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는 카페

임신 20주, 혼자서 하는 외출

by 시은

임신한 뒤로, 정확히는 하혈이 있었던 14주 이후로 나의 외출은 언제나 남편과 함께였다. 애초에 외출을 하는 일 자체가 드물었다. 내 몸에서 쏟아지던 피가 아이를 위협할까, 어지간히 겁을 집어먹은 탓이다. 집콕생활이 길어지며 몸이 쑤실 때면 간혹 집 앞의 공원이라도 가서 기분 전환을 하거나 산부인과 정기검진만 빼꼼 받고 올뿐이었다.

그러다 20주 차를 넘어서야 병원에서 이제 우리를 오래 괴롭히던 피고임이 거의 사라졌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웅크렸던 마음이 풀리자, 다시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몸짓이 가벼워졌다.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집안 대청소도 했고, 오래 탔던 차를 팔기 위해 주차장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혼자서 집 앞의 카페를 찾았다. 얼마 만에 혼자서 하는 외출인가, 다소의 감격까지 함께였다. 휴직 이후로 잘 들지 않던 커다란 가방에 바리바리 짐을 싸고 카페로 걸었다. 마침, 어린이집 마치는 시간인지 아파트 놀이터에 아이들이 가득하다. 무어라 재밌는 말을 자기네들끼리 주고받는 아이들과 뒤편에서 아이들 가방을 들고 담소를 나누는 엄마들의 모습이 따듯하게 보인다. 괜히 아는 척을 하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아이들을 뒤로하고 도착한 카페에는 엄마 무리와 남녀 어르신 두 분,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 두 명까지 세 테이블이 차 있었다. 저마다 바쁘게 이야기 나누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예전부터 나는 적막한 공간보다는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공간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다. 아마도 부산스러운 내 몸짓 때문일 텐데, 가령 스터디카페나 독서실에 가면 의도치 않게 소리를 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듯한 걱정이 된다. 그래서 카페의 소음이 나는 오히려 반가운 입장이다. 마음이 편하기도 하고,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글의 소재가 떠오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오늘 특히나 내 귀를 잡아끈 이야기는 어르신 두 분의 대화였다. 우리 엄마와 외할머니의 중간 연배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따님 두 분과의 관계에 대해 노년의 신사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공손하게 높임말을 쓰는 아주머니와 반존대 이기는 하지만 이름에 님을 붙여 말하는 할아버지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두 사람이 카페를 나설 때까지도 대화에서 단서를 찾기는 어려웠다. 사실, 나도 내내 그 들의 대화만 듣고 있는 것은 아니고 내 일을 하다가 들려오는 말만 기억할 뿐이니….

다만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하나는 기억에 남아 글로 옮겨본다. 부모들은 자식이 아무리 잘났어도, 아무리 똑똑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처음에는 내 자식이 제일 잘난 게 부모 마음인데 무슨 뚱딴지같은 이야긴가 싶었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제법 일리가 있다. 판검사 자식을 두어도, 부모의 눈에는 자식이 부족하기만 해서 자꾸 무언가 알려주고 싶고 보살펴주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를 뱃속에 품기 전에는 몰랐던 감정이 드문드문 나를 멈춰 서게 한다. 나는 나의 아이에게 얼마만큼의 인생을 알려줄 수 있을까. 내가 부모님에게 받았던 만큼을 아이에게도 줄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내가 어른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남편한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인데, 혼자 집에 있을 때 누군가 집에 어른이 있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네'하고 답할 수 없을 듯하다.

아이가 뱃속에서 커가는 동안 나도 엄마로 태어날 준비를 하는 기분이다. 아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엄마로 키워내고 있다.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은 없지만,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온 세상이 되어 모든 사랑을 줄 테다. 모르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역시 카페의 소음이 참 좋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나처럼 혼자 온 손님만 둘 뿐이라 조금 아쉬울 정도다. 일부러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나를 배우게 하는 대화들이 언제나 시끌시끌 카페를 메우면 좋겠다.

KakaoTalk_20250831_171429645.jpg 임신 기간 동안 유일하게 했던 태교, 카페에 앉아서 좋은 글 필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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