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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Oct 28. 2020

가서 뭐하고 온 거야? 홍콩 여행

... 내 돈 주고 가서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잖아

 처음 혼자 홍콩을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때 내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단 계속해서 오는 연락들이 지겨웠다. 그리고 정신없이 바쁜데 정작 집에 있는 시간은 많은 그런 바쁜데 심심한 (생각보다 정신건강에 많이 안좋은)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에서 주말 알바를 하면서 번 돈으로 11월에 홍콩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 찾아오던 식빵이. 입맛이 고급이라 내가 주는 건 절대 먹지 않았다.

 왜 홍콩이었냐면 일단 비행 값이 쌌고, 한자가 많은 나라에 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하나도 못 알아들으니까ㅎ

당시 나는 카페에 앉아 친구들과 대화를 잘하면서도 옆자리 사람들의 대화가 들리고 혼자서 신호등을 기다리다가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나 건너편 사람들이 신경 쓰여 굉장히 피곤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전혀 모르는 언어를 쓰고 내가 필요한 걸 말할 때 영어로 의사소통이 잘 되는 홍콩은 나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왕가위 영화를 보면서 접하는 홍콩의 풍경에 알 수 없이 두근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나의 다른 고향을 찾은 것 같은 그런, 내가 속할 도시를 찾은 것 같은 그런. 근거 없지만 강력한 마음.

캘리포니아에선 키 큰 야자수들이 소실점을 알려주지만 홍콩은 역시 키 큰 건물들이

 나는 그 흔한 제주도도 20살이 넘을 때까지 가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불편함을 감수해 새로운 곳에 가거나 도전해보지 않았던 것이 그 당시 나의 날카롭고 예민한 성격에 한몫을 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 어린 시절의 여행은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홍콩 여행 이후로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신기할 정도로  내 성격이 많이 둥글둥글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모든 여행엔 필름 카메라가 함께했다. 다니면서 성장하고 찍으면서 넓어지는 그 과정을 나눠볼까 한다. 무엇보다 내 삶의 한편에 항상 존재하던 여행에 대한 설렘과 낭만을 잊지 않고자. 그리고 나와 같이 자신의 마음속 여행이 잊혀지는 것이 두려운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골목마다 찍을 것들이 넘쳤던 길고 높은 홍콩

 비행기표를 끊을 때까지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막상 출발 전날 밤이 되니까 가슴이 두근대면서 내가 이대로 해외 미아가 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사실, 나는 걱정할 때 꽤나 극단적인 편이라  "아, 나는 내일 해외 미아가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워서 여태껏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회개 기도를 했다. 쓰면서도 창피하다.


 그 시기의 나는 고군분투하면서 예민이란 예민은 다 부리는데 멀리서 보면 그것이 삽질이라 귀여우면서도 안쓰러운 그런 캐릭터였다. 왜냐면 여행과 마찬가지로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당연한 많은 것들에 대해서.


 홍콩의 미쳐버린 호텔 가성비에 나는 에어비앤비를 예약했고 그곳으로 가는 빨간 택시를 잡아탔다. 나름대로 준비성이 철저했던 나는 한자 주소를 수첩에 적어갔고, 택시 기사분께 보여드렸다. "Oh, I am an old man."이라면서 글씨가 작다고 한탄하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말을 안 하면 꼭 홍콩 사람 같다며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곧 아내와 함께 한국 여행을 간다고 명동이 좋지 않냐고 물어보길래,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엣헴 거리면서 그곳보단 다른 좋은 곳도 많다고 이야기했다. 뒷좌석에 앉아 펜과 노트에 어디가 좋은지 영어로 꼼꼼히 쓰고 내 메일 주소까지 알려주자 기사님은 왜인지 본인이 더 신나셔서 이번은 프리 라이드로 태워주겠다며 고맙다고 이야기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발랄한 분이다.


신기하게도 90년대 홍콩 영화와 많이 다를 것이 없던 진짜 홍콩.

 그렇게 2박 3일간 나의 홍콩 여행이 시작됐다. 솔직히 정말 풀 썰들이 많이 없는 것이, 여러 가지 문제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은 나의 성격 탓이겠지만. 거의 숙소에서 하루를 다보내고 기껏 들린 곳들은 버거킹이나 세븐일레븐 정도였다. 어이없는 나의 일정들에도 불구하고 정말 행복했던 이틀이었다. 여전히 생각하면 가슴 시릴 정도로 모든 골목과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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