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허예진
열, 아홉, 여덟…. 올해로 61세인 명은(가명)씨는 최근 아침마다 집에 갈 날을 더듬더듬 손가락을 접어가며 셌다. 그녀는 내가 근무 중인 인제 지적장애인거주시설에 있는 60명 지적장애인 중 한 명이다. 지난 설 연휴는 그에게 특별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처음 집에 가게 됐기 때문이다. 그간에는 명절 연휴 직전마다 코로나 확산을 우려한 정부의 ‘귀가 금지’ 지침이 내려졌다.
그때마다 명은씨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그저 전화 통화로만 달랬다. 팬데믹 기간에도 종종 시설로 방문해 장애인 가족을 면회하고 인근 숙소를 잡아 함께 외박하는 보호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인천에 사는 명은씨 어머니는 너무 연로해 강원도까지 오긴 힘들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모녀의 상봉을 끊어버린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장애가 있으면 아무 감정이 없을 줄로 안다. 하지만 여느 사람과 똑같다. 이곳 사람들도 부모를 그리워하고, 집에 못 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진다. 명은씨는 특히 벼가 익으면 추석이고,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설이란 걸 짐작했다. 유일하게 일 년에 두 번, 집 가는 날이란 것도 알았다. 최근 3년간은 유독 그 두 번의 날이 올 때마다 평소보다 어깨가 더 축 처졌고, 누군가가 툭 건드리면 곧 울음이 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발걸음도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해졌다.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그 발등에 눌러 쌓인 것만 같아 보기가 안쓰러웠다.
올해도 새해 첫날부터 명은씨는 보는 사람마다 “선생님, 이번에는 저, 집에 갈 수 있지요?”를 물었다. 그 애타는 마음이 또 좌절 될까 봐 그때마다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 했다. 그리고 설날 연휴 첫날 아침, 명은씨의 PCR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뜬 걸 보고서야 드디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날, 집으로 향하는 명은씨의 발걸음은 정말 오랜만에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손에는 어머니에게 드릴 선물도 들려 있었다. 귀가가 취소됐다면 홀로 택배 차량에 실렸겠지만 올해는 명은씨 손으로 직접 어머님에게 전했을 테다. 명은씨는 기분이 좋으면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 올해부터는 명절마다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그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우리 시설에 울려 퍼지길 기대한다.
이 글은 조선일보 <일사일언>에 연재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