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만들면서요
얼마나 많은 분들이 저의 발자취를 따라 읽어주시고 궁금해하실진 모르겠습니다만 생존신고를 하고 싶어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저의 불안과 희망이 담겨있는 졸업 후 2년간의 기록을 어젯밤 쭉 읽어봤습니다.
저는 그 후로 사진 전시를 잘 마치고,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습니다. 인생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쩌다 보니 개업을 해 제작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제작사를 만들었습니다. 제작사를 세우니 기분은 좋더라고요. 세금은 더 내야 하고요.
이름은 프로나운스미 (Pronounce me) 라고 지었습니다
'나를 발음해라.'
사실, 제 이름이 들어가는 이름을 짓고 싶었는데, 영어로 발음하기 어렵다는 소리를 매번 들어 홧김에 저렇게 결정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은 의미도 있습니다.
미국 토크쇼에서 인도계 미국인이 나와 티모시 샬라메를 발음할 수 있다면 자기의 이름도 발음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봤습니다. 생소한 것을 발음하는 것은 상당한 노력과 관심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도 영어 발음을 소리 나는 대로 적어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한글에 대치해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은 그 과정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경한 것을 내가 가진 것으로 최대한 이해하려고 하는 것.
스티븐 연이 코난 오브라이언이 자기 이름을 계속 다르게 발음해 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유명인들이 자기 '진짜 이름'을 알려주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미국에 있을 때, 제 이름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알려주니 “그래 너 So - kinda something( 본명: 소*)이겠지!“ 라고 이야기하길래 유머라고 생각하고 웃어 보인 적이 있습니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딱히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xtc-1WbF9PE
사람들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을 때, 관심이 갈 때 그 사람의 '진짜 이름'을 알고 싶어 합니다. 발음하고 싶어 하죠. 저란 사람의 복잡한 발음 기호를 누군가 알고 싶어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저 먼 미래를 보면. 그러니까 아주-먼 미래를 보자면요. 이 여정에서 살아남는다는 전제 하에 제가 다른 사람의 영화를 제작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때 저도 누군가의 영화를 잘 발음할 수 있는 제작자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여러 번 발음하기를 시도하던 사람에게서 꼭같은 발음을 듣고 나면 신이 나지 않나요? 조카에게 말을 가르쳐주고 있는 요즘 저는 매번 감동을 느낍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터널을 지나고 나니, 다른 터널이 나타났지만 그래도 저 살아있습니다. 계속 만들면서요.
그러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누군가 당신의 노력과 지나온 시간을 발음할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에게도 그 믿음이 필요해 이렇게 글을 붙잡고 열심히 적어 내려갑니다. 매번 흔들립니다만,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는 이 세상에서 저 정도 쯤이야. 그리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란 굳건한 믿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