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직이 온다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이 먼저 흔들렸다. CRM 경력직이 들어온다는 말은 곧 내 자리를 위협하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내가 해오던 일을 누군가 더 잘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밀려나는 게 아닐까. 팀 안에 계속 있을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불안의 방향을 조금만 바꿔보니,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이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회사가 경력직을 채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누군가를 대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훨씬 많다. CRM은 특히 그렇다. 데이터는 쌓이고, 고객은 다양해지고, 해야 할 일은 계속 늘어난다. 이때 필요한 건 한 사람을 빼고 다른 사람으로 채우는 게 아니라, 기존 구조 위에 새로운 역할을 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은 누군가가 내 일을 가져가는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역할이 재정의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외부 상황이 아니라 내 안의 질문이었다. “내가 없어도 돌아가는 역할이라면 어떡하지?” 이 질문은 불안을 키우는 동시에, 방향을 알려주는 힌트이기도 했다. CRM에서 오래 살아남는 사람은 단순히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문자 발송이나 캠페인 운영처럼 누군가 대체할 수 있는 일에 머무르면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케팅 동의율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이탈 고객을 어떤 흐름으로 다시 붙잡을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어떻게 연결할지 같은 질문을 다루는 순간, 그 역할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불안을 없애는 게 아니라,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누가 정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이 영역은 내가 맡는다”고 정의하는 것. 고객 동의율 전략이든, VIP 관리든, 오프라인 CRM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내가 빠지면 방향이 흐려지는 영역을 하나라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경쟁이 아니라 구조 속의 필수 요소가 된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내 자리를 빼앗을 존재가 아니라, 내가 더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도와주는 변수일 수 있다. 누군가 실행을 맡아준다면, 나는 전체를 설계하고 연결하는 역할로 이동할 수 있다. CRM에서 결국 가치를 만드는 건 손이 아니라, 방향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결국 이 상황은 위기가 아니라 갈림길이다. 그대로 머무르면 불안은 계속되고, 한 걸음 올라서면 역할은 넓어진다. “내가 이 팀에 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어느 순간 “이 팀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만들 수 있을까”로 바뀐다. 그 질문을 붙잡는 순간, 자리는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