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법무법인 사이 Feb 26. 2024

반성했나요

형사재판의 '반성'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형법 제51조 본문 및 제4호는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범행후의 정황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재판실무상 범행후의 정황에는 ‘진지한 반성’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양형에 내심의 주관적 사정에 해당하는 ‘반성’을 고려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 종종 논란이 됩니다.


사실 내심의 영역에 있는 '반성'의 진위를 가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무거운 형량에 대한 두려움에 떠는 것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언뜻 봐서 구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또 피고인이 마음먹고 반성하는 척하면서 재판부를 속이려 한다면, 그 시도가 꼭 실패하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사건들을 놓고 각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내어놓는 반성의 진위를 살피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기에는 재판인력의 현실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법원으로서는 피고인이 반성하는지 여부를 눈대중으로 때려맞힐 수는 없으니 객관적인 근거를 필요로 하기 마련이고, 피고인들은 반성문을 제출하거나 기부금을 납부하고 그 영수증을 제출하는 것으로 자신의 반성을 입증해왔습니다.  이러한 관행은 ‘반성문 대필 업체’라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기괴한 산업까지 만들어냈습니다.  일정 금액을 내면 행정사, 작가 출신들을 동원하여 그럴듯한 반성문을 작성해주는 업체들이 성행하게 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AI를 통해 작성한 탄원서가 문제되는 경우도 있었죠.  주관적인 반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려 하다 보니 그 입증과정을 누군가에게 위탁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제겐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최근 반성과 양형 논란에 다시 한번 불을 붙였던 것은 n번방 사건의 주범인 조주빈입니다.  조주빈은 재판에서 100장이 넘는 반성문을 쏟아냈는데, 반성문을 통해 감형을 노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지만, 실제로 항소심 판결 전후로 반성문의 태도와 내용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재판에서의 반성문의 의의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참고로 2019년 기준 성범죄 사건 기준 전체의 70.9%가 진지한 반성을 이유로 감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2년 ‘진지한 반성’의 기준을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피해회복 또는 재범방지를 위한 자발적 노력 여부 등을 조사, 판단한 결과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고 정의하면서, 반성문이나 기부금만 따지는 기계적인 반성 감형을 자제하고 반성의 진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였습니다.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한편으로는 법관에게 기준에 따라 반성 여부를 충분히 살펴볼 수 있는 시간도 함께 주어져야 실현 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판사, 검사, 피고인 삼자 구도의 형사재판에서 피해자의 지위 보장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피고인의 반성은 대체로 재판장, 검사를 향할 뿐 피해자를 향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 ‘밀양’에서 자신의 아들을 납치하여 살해한 납치범을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에 찾아간 신애는 하나님이 이미 자신을 용서하였고 새 삶을 살고 있다는 납치범 종찬의 말에 충격을 받아 쓰러지고 맙니다.  신애는 “어떻게 용서를 해요, 하나님이 벌써 용서하였다는데.. 내가 어떻게 용서를 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용서를 해야지..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해요”라고 울부짖습니다.  반성에 의한 법원의 감경을 바라보는 피해자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같은 이유로 많은 시민단체들은 피해자의 회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반성을 양형기준에서 빼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반성이란 요건이 반드시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만 작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자신의 방어권을 충분히 행사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지만,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변론이 자칫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오인되어 소위 ‘괘씸죄’가 적용될까 하는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정말 억울한 마음이 있더라도, 끝까지 무죄를 다투었다가 혹여나 반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양형이 크게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일단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여 감형이라도 얻어내고자 다툼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방어권 행사가 반성의 결여로 오해될 소지를 매번 짚어보게 됩니다. 


관련하여 법원은 “형법 제51조 제4호에서 양형의 조건의 하나로 정하고 있는 범행 후의 정황 가운데에는 형사소송절차에서의 피고인의 태도나 행위를 들 수 있는데,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으므로(헌법 제12조 제2항), 형사소송절차에서 피고인은 방어권에 기하여 범죄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거부하거나 거짓 진술을 할 수 있고, 이 경우 범죄사실을 단순히 부인하고 있는 것이 죄를 반성하거나 후회하고 있지 않다는 인격적 비난요소로 보아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결과적으로 피고인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이 되어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나, 그러한 태도나 행위가 피고인에게 보장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객관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진실의 발견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시도에 기인한 경우에는 가중적 양형의 조건으로 참작될 수 있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01. 3. 9. 선고 2001도192 판결 참조)”라고 판시하여 일응의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고인들에게는 반성이란 기준이 적극적인 자기 변호를 하는 데 크나큰 장애물로 기능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반성과 양형에 대한 입장은 형벌을 이해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형벌의 목적을 이미 저지른 잘못에 대한 보복과 정의에서 찾는 사람들은 사후 정황인 반성을 고려하면 안된다고 볼 가능성이 높고, 앞으로 저지를 잘못에 대한 예방에서 찾는 사람들은 반성을 이유로 하는 감경에 찬성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할 것은 아니지만, 형사재판에서 법관의 양형은 형사 사법 체계 전반에 대한 일반 국민의 신뢰를 좌우하는 핵심적인 영역이고, 일반인의 감수성은 전자, 즉 보복감정에 가까운 면이 있다는 점은 정책 설계에 고려될 필요가 있습니다.  양형이 일반 국민의 보편적인 감수성에서 멀어질수록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덧붙여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입장에서는 피고인의 자백과 반성을 통해 통상 유죄의 결론을 얻기 위해 소요하는 사법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성에 부여하는 인센티브를 통해 결과적으로 사건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정책적인 의의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짐작합니다.  반성과 감형이 사법시스템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지불되는 비용 정도로 기능한다면 수사기관이나 법원 입장에서도 이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족인가요? 이쯤에서 글을 맺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공부로 동료가 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