 부모님을 웃겨드리는 며느리를 예뻐 죽겠는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그런 나를 더 눈부시게 바라보는 새신랑 시선은 새초롬하게 외면하고 아버님 어머님 사이에 양쪽 팔짱을 끼고 바닷가 산책을 하며 웃고 즐겼던 날 불어오던 시원한 바닷 바람이 어제 우리집 안방 고스톱판에도 잠시 머물다 간다.





텍사스 외딴 시골집에서.~~ 사실 외딴도 아니고 시골집도 아닌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린 우리였지만 하루종일 창밖으로 개미한마리 볼 수 없을 만큼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남편은 좋았지만 그 사람 존재 하나가 나를 모두 채울 수는 없었다. 문득문득 외롭고 마음이 서늘해졌다. 유일하게 얼굴색이 같은 사람 남편에 대한 핑크빛은 텍사스의 작렬하는 태양빛에 금방 옅어져가고, 신혼의 설렘도 일상속에 잠식되어 '아, 더 이상 설레는게 없어' 할 때쯤 우리를 새로고침 해 준것은 다름아닌 '고스톱패' 한 세트였다.

그 요물단지 하나로 그 지겹던 하루가 틈 없이 뚝딱 흘러갔다. 그렇게 한가한 시간이 우리 인생에 다신 없을 소중한 때인 줄 모르고 함부로 그 시간을 그까짓 '고스톱놀이'로 유영했던 우리부부.


다시 고스톱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그때와 어제 밤 안방 풍경과 신혼방 사이에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훑고 지나갔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사는곳은 텍사스가 아닌 서울 한 폭판이고, 점당 1달러를 겨우 치던 우리는 어제 점 1만원 파격적인 10배 판돈을 올렸으며, 그땐 무관중이던 우리의 플레이엔 관중이 4명이나 다닥다닥 붙어 있다. 뭐든지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며 몇년 전부터 틈틈히 그림짝 맞추는 법, 놓는 법, 점수세는법등을 가르쳐 온 첫째 둘째는 제법 무엇이 고스톱의 관전포인트인지 안다.

얉은 지식을 동원한 그들이 우리에게 돈지갑을 가져와서는 투자자로 변모하기도 한다. 내친김에 경제교육에 돌입한다. 눈은 연신 패에 가있고 팔은 손목스냅으로 탁!짝!짝!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입은 이렇게 투자설명회를 개최한다.


"엄마는 투자금에 따라 이익배분을 할꺼고 원금은 보장못해. 하지만 배팅을 걸어, 따면 많이 따고 잃으면 원금회수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엄마 말했다."

"아빠는요?" "응, 아빤 아빠가 따면 투자금의 10%를 줄게. 너 2000원 아빠한테 투자하면 얼마 받게 되는거지?" 10퍼센트라는 것은 열등분중의 1, 너 지금 학교에서 배우는 분수 10분의 1이야.

"아. 그럼 안할래요. .10분의 1은 200원이니까, 나는 1800원을 잃는 거잖아요" "200원은 니가 투자로 번돈, 투자한 돈 그걸 원금이라고 하는데 그건 보장해준다는거야. 그럼얼마지?" "2200원이요" "그래"

그렇게 네 아이 각자의 성향대로 자신들이 가진 능력에 따라 부모 노름판에 차등 투자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잡은 고스톱속에 사남매의 왁자지껄 속에서도 문득 많은 인물들이 떠오른다. 4남매라 모이면 한명은 광을 팔수 있다고 좋다며 그 누가 시작이랄것도 없이 틈만나면 고스톱을 자주 쳤던 친정오빠언니동생이 생각에 이어 그때 몸담고 있던 대학 동아리방 매퀘한 냄새가 지금도 나는 듯 했다. 시부모님과 내가 그렇게 격없이 재밌게 놀았던 때를 추억했다가 태평양건너 뉴욕 스터디 맴버들도 떠올랐다가, 텍사스 신혼추억까지 지구한바퀴 추억여행을 한바퀴 하고 다시 안방 침대로 돌아왔다. 돌아와오니 파릇했던 뉴욕발 신혼 부부는 어느새 중년의 부부가 되어있다. 그들이 탄생시킨 아이들에게 둘러쌓여 투자공부를 위시해 부모유흥을 합리화 하는 여전히 놀짱인 중년의 부모. 어른들이 "세월이 어떻게 지난줄 모르게 무색하다." 했던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는 순간이다. 내가 언제 이렇게 늙었나 싶지만 다행히 한게 없는것 같은 패배감이 예전처럼 따라오지 않는 걸 보면서 안도했고, 행복했다.




나의 지난 고스톱판에는 항상 나의 불안감이 동행했다.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아, 다 놀고 있는데 알바하러 가기 싫다."

"이 나이 되서 비싼 달러 유학비 쓰면서 이렇게 누구집에 모여 고스톱이나 치고 한심하네 근데 내 발걸음은 왜 안떨어지는 거야.. 제일 한심한건 바로 너야....."

"저 남편은 결혼을 했는데도 놀 궁리만 하고, 통장 잔고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데 개념 없이 어쩔라구...."


늘 상황별로 있던 내 마음 한편의 고스톱판 내면의 소리들이다. 난 늘 '놀 자격'을 갖추지 못했거나 이럴 시국이 아닌데 이렇게 놀아제끼고 그것도 비생산적인 고스톱 놀이나 하고 있다는 죄책감, 굳이 판을 벌려놓고 늘 고스톱판에 나의 불안감을 등판시켰다. 안 놀것도 아니면서,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그 불안감이라는 텍.



어제 우리집 안방에서 벌어진 고스톱판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 꼬리표가 사라졌음을 느꼈다. 놀이 한마당을 정리하고 더 놀다 자고 싶다는 아이들에게 "방학이라고 너무 늦게 자면 안돼. 내일부턴 각자 자기가 만든 계획표대로 실천하는거다" 잠자리를 같이 정리해주며 아이들 한명한명과 사랑을 나눠본다. 일명 꽁냥꽁냥이라고 아이들이 이름 붙인 그 행위에는 허그뽀뽀 간지럼의 삼중주가 포함되있다. 이 꽁냥꽁냥을 네 아이들 각자와 해주다보면 30분이 훌쩍 지난다. 잘 시간이 늦었을때는 버럭! 해서라도 그 상황을 강제종료시켜야 하는데 내일 아침에 급히 양몰이 시켜서 보낼데가 없는 애들인데 뭐 어때. 싶고 이게 진짜 행복이다 싶은 마음이 꽁냥타임에 동행해 나를 노골노골하게 만들어 준다.



이 네 꼬마 악동들 하나하나 안아주고 굿나잇 인사를 하면서 고스톱판처럼 내 인생에 늘 따라다니던 불안감이라는 꼬리표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음이 느껴진다. 이 평온한 감정을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하는걸까?

나는 어제의 안방 맞고 고스톱에서 여태 쳤을 수천번의 판에서 느낄 수 없던 평온한 오락, 그 본연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만끽했다. 방금 글쓰고 있는 나를 찾아와 '이자 물기 전에 빨리 돈 갚아라'고 엄포를 놓는 저 배튀나우스 아저씨.

아, 놀땐 좋았는데 돈 갚을 생각하니까 짐 싸들고 집을 나가야 되나, 싶은 마음이 든다. 점 만원은 놀이가 아니라 도박아니야? 쳇, 완전히 평온하려면 아직 멀었나보다. 10년쯤 후 우리부부의 고스톱 세계엔 어떤 서사가 흐르게 될까? 그 때 다시 이 글을 꺼내 읽어보고 싶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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