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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다인 Jun 12. 2021

번아웃이 예견된 사람들

일중독, 완벽주의, 민감자, 억지로 타협하는 사람들

  유난히 더 번아웃이 오기 쉬운 사람들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상관없이, 이들은 과도함을 안고 살아간다. 과도한 노동, 과도한 열정, 과도한 이상주의, 과도한 자기 헌신, 과도한 민감성. 이들은 일이 하기 싫어 몸을 꼬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들은 열정적이고, 언제나 잘하고자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에 가깝다. 가끔은 편안하게 자신을 맘껏 놓아주면 좋으련만. 세상이 녹록하지 않은 만큼 그들은 자신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우리는 일을 통해 스스로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힘들더라도 때때로 느껴지는 재미, 즐거움, 보람이 있다면 계속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마치 그것만이 전부인 듯 과도한 열정을 쏟아붓는 사람들이 있다. “열정에 ‘과도함'이란 게 있나요?” 만약 ‘과도함’이라는 수식어에 의문이 든다면, 번아웃에 주의해야 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들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닌, 신념에 따라 하는 일은 지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고대 기독교 사회에서는 묵묵히 성자의 길을 밟는 수도승이 겪는 무기력을 ‘아케디아'라고 불렀다. 아무리 독실한 수도승이라도 과도한 열정과 노동에서 오는 탈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기독교 사회에서는 번아웃을 ‘신에 대한 영적 나태함’으로 여겼다. 신앙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넘쳐 ‘나태함’이 되다니,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실제로 이들에게 아케디아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이는 단순한 회의감을 넘어 종교적 믿음까지 파괴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일에 대한 과도한 열정은 일 중독(workaholic)으로 연결되기 쉽다. 일 중독에 대한 의학적인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일에 대한 강박적, 의존적 성향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일 중독은 번아웃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처음 ‘번아웃’은 마약 중독 환자들이 ‘강한 중독 성향을 보이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프로이덴버거 박사(번아웃이라는 용어의 범위를 확장시킨 독일의 심리학자)는 과도한 일로 피폐해진 의료진들의 일 중독 성향이 마약 환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일 중독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번아웃되고, 번아웃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일 중독 성향을 보였다.      


  워커홀릭들에겐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들에게서 특히 자주 발견되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완벽주의’ 성향이다. 이들은 완벽을 추구하느라 적절한 때에 ‘스위치’를 끄지 못한다. 특히 창조적인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성향이 강한데, 경쟁이 치열한 분야일수록 이런 성향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자신만의 ‘완벽의 세계'를 끊임없이 현실에 대입한다. 이들의 집착과 몰입이 때로는 완벽에 가까운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다양한 변수로 가득한 세상에서 ‘완벽’이란 허상과 같은 것이다. 세상과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에게 언제나 높은 기준을 들이대는 이들에게 ‘여유’가 들어설 틈은 찾아보기 어렵다.     


  완벽을 삶의 돌파구로 삼은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애초에 일 중독 성향이 있다기보단 성취를 위해 스스로 완벽주의를 ‘선택한’ 사람에 가깝다. 내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었다. 언제나 노트에 날짜와 시간,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를 빼곡히 적었던 사람.


  “와. 장난 아니다. 과장님,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남자들을 이기려면 어쩔 수 없어. 하도 말을 바꾸니까. 너도 이 회사에서 오래 있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될 거야. 회의 때마다 녹음은 필수야. 알지?”


그녀는 내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옆 부서에서 일했던 선배였다. 업의 특성상 남성의 비율이 매우 높았던 회사에서 선배는 남자 동료들에게 밀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정당한 평가와 대우를 원했지만 매번 편파적인 인사고과 때문에 불이익을 얻고 있었다. 철두철미한 업무는 기본이고 외근, 지방 출장, 흡연시간, 술자리 등 선배는 무조건 남자 동료들과 같은 조건에서 일하려 했다. 노력해도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 환경이 선배를 치밀한 완벽주의로 만든 것이었다.     


  후천적인 이유가 아닌, 번아웃이 오기 쉬운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도 있다. 일레인 아론 박사는 고도로 발달한 신경계를 타고난 사람들을 ‘초민감자, Highly Sensitive Person(HSP)’으로 정의했다. 아론 박사에 따르면 전 세계의 15~20% 정도의 사람들이 이런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들은 아주 조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는 센서(sensor)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의 뇌에서는 언제나 넘쳐나는 정보들을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미묘한 소리, 냄새, 진동, 타인들의 반응 등 남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이들은 계속해서 느끼고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계속 신경이 쓰이다 보니, 남들보다 쉽게 지치고 스트레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신념에 어긋나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부당한 줄 알면서도 조직의 이윤 때문에, 상사의 지시 때문에, 자신의 실적 달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다 보면 자존감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한 개인이 잘못된 인식, 고정된 사고관, 부적절한 시스템 등을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하다 보니 ‘이게 아닌데’ 싶은 일들을 외면하기 어렵다. 권력에 저항하다가도 몇 번의 좌절을 거듭하다 보면 점차 무기력을 학습한다. ‘어차피 안될 거야’라는 생각에 갇힌 사람들은 더 이상의 저항 없이 그저 살아간다. 자신을 구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음으로써 학습된 무기력의 덫에 빠진다.     


  번아웃은 ‘과도함’의 병이다.


일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은 뒷전인 사람들, 성취에 매몰되어 자신이 곧 일이 되어버린 사람들, 살아남고자 완벽주의를 선택한 사람들, 타고난 민감성을 억누른 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들, 인간성이 고갈된 조직에 순응하는 사람들.


당신의 ‘과도함’은 어디에 있는가. 어느 쪽이든 좋으니 스스로 질문해보자.      


‘그것이 내 건강과 바꿀 만큼 꼭 필요한 일이었는가?’
‘건강을 잃는다면 나는 무엇을 잃게 되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좋은 사람인가?’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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