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단어/박웅현 지음>책 중, 4강

by 두고두고

밑줄 그은 문장들. 그에 대한 단상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_<스며드는 것> 안도현


(....)이것이 시인의 힘입니다. 똑같은 꽃게를 보고 다른 것을 읽어내는 힘이요. 그 힘은 안도현 시인의 시선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눈으로 보는 것, '견'이 어떤 이에게는 힘이 되는겨죠. (115p)



'간장게장'을 담그는 과정을 바라보는 안도현 시인님의 '시선'이다. 시인님의 이 고유하고도 특별한 시선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 최근에, 이민경 디렉터님이 얘기하신 '콘텐츠'의 의미와도 일맥상통한 부분이 없잖아 있다. '콘텐츠'라는 단어를 단순한 생산물이 아닌, 자신의 시선과 태도가 녹아든 결과물로 바라본다고.



아이디어의 시작, 경험 / 그렇게 제가 아이디어를 얻은 순간들을 하나둘 복기해보니 전부 저의 경험이었습니다. 경험, 제가 보고 겪은 것들입니다. (118p)


'창의력'='경험'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들을 것 / 자, 그런데 여기 트릭이 하나 있습니다. 머릿속에 있다고 모든 것이 창의적으로 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머릿속에 있으되, 327번, 128번처럼 아주 정확한 셀에 새겨져 있어야 합니다. 흘러간 것은 잡히지 않습니다. 깊이 새겨져 있는 것만 잡을 수 있어요. (.....) 앞으로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제 몫을 다하려면 저는 끊임없이 견문해야 할 겁니다. 다른 방법이 없어요. (122p)


그냥 대충, 흘려보는 것이 아닌, '견문'을 해야한다. 앞으로 나만의 시선을 가꾸고, 나의 단상을 잘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견문'에 익숙해져야한다. '창의력'의 시작점이자, 결과물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는 능력이지 않을까.


위대한 장면도 감상을 하지 않았다면 사소한 것이고 사소한 장면도 감상을 하였다면 위대한 것이다.






'견'의 힘을 믿는 사람들 / 존 러스킨이라는 영국의 시인은 "네가 창의적이 되고 싶다면 말로 그림을 그려라"라고 했습니다. (...) 즉, 들여다보라는 겁니다. (....) 앙드레 지드도 '지상의 양식'에서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아는 재능이라고 했습니다. (...) '생각의 탄생'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발견은 모든 사람이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132p)


결핍이 결핍된 세상에서 제대로 보는 방법 / 아이디어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없는 것은 그것을 볼 줄 아는 내눈입니다. (...) 보기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 합니다. 시간과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야 해요. 누군가와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133p)


시를 쓰든 말든, 광고를 하든 말든, 창의적으로 되든 말든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제대로 볼 수 있는게 곧 풍요이니까요. (....) 우리가 보배롭게 봐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는 힘입니다. (...)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138p-139p)


다만, 이 기적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예민한 촉수가 있어야 합니다. 예민한 사람들은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을 읽고 울죠. (....) 깊이 본다는 것은 사실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을 넘어 낯설게 봐야하는 일입니다. (141p)


단,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너무 많은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겁니다. (...) 어느 책에서 "참된 지혜는 모든 것들을 다 해보는 데서 오는게 아니라 개별적인 것들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끝까지 탐구하면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읽었습니다. 이런 태도가 지금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태도로 산다면 길거리의 풀 한 포기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간장게장에서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깊이 들여다본 순간들이 모여 찬란한 삶을 이룰 겁니다. (144p-145p)




나는 하루 중 상당수의 시간을 '가게'에서 손님 응대하며 장사를 하고 있는데, 나는 가게에서 어떤 순간들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을까? 그 순간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줄까? 이 부분은 내가 의식적으로라도 매일 '장사일지' 또는 '영업일지' 라는 주제의 '일기'를 쓰는 방식으로 진행해야할 듯 하다. 매일 밥 먹듯이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낯설게 보기'. 예를 들어, "여기서 제일 잘나가는게 뭐에요?" 라는 단골 질문에 대한 나의 반응, 대처에 대해서 푼다거나, 매일 오는 손님도 아닌데, "내 맨날 먹던거 그거 주세요." 라고 말하는 손님에 대한 나의 대처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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