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 Jun 13. 2018

7. 알 파치노와 와인

 여행을 떠나게 하는 계기는 생각보다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게 우리 아버지에게는 시칠리아였다. 1972년 개봉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 <대부>에서 시칠리아는 아주 매력적인 위험이 도사리는 도시로 묘사되었다. 매력과 위험이 공존한다는 것이 64년생 남성에게 얼마나 악마 같은 것 이었을지 어렴풋이 짐작만 하는 지금이다. 실제로 시칠리아는 마피아로 이름을 날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꺼려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께서는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서 자꾸 돌아보는 도시였던 모양이다. 여행 계획을 짜며 거의 방관자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던 아버지는 중간중간 시칠리아, 대부, 남부 이탈리아 등 툭툭 던지는 단어는 거의 일맥상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짧은 휴가만이 허락된 직장인에게 시칠리아는 도저히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곳이었다.     


베네치아의 하루


  물론, 아쉬움만 남는 다면 이 이야기와 사진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잠시 시칠리아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 곳은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지중해에 둘러싸여 있는 이 곳은 안 그래도 여름이 일찍 찾아오는 이탈리아 내륙에 비해 더 기온이 높다고 하니, 강렬한 태양은 누군가에겐 가혹하리만치 뜨거울 것이다. 그러나 이 태양이 반가운 자 역시 멀리 있지 않았으니, 바로 애주가인 우리 아버지다. 일조량이 높아 질이 좋은 포도가 많이 생산되는 시칠리아는 특산품으로 레몬과 포도가 불티나게 팔리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시칠리아까지 행차하지 않아도 나는 비교적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베네치아에서 시칠리아의 와인을 마실 수 있었던 것이다. 포도주 한 병으로 만났지만 애주가인 당신에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시칠리아의 와인을 함께 산 그 날 함께한 소렌토의 레몬첼로와 레드와인


 근방의 많은 도시에서 특산품으로 와인을 선보이는 이탈리아에서 이 시칠리아의 와인이 유독 달콤하게 느껴졌던 것은 와인을 고르며 나눴던 알 파치노와 뜨거운 초여름의 볕, 그리고 나풀거리는 숙소의 하얀 침구류까지 모두 여행으로부터 취한 것으로 지금은 추축한다. 어쩌면 방문하지 못했기에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레임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의 시작은 비록 그 악마같은 영화 <대부>와 알 파치노, 그리고 약간의 환상이었을지라도,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판타지가 여행지에서 접점을 찾는 순간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진다. 그것이 비록 두 눈에 담고자 떠났던 여행이었으나, 발을 들여보기는 커녕 혀끝으로만 느꼈을지라도 말이다. 고로 그것이 내가 베네치아의 사진과 경혐들로 알 파치노와 시칠리아를 논하는 이유다. 



 이처럼 사소한 사진 한 장에 녹아있는 많은 이야기들은 여행에 함께한 이들만이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의 단서다. 그러니 우리 가족은 다시 거실로 모여 과거를 추억하고 또 다른 여행의 계기를 긁어모을 것이다. 여행을 떠나게 한 동력은 각자의 방에서 나와 거실로 사람을 불러오는 또 다른 힘이 되었으니. 

매거진의 이전글 6. 여행의 흔적이 묻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