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8월 무더운 여름날, 늦어진 티켓 구매로 인해 겨우 서울행 입석 티켓을 구하고, 피곤한 몸을 간신히 간이 석에 걸치고 유리창 너머 어두컴컴한 바깥을 멍하니 바라본다.
고요한 적막에 잠잠히 잠겨본다.
그러다 아이의 청량한 응석 부림에 정신을 차리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 부부가 어린 남자아이를 안고 옆 간이 석에 앉아있다.
남편은 한 40대 후반 정도로 추정된다.
티셔츠와 반바지 사이로 비치는 으리으리한 문신들은 험악한 인상에 더욱 힘을 주며 과거에 어두운 세계에 몸을 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아내는 진한 화장과 향수로 뒤덮었지만 20대 정도로 보인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검은색 옷, 커플 슬리퍼 그리고 몸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레터링 문신들이다.
부부와 대비되게 아이는 하얀 옷을 입고 엄마한테 안겨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내 바로 앞에는 염색을 안 해 흰머리가 보이는 아저씨가 벽에 기대어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옷차림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굳이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정년퇴직하시고 연금 받아 생활하시는 분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가 뒤편에서 답답한 듯 한숨 섞인 목소리가 조금씩 커져간다.
뒤를 돌아보니 외국인이 기차를 잘못 타 승무원이 일방향적인 대화를 이어간다.
외국인의 표정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다.
원래 이런 일에 잘 나서지 않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되어 볼까라는 생각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Do you speak English?"
외국인이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순간 한국 땅에서 한국어는 그렇다 치더라도 영어도 안되면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지 내가 숨이 꽉 막힌다.
그러곤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기차는 밀양역에 도착했고 아까 외국인이 나를 쳐다보더니 승무원이 건네준 종이를 내밀며 "여기?"라고 물어본다. 그가 가리킨 종이에는 밀양역이라고 쓰여있다.
나는 "Yes"라고 한마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한국어가 되냐고는 물어보지 않았었다.
당연히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한국어도 하냐고 물어볼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