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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Mar 21. 2018

0. 이토록 일관성 없는 여행

내가 잠시 여행을 떠난 이유

  


 스무 살 무렵부터 방학마다 여행을 떠났다. 바다와 산으로, 때로는 축제로. 여행은 점차 목적성이 옅어져 준비라곤 교통편과 숙소 예약뿐이 되었지만, 어김없이 나는 새로운 여행을 기대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코끝을 간질이는 감기 기운에 지기 전에 얼른 숙소를 잡아 훌훌 떠나버리기가 일수고 해외여행은 이미 같은 나라만 9번을 다녀왔다. 그래도 발이 닿는 땅이 한국에서 멀어질수록 여행이 신기하고 재미있어 어쩔 수 없이 또 떠나고야 마는 것이다. 물론 서점에는 어린 나이에 자아 발견을 위해 여행을 떠난 이들의 서적이 시리즈별로 출간되고 있으며, 나처럼 목적 없이 떠난 여행을 세세하게 세지 않는 여행자들이 더 많을 것이란 것을 안다. 그래도 나는 기어코 이 잠시간 떠난 여행의 이유를 밝히고 싶다. 


뉴욕의 브루클린 뮤지엄 앞에 세워진 의문의 자전거 한 대.


 정확한 진로가 정해진 시점부터는 "세계의 미술을 보자"는 거대한 목표를 세우기도 했지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더구나 여행의 대부분을 부모님(특히 엄마)과 떠나는 이유로 미술관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여행을 선호하는 편이 되어버렸다. 관광지나 매력적인 레스토랑도 좋다. 그래도 그 나라의 시장과 마트를 구경하며 음식을 사 먹고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 덕에 삶처럼 살아가는 여행에 익숙해진 지금이다. 생각해보면 관광지를 방문하는 것보다는 멍하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는 것을 즐기곤 했다. 그들의 인생에도 여행은 있겠지. 세세하게 여행의 의미를 적는 행위도 그만두게 된 시점도 하루 일정을 끝마치고 편의점에서 맥주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는 현지인 사이에 내가 녹아들 때였다. 그때부터 의미와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보다 그저 삶의 일부로서 살아나가는 여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하는 정원에서

 

 의지와 열정은 생각보다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내가 평생을 염원하고 또 바라 왔던 글에 대한 욕망일지라도. 나는 갈피도 종종 잘 잃는다. 스스로를 단단히 다그치지 않으면 길을 잃으면서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어느 날은 너무 늦게 일어나 계획했던 미술관에는 가지도 못하고 어둑한 거리를 걷는다던지, 정 반대로 스스로를 다그쳐 개관시간도 전에 미술관을 찾아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던지. 한때는 부지런한 블로거들을 보면서 자책도 했었다. 영민한 여행작가들을 보며 감탄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토록 일관성 없는 여행은 결국 '나'임에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는 서두에 다소 중구난방으로 이야기가 진행될지라도 나의 삶의 한 부분으로서의 여행을 천천히 풀어내겠다는 약속을 하려 한다. 이토록 일관성 없는 내가 모여 만든 것이 나의 인생이며 나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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