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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다인 Jun 11. 2021

모든 것은 번아웃으로 시작되었다. (2/2)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하얗게 불태운 나날들

(이어서)


 이야기의 결말은 평범하다.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석사 학위를 받고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닌가?’ 그렇다. 정말 평범한 한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는 저마다 건실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산다. 그때의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렇게 산다고 다 번아웃이 오는 것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부르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시간’에 대한 태도다.     


  번아웃은 멈춰야 할 때 멈추지 않아서 온다. 우리는 종종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멈출 생각은 하지 못한다. 몸과 마음이 끊임없이 경고 신호를 보내도 멈출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 역시 그랬다. 직장인 3년 차가 될 때까지 ‘번아웃’이란 단어조차 몰랐다. 힘들어도 며칠 쉬고 나면 금방 회복이 됐기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 믿었다. 큰 착각이었다.   


대학원 졸업 후 회사를 옮겼다. 소위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잘 나가는’ 회사였고, 줄곧 하고 싶던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회사에 입사하기 전 임원 면접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미리 얘기하지만, 이 일은 매우 힘듭니다. 업무 강도가 아주 높아서 체력도 좋아야 하고, 높은 집중력과 사고력, 순발력도 필요합니다.”


" 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 없으면 가셔도 됩니다."


당신이라면 이 물음에 뭐라고 답하겠는가. 고백하건대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도전 의지가 불타올랐다. 가슴이 뛰었다. (한 친구는 이런 나더러 변태라고 했다.;;)  이제껏 치열하게 달려왔으니 그 일도 충분히 잘할 자신 있었다. 주저 없이 “네. 물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다가올 미래는 예상하지 못한 채.


  막상 입사하고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가 나를 극한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대학원을 병행하며 일을 했던 이전 회사와는 차원이 달랐다. 고민해야 할 것도, 결정해야 할 것도 많았지만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많이 헤매고 있었다.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것은 엄청난 압박과 스트레스였다. 감정 컨트롤이 되지 않았고, 몸은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었다. 매일 복통과 설사, 위경련이 수시로 일어나 약을 한 움큼씩 삼켰다.


  그런데도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다.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이면 어김없이 번아웃이 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회사의 방침대로 3~4일 정도 쉬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다. 점점 열정이 예전 같지 않고 어딘가 무기력한 느낌이 들었지만, 단지 체력이 떨어진 탓이라 여겼다. 매년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바뀌면서 업무는 더욱 복잡해지고 책임은 늘어났다. 매년 더 머리 아프고 힘들어지는 듯했다. 그 역시 적응의 과정이라 여겼다. ‘내가 지금 힘들다는 건 사치야. 프로는 달라야지. 빈틈을 보여줘선 안 돼. 고객에게도 전문가로 보여야 해.’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자신에게 되뇌고 또 되뇌었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했다. ‘이 상황을 탈출하려면 능력을 더 길러야 한다’고. 그렇게 설득하는 것만이 스스로를 달랠 유일한 방법이었다. 항상 노력하고 있음에도 항상 부족함을 느꼈다. 주말이면 피로로 점철된 몸을 이끌고 반나절 가까이 실무 강의를 들으러 갔다. 해외 유명 학회에 논문을 투고하려 자료를 모으고, 글을 썼다. 그렇게 노력하는 한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멈출 도리가 없었다. ‘다들 이렇게 사니까.’


계속해서 달리기만 하던 인생에는 중지 버튼이라는 것이 없었다. 몸과 마음은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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