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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좋은 개살구" 같은 장애인 탈시설 정책

by 백순심


탈시설 정책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장애인 거주시설을 나와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했다. 장애인의 지역사회복귀정착을 위한 업무를 아주 잠깐 맡아서 했다.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나와 살고 싶다는 의사만 있으면 나와 살 수 있는 줄 알았다.


정부에서는 마치 장애인의 욕구에 의해 다 지원해 주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지역별 지원하는 서비스가 달랐기에 누구는 가능하나 어느 누구는 불가능하였다. 결국 자원이 많고 장애인을 위한 임대주택도 있는 도시에 사는 장애인만 가능해 보인다. 내가 사는 지역은 시골이기에 주택도 보조금 지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심한 장애인(휠체어 이용자)은 집주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거주할 집의 개보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아 나올 수가 없고 장애인보호작업장 등 취업이 어려운 심한 장애인은 수입이 없기에 나올 수가 없다. 즉, 취업이 가능하고 보행이 자유로운 장애인만 허락되고,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조건에서 탈시설이 가능하다.

또한, 장애인이 시설에 나오기 전 자립준비위원회원들(공무원, 장애인 관련 관계자되는 종사자, 원장 등)의 동의가 필요하다. 비장애인은 누군가의 동의를 받고 독립하지 않는다. 이것 또한 차별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누군가의 의해 결정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전에 근무하던 장애인 시설에 있는 은순(가명)씨는 자립준비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지역사회에 나와 살지 못한 케이스다. 은순 씨는 나에게 “나 같은 장애인도 나가서 살 수 있나?”라고 물었을 때 가능하다는 나의 답변은 거짓말이 되었다. 서울에는 와상인 장애인도 나와서 사는 것을 보았기에 은순 씨도 충분한 줄 알았다. 위원들은 은순 씨가 지역사회에 나와 살다가 힘들까 봐, 실패할까 봐 염려되어 내린 결정이겠지만, 살다가 힘드면 다시 시설로 재입소하면 되지 않을까? 모든 사람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사는데 장애인에게는 허락하지 않는다. 은순 씨는 기초수급비로 조금 부족하더라도 나와서 살고 싶어 했지만, 그의 꿈은 좌절되었다.


나는 장애인이 시설에 살든, 지역사회에 살든 상관없다. 그러나 그들이 어디에서 살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립을 원하는 장애인이 살 수 있도록 거주 공간, 서비스 정책인 뒷받침되면 좋겠고 시설은 거주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는 부분을 최소화하고 그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가 질적으로 높아져 시설에 사는 만족도가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애인이 원하는 집으로 갈 수는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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