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설 때는
대단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운동을 하겠다는 다짐도 아니고,
무언가를 정리하겠다는 계획도 아니다.
그냥 집에만 있기엔
몸이 조금 답답한 날이다.
걷기 시작하면
생각은 금세 흐려진다.
해야 할 일, 하지 못한 말,
괜히 떠올렸던 장면들이
발걸음에 밀려
뒤쪽으로 천천히 물러난다.
산책의 좋은 점은
생각을 붙잡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둔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굳이 문장으로 만들지 않아도
걷는 동안은 충분하다.
길가의 나무를 한 번 보고,
신호등 앞에서 멈췄다가,
괜히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그 사이에 마음도
조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새어 나간다.
그게 나쁘지 않다.
산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무언가를 해결한 느낌은 없다.
다만 아까보다
조금 덜 복잡해졌다는 감각만 남는다.
그 정도면 산책은
제 할 일을 다 한 셈이다.
걷는 동안에는
나 자신을 설득하지 않아도 되고,
앞으로의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있는 위치만
발바닥으로 느끼면 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복잡할수록
생각을 정리하려 들지 않고
먼저 걸으러 나간다.
산책은 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가장 필요한 일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