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인 가족의 휴가

임신 14주, 절박유산을 진단받다

by 시은

뜻하지 않은 긴 휴가를 받았다. 11월의 어느 날, 자신의 소식을 처음 알린 아이는 해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번 붉은 소식을 전했다. 임산부라는 사실을 잊은 듯, 현장에서도 종종 거리며 돌아다녔고 칼같이 퇴근하기는커녕 저녁까지 회사에 머물렀던 적도 있다. 크게 아픈 적 없었던 내 몸을 믿기도 했다. 요즘 내 나이 정도면 젊은 엄마지!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아이가 겁 없는 엄마 보내는 경고장은 갑작스레 찾아왔다. 그날도 창 밖이 어둑할 때까지 회사에 머물고 있었고, 팀원들과 잠시 수다를 떨다 일어난 순간 주룩, 하는 느낌과 함께 새빨간 피가 다리에 흘렀다.

승진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된 임신이었다. 그래서 더 괜찮은 척하고 싶었다. 마치 내가 모든 임산부들의 이미지를 대표하기라도 하는 듯, 임산부여도 일 잘할 수 있어요! 보여주고 싶었다. 피가 흐른 그날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급한 일이라도 생긴 양 서둘러 회사를 나섰다. 시동을 거는 손이 벌벌 떨렸다. 산부인과로 전화를 하고 울며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속옷이 다 젖도록 피는 계속 흘렀다. 낮에는 부부의 대화와 아이들의 목소리, 즐거운 소음으로 가득하던 산부인과는 밤이 되자 적막이 흘렀다. 나와, 그리고 또 배를 부여잡고 있는 다른 임산부 한 명만이 넓은 대기 공간에 앉아있었다. 대기 시간은 길지 않았다. 몇 주전 설레는 마음으로 임신을 확인하려 앉았던 의자에 이제는 전혀 다른 마음으로 앉았다.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게 해 주세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의자에 앉자마자 비웃기라도 하듯 피가 뿜어져 나왔다. 진료실 바닥까지 흐른 피는 자꾸만 불길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간호사의 헉, 하는 소리 뒤로 당직의가 초음파를 확인했고, 다행히 화면 너머의 심장은 여전히 반짝이며 뛰고 있었다.

터질 듯한 울음을 삼키며 남편을 기다렸다. 입고 온 옷은 하필 흰색이었고, 피로 젖어버린 옷을 다시 입을 수 없어 병원 치마를 빌려 입었다. 홀로 누운 병원 침대는 딱딱했고, 링거를 꽂은 팔은 욱신거렸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던 안도감과 불안감이 계속해서 교차했다. 헐레벌떡 달려온 남편의 얼굴을 보자마자 버튼이라도 누른 것처럼 눈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아픈 소식은 전할 때도 아프다. 회사, 친정, 시댁. 차례로 소식을 알리고 그 좋아하던 SNS도 켜지 않은 채로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맘카페에서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지, 예후가 어땠는지 하루 종일 검색했다. 그러는 사이 수도꼭지처럼 흐르던 피는 점차 멎었다. 긍정적인 글을 애써 찾아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다음날 담당 선생님과 본 초음파에서는 피고임의 크기가 아주 크다고 했다. 늘 밝은 목소리로 뭐든 해도 된다, 던 의사 선생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만 있으라며 엄중히 경고했다.

내내 울음으로 지새운 이틀간의 입원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돌아온 집. 익숙한 공기는 잠시나마 불안을 잊게 해 주었다. 그날부터 나의 긴 휴가가 시작되었다. 스무 살 이후 이렇게 긴 시간을 쉬어본 적이 있었던가. 곰곰이 되짚어보아도 없는 듯하다. 운 좋게 남편이 방학 중이라 우리는 24시간을 함께 보냈다. 남편은 세끼 밥을 차리고,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나를 돌봐주었다. 아기로 돌아간 것처럼 남편의 손에 의지해 모든 일을 해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피가 얼마나 흘렀는지 확인하는 것만이 나의 일이었다. 느리지만 확실히, 줄어드는 피의 양을 보며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 노력했다.

처음에는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곤욕이었다. 휴대폰 어플로 영어 공부를 하고, 스탠드 바이 미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러다 뒹굴거리며 책을 읽기도 했으나 하루를 꽉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몸을 배배 꼬는 나를 보던 남편이 게임을 제안했다. 남편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는 것도 내 일과 중 하나였지만, 직접 플레이해 볼 생각은 별로 없었다. 조작도 어려워 보였고,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편의 권유로 처음 시작해 본 게임은 그 어떤 것보다 효과적으로 시간을 흐르게 만들었다. 플레이스테이션 만세(!) 무엇보다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는 게 장점이었다.

내 나름대로 휴가에 적응하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오던 팀원들의 연락이 점차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으로 줄어들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빨리 적응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더 바쁘게 움직일 그들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원망의 기색 하나 없이 씩씩하게 내 안부를 물어오는 어린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숨기기 어려웠다.

소식을 듣자마자 음식을 바리바리 싸 와 밥을 해주고, 집안일을 거들어준 엄마. 딸기 한 박스를 들고 한달음에 달려온 아빠와 동생. 수화기 너머로 늘 나를 걱정하며, 오빠 손에 한가득 반찬거리를 싸 보내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를 아끼고 챙겨주는 모든 사람들. 이들에게 어서 회복해서 나의 일을 해내야 한다는 부채감과 부담이 커져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가 보낸 경고를 기억하며 오직 ‘엄마’가 되기 위한 시간에 충실하고자 했다. 아마도 금방 갚을 수 없는 부채이겠지만, 그 끝에서 나를 기다릴 선물 같은 아이를 위해 마냥 우울해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틈만 나면 아이와 함께할 미래를 그려보고, 상상한다. 조금씩 임산부 티가 나려 하는 배를 어루만지며, 미약하게 전해지는 태동에 행복해한다. 남편과 단둘이 보내는 이 긴 시간은, 아이가 보너스로 준 선물이렸다. 부부로 3년, 연인으로 2년을 함께했지만, 여전히 새롭게 발견하는 그의 모습에 감동하며. 잠든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고, 쓰다듬어지며 내일의 우리 가족을 기다려본다.

KakaoTalk_20250831_171822764.jpg 1인실 침대에 누워 바라본 남편, 결혼한 뒤로 가장 애틋했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