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예진
나는 초등학생 쌍둥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엄마는 장애인이 아니었으면 좋겠지?”라며 물어왔다. 학교에서 장애 인식 개선 수업을 들은 모양이었다. 아이를 처음 낳았을 땐 아이가 커 장애 있는 엄마를 부인하는 것도, 나의 장애에 대해 묻는 날이 오는 것도 두려웠다. 하지만 막상 그날이 닥치자 덤덤했다. 내심 결국에는 이날이 올 줄 알았나 보다.
나는 “장애인이라 불편한 점도 있지만, 불행하진 않다”고 답해줬다. 그리고 “엄마가 장애인이라 창피하니?” 되물었다. 아이들은 잠시 망설이더니 “조금은 그렇다”고 했다. 순간 마음이 몇 초간 ‘쿵’ 내려 앉았지만, 솔직히 말해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이어 나는 “엄마가 학교 행사 때 참석 안 했으면 좋겠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그건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라 했다. 고맙게도 내게 결정권을 넘겨준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서 아이들 입학 후 처음으로 코로나로 중단됐던 대면 참관 수업 참석 요청서를 받았다. 아이들이 친구들 앞에 엄마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망설여졌다. 아이들에게 한번 더 가도 될지 물을까 했지만, 이번엔 진짜 “오지 마”란 대답이 나오면 어쩌나 두려워 그만두었다. 그저 조용히 참석하겠다고 신청서를 냈고, 아이들에겐 참관 수업 당일 아침에 알려줬다. 아이들은 묵묵히 “알겠다”며 등교를 서둘렀다.
나는 수많은 학부모들 사이에 섞여 참관 교실로 들어섰다. 아이들 대부분이 부모를 바로 알아보고 반가운 손짓을 했다. 우리 아이들도 금세 고개를 돌려 나를 찾았다. 하지만 한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순간 괜히 왔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진 건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이 곧바로 내게 달려와 쏙 안겼을 때. 그날 저녁, 나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렸던 아이에게 “엄마가 온 게 싫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아니, 수업 집중해야 하니깐”이라고 했다. 묻지 않았다면, 나는 아이를 오해할 뻔한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좀 더 자주 나의 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안경 쓴 사람, 까만 피부, 키가 큰 사람처럼 장애 역시 그저 또 하나의 정체성일 뿐이란 걸, 그렇기에 장애는 결코 창피한 게 아니라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다양성을 존중하는 눈을 가지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아이들을 오해하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이 글은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연재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