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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수리 May 17. 2023

Due Diligence

=상당한 주의, 실사의 의무

    2002년 해외채용으로 입사한 내게 주어진 업무는 미국영화 프랜차이즈와의 협업 계약이었다. 영어를 한다는 이유로 주어진 업무 긴 해도, 대부분의 내용은 법무적인 것이라 법학전공이 아닌 내게는 여간 힘든 게 아닐 수 없었다. 수많은 사전 검색과 조사 중에서도 나를 고민하게 한 단어를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due diligence’라 할 것이다. ‘듀딜리전스’는 내가 검토한 모든 계약서에 항상 있었고, 사내 법무팀에서는 ‘실사의 의무’라고 번역해 주었다. 나 같은 일반인이 이해하도록 쉽게 풀어 말하자면, 계약서 날인 전에 상대방의 주장이 사실인지의 여부를 실사하고 검토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의무라는 것을 명시하는 것이다. 철없던 대학교 1학년 때가 떠올랐다. 어른들 말만 잘 따르면 된다고 배운 대로 유학 생활동안 카운슬러 말을 잘 따라 대학을 갔다. 캠퍼스 밖에 집을 얻고 학교의 연락을 기다렸다.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아 1주일간 편하게 쉬고 있는데, 다른 친구들은 이미 강의를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놀라고 억울한 마음에 학교 사무실로 달려간 나는 왜 나에게만 수업 공지를 해주지 않았는지 항의를 했다. 내 이야기를 듣던 직원여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공지는 홈페이지에 나와 있고, 그걸 확인하고 등록 절차를 밟는 건 내 책임이라고 했다. 나는 몰랐다고 하며,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음을 호소했다. 그녀는 아무도 나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과, 그런 것을 스스로 알아보는 나의 due diligence를 설명해 주었었다. 

    교회에서 만난 또래 자매들과 나눔을 하면, 공통적으로 남편, 시댁, 아이들 등의 기도제목들이 대부분이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 자매가 있다. 부모님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믿고 결혼했는데, 살아보니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며 결혼 생활의 어려움을 나누곤 했다. 그녀는 부모님도 남편도 원망이 된다며, 힘든 나날을 보냈었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이 외국인학교를 들어가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due diligence를 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이 다들 좋다고 하니까 당연히 좋겠지 믿었고, 다들 부러워하니까 잘된 거겠지 했었다. 결과는 실패였다. 우리 아이들과 맞지 않는 학교임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몇 년이 지난 후였고, 그때 나 역시 원망할 곳을 찾았으나, 좋다고 말했던 다른 사람들의 탓도 학교의 탓도 아닌 나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그 후로 내가 늘 기억하려 노력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무엇을 선택하던지 그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게 잘 알아봐야 한다. 잘못된 선택을 할 경우도 있지만 그에 대한 결과를 해결하고 살아가는 것 역시 누구의 탓이 아닌 내 책임이다. 가족들과 살아갈 도시를 선택할 때부터 신발 하나를 고를 때까지, 이제 나는 내 숙제를 부지런히 하려고 노력한다. 늘 성공하고 만족하진 않지만, 적어도 결과에 대해 내가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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