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라 이름을 붙였으니 언제 출발을 했는지부터 말해보려고 한다. 나의 다이어트는 열아홉 살, 수능을 본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는 오십 킬로그램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나는 내가 몹시 통통하다고 생각했다. 여자들이면 다 아는 미용몸무게표에 맞는 몸무게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내 키에 맞는 미용몸무게는 '48.6kg'이었다. 집에서 먹는 음식은 칼로리를 확인할 수 없으니 편의점에서 칼로리에 맞춰 닭가슴살이나 도시락을 사 먹었다. 천 칼로리만 섭취해야 살이 빠진다는 블로그의 글을 맹신하며 말이다. (아마 소녀시대 다이어트였나?) 그리고 혹시라도 외식 등의 이유로 천 칼로리를 넘겨 과식을 한 날이면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을 탔다. 무산소 운동은 할 줄도 모르고 아저씨들 사이에서 하기엔 부끄럽기도 했다. 여자들이 가득 모여있는 러닝머신 라인이 마음이 편했다. 역시 러닝머신에 표시되는 칼로리를 보고, 내가 그날 초과한 만큼의 칼로리가 뜰 때까지 달렸다.
다이어트 자극짤을 모으던 당시 나의 갤러리
그렇게 나는 꿈에 그리던 앞자리 ‘4’를 달성했다. 너무 뿌듯해서 사진을 얼마나 찍었는지. 어떤 날은 핸드폰을 들면 50kg이 되고, 핸드폰을 내려놓으면 49kg가 돼서 핸드폰을 놓고 몸무게를 쟀다가 재빨리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엄청난 변화는 없었지만 일단 앞자리가 바뀌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오직 짧은 치마만 입었던 새내기 시절
대학 입학 전에 원하는 몸무게를 달성한 나는 딱 붙는 상의에 짧은 테니스 스커트를 입으며 대학생활을 즐겼다. 그런데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술자리에 매번 도장을 찍으니, ‘안주킬러’가 되어버렸다. 기름진 튀김, 매운 국물, 달달한 셔벗. 대학가의 술집에는 조미료가 가득 들어간 저렴하고 자극적인 안주들이 천지였다. 그 당시 모든 안주의 가격이 3,900원인 포차도 있었다. 열심히 먹고, 또 먹었다. 결국 나는 오십 킬로그램을 훌쩍 넘기고 말았다. 입학 전보다도 더 살이 쪘으니, 처음으로 요요를 겪은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다이어트할 거야.’라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학생회에 들어가게 되었고, 다이어트 난이도는 높아졌다. 신입생들부터 선배들까지 내가 함께 해야 할 자리가 너무도 많았다. 결국 입학 전보다 더 ‘통통’해진 채로 그 해가 끝났다. 그 이후로도 나는 다이어트를 잠시 성공했다가, 다시 요요를 겪는 일을 반복하며 스물일곱 살이 되었다.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이 그 시기다. 남편은 다행히 호시절(?)에 나를 만났다. 당시 다니던 회사가 출장이 잦고, 전시회 업무를 하다 보니 움직이는 일이 많아 살이 빠져있던 시기였다. 남편과의 연애는 너무너무 행복했다. 행복의 크기와 내 몸무게는 정비례했다. 나날이 늘어가는 체중계 속의 숫자를 보며 ‘다이어트해야지.’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긴 했지만 절실하진 않았다.
다이어트가 절실해진 것은 결혼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나는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예비신부들이 많이 모이는 네이버 카페에 가입했다. 그곳에는 미용몸무게표가 올라오진 않았지만 그만큼이나 혹독한 기준이 존재했다. 드레스를 입으려면, 스냅촬영을 하려면, 그 정도는 빼야 예뻐 보인다고 했다. 물론 “살 못 뺀 채로 스냅사진 찍었어요.” “편집이 다해줍니다.” 이런 글도 많았지만 그래도 왠지 스냅촬영 전에는 살을 좀 빼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다이어트약을 먹으며 약 팔 킬로그램을 감량했고, 몇 년 만에 날씬한 상태가 되어 스냅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여전히 원본사진에는 군살이 보였다. 속상했지만 본식 때만큼은 꼭 이른바 ‘개말라인간’이 되리라 결심했다. 게시판에서 “본식은 포토샵이 안됩니다.”라는 글을 보며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말라인간’이 되는 건 장렬히 실패했다. 가장 통통했던 시절보다는 조금 살을 빼긴 했지만, 내가 바라던 만큼은 아니었다. 상상 속의 나는 여리여리한 신부였는데, 현실 속의 나는 통통한 신부였다. 보정 전 사진을 보고 잠시 좌절하긴 했지만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행복한 신혼여행과 더 설레는 신혼생활은 나의 모드를 “다이어트? 그게 뭐임.”으로 전환시키기에 충분했다.
신혼생활이 조금 익숙해질 즈음 다시 다이어트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날씨는 따듯해지고, 가벼운 옷을 입기 시작하자 행복의 결과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어떻게 살을 빼야 할지도 모르겠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역사 속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다이어트를 했더라? 떠올릴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