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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에 Oct 28. 2020

미드레벨 엘리베이터 보러 가서 그것만 보고 오면

어떡해?

 홍콩을 찾아보다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바로 센트럴이었다. 미드레벨 엘리베이터를 보지 못하고 오면 홍콩 여행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고 카페를 가든 구경을 하든 혼자 다니기 좋은 도심지인 그곳이 딱일 것 같았다. 관광객이 많은 곳에서 살고, 학교도 나온 사람이라 해외여행에 가서 관광객 코스를 돌고 싶지 않다는 그런 허세가 발동하여 여기저기 신기한 곳을 많이 표시해뒀다.


 페리를 타고  들어가는 어촌 마을이라든가, 홍콩의 직장인들이 들러서 자주 아침을  먹는 현지인 맛집이라든가  마이너 하게도 여기저기  찾아뒀다.  리스트를  훑으면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때의 내가 휴식을 간절히 원했다는 것이다.


 적어놓은 메모를 보면, 공원. 한적. 조용. 휴식 이런 것들이 많았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홍콩도 어느 정도 안정세를 찾으면  표시를  돌기 전까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그때 내가   있는 백수이거나 프리랜서이길 간절히 바라본다.

 

지금 봐도 약간 웃긴 수많은 즐겨찾기 표시들. 야망이 넘쳤던 첫 해외여행

https://brunch.co.kr/@sa00ehkim/20

 

위에서 말했던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내려준 숙소로 들어가자 멋진 유니폼을 입고 계신  분이 계셨다. 경비를 서시는 듯했는데, 호스트가 말한 대로 입구에서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 하지만 자꾸만  이름이 없다고 말하길래 표정이 굳어졌다. 결국  다른 한분이 "Your name?"이라고 말씀해주셔서 .... 하고 드디어 숙소에 입성할  있었다.


 곳곳에 포스트잇으로 이것저것 손글씨로 적어놓은 것들이 아기자기 귀여웠다. 아래 사진은 부엌인데 너무 좁아서 세로 사진이 아니면 담기가 어려웠다. 홍콩이란 도시 자체가  대부분이 좁고 높다. 그래서 이번 여행의 사진 절반은 세로 사진이다.

해외여행을 가서 부엌에 가면 낯선 식재료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것이 너무 좋다.
조리도구를 창문에 걸어두었던 수납 왕...(?)


 일단 샤워를 하고 숙소 바로 옆에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는 만모사원을 찾아갔다. 생각보다 엄숙한 분위기에 사진은  장밖에  찍었지만 들어가자마자  연기가 자욱했다. 조용히 돌아보면서 어딘가에서   모아 기도했던 기억이 난다. "즐거운 일이 생기게  주세요."


 사원을 나와 무거운 가방 없이 카메라만 들고 여기저기 누비다 보니 나를 현지인으로 생각하고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도 만났고, 힙한 카페테라스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마주칠  있었다. 국제도시 홍콩이구나... 동서양이 적절히 섞인 모습이 나를 너무 설레게 해서 발길 닿는 대로만 걸어도 행복했다.


만모사원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 저녁이 되자 딤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한국에서부터 의심스럽던 gps 갑자기 망가져서 숙소를 찾을  없었다. 앞으로 가라 해서 앞으로 가다보면 조금있다가 내가 전혀 다른 블록에 있다고 말해주는 신뢰도 0 구글맵. 낯선 도시에서 혼자 맞는 저녁은 살짝 공포스러웠다.


 결국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 근처까지 가게 됐고,  앞에 걸어가고 있는 한분에게 주소를 보여주고 여기가 어딘지 아냐고 물어봤다. 알고 보니  사람은  숙소 바로  펍에서 열리는 맥주 수업을 듣기 위해 가고 있던 맥주 소믈리에였고 수업이 끝나고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날  친구덕에 홍콩의 맥주 맛집을 돌아다닐  있었다.

왼쪽에 혼자 켜있는 저 불, 창문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숙소에서 타로맛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내일도 만날  있냐는 연락에 그냥 이상하게 대답하기 싫어서 잠을 자고, 다음날도 연락하지 않았다. 둘째 날이자 마지막 날이 밝았는데도 괜히 침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지피에스가 망가져서 어디를 가기도 힘든 상황이었고, 순식간에 해가 져버리고 집으로 돌아올  없었던  경험이 여전히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실체없는 어두운 마음이 찾아와 누워있었다. 점심때  비척비척 일어나 어제 하루 종일 돌아다녀 익숙해진 센트럴을  바퀴 돌고, 숙소 바로 앞의 PMQ 괜스레 돌다가 길거리를 걷다가 잡동사니를 사기도 했다. 그리곤 버거킹에 가서 햄버거를 싸와 늦은 점심을 때웠다. 밥을  먹고 누우니 시간이 흘러만 가는 것이 느껴졌다.  방값 비싼 홍콩에  들여서 와놓고 숙소에 누워만 있는다고? .


오래된 경찰 건물을 문화단지로 리모델링한 PMQ
니하오 홍콩 고먐미

 그냥 폭신한 이불 안에 들어가서 좁은 방안에  쌓인 듯한 느낌을 받으며 하루 종일 누워있었다. 무언가 서울에서 가져온 설명할  없는 묵직한 덩어리가 흘러가는 홍콩의 시간 속에서 조금씩 분해되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도 한국보다 1시간 느린 홍콩에서는 가만히 누워있는 시간이  안의 무언가를 해독하는 느낌을 주었다.  정말 부질없이 시간을 보내는구나.  멀리까지 와서 시간을 정말 허투루 보내는구나.  좋다.


저녁은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 너무 맛있어서 홍콩에서만 살 수 있어! 라며 사재기했는데 알고 보니 일본 것이더라. 그럼 어때, 그 후로도 아끼고 아껴서 사재기한 컵라면 한국에서 잘만 먹었다. 하루를 날렸으면 어때. 아직도 그때의 추억으로 2016의 나를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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