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동반석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습니다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걸 보니
일행은 아닌가 봅니다.
중년의 신사 앞 테이블에는 읽다만 책이 놓여 있습니다.
슬쩍 보니 마봉작가님의 '세라비 : 장하다 라를르의 딸'이군요
마주한 청년 앞에는 커피가 식어가고 있네요.
테이블엔 국민학교시절 짝지를 연상케 하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는 듯합니다.
중년의 시선은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공기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창밖을 바라보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풍경들에 조용한 이별을 고합니다
청년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군요
브런치의 산책작가님 글방에 머물고 있는 걸로 추측됩니다.
그 뒤로 이어폰을 끼고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은 아가씨도 보이네요
반점작가의 노래를 감상 중일 거라 믿어봅니다.
제 옆자리 일행은 코스톨라니의 '돈, 뜨겁게 사랑하고....'를 읽다가 그 돈과 꿈에서
뭔 짓을 하는지 곧 침 한 줄기 흘릴 자세로 새근새근 코를 골고 있습니다
저는 각기 다른 장면을 시청자의 시선으로 가만히 마음에 담아 봅니다.
이제 기차가 기쁨역에 정차합니다.
중년이 내리시는군요
편히 보내드립니다.
다음 역은 분노역이네요
청년이 내립니다
우영우 변호사의 "워~ 워~"를
쥐어줄 틈도 없이 급히 떠나갑니다.
속도를 내던 열차는 걱정역에 도착하는군요
음악을 감상하던 아가씨가 하차합니다.
유한한 삶에 무한한 걱정을 올리지 않길 바라봅니다.
드디어 종착역인 즐거움역에 도착합니다.
일행과 저는 이렇게 또 제갈길을 갑니다.
어디를 보며 무엇을 하든
우린 모두 같은 열차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달려왔습니다.
그 속에서 모두 부자로 잘 살고 싶겠죠
부자로 잘 산다는 것.
각자의 다른 기준이겠지만
마음의 곡간이 비어 있지 않다면
최소한 거지는 아닐 겁니다.
그래도 저는 계좌의 배도 좀 부르면 좋겠다고 솔직히 고백해 봅니다.
각자 채워갈 희로애락의 곡간은 다르겠지만 언젠간 다 하늘의 한 동네 주민이 될 겁니다
너무 애쓰지 말자구요.
#어딘가엔#편한 숨#네 얘길 들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