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려 평전
새해가 밝으면, 처음 떠오르는 해를 보러 일출 명소에 가거나, 유명한 사찰이나 기운 좋은 장소에 가서 그 해의 복을 빌거나, 사주나 신점을 보면서 운을 가늠해보거나, 작년의 소회와 올해의 다짐을 친구와 공유하면서 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는 등 사람들은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1년의 첫날을 맞이합니다.
저도 매년 새해가 되면 하는 루틴이 있습니다. 의사 장기려에 대한 평전인 장기려 그 사람, 의사인 이태석 신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에리히 프롬의 명저 소유냐 존재냐 등을 다시 살펴보면서 작년 한 해 동안 게으름, 욕심, 사특한 마음 같은 것들로 인해 흐트러진 자세와 마음을 되살피고, 원래 가려던 길로 스스로를 되돌려놓기 위해 애씁니다. 매년 점점 더 가던 길에서 멀어지기만 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부단히 살펴봅니다.
그 중 장기려 그 사람의 전면 개정판인 장기려 평전이 작년 출간되었습니다. 제목과 표지만 교체한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전면 개정판이어서, 저자의 입장이나 서술된 내용에 꽤나 유의미한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새해는 새로 나온 장기려 평전과 함께 시작했습니다.
"의사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임하는 사람입니다. 돈과 명예에 집착하지 말고 인간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일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이 앞서 지나간 길은 누구든 (방법이나 방향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곱씹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 인생의 어려움을 직면하여 도움을 호소할 때 자신이 가진 전문성과 기술로 그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을 업의 본질로 하는 전문가라면 보다 배우고 흉내낼 지점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는 있겠습니다. 좋은 의사의 길은 누구에게나 귀감이 되기 마련이지만, 변호사가 사표로 삼기에도 참 좋습니다.
"나는 의학도가 되려고 지원할 때에 치료비가 없어서 의사의 진찰을 받지 못하고 죽는 환자가 불쌍하다고 생각이 되어 그러한 환자를 위하여 의사 일을 하려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의사가 된 날부터 지금까지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위한 책임감이 증대될 뿐 아니라 잊어버린 날은 없었다. 나는 이 결심을 잊지 않고 살(일하)면, 나의 생애는 성공이요, 이 생각을 잊고 살면 실패라고 생각하고 있다. 성공적 삶이란 첫째로 하나님의 사명을 자각하고, 어떠한 경우에서도 그 결심을 변치 않고, 실천 매진하는 데 있다. 그 일의 성과와 가치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국민 대중에게 돌리라."
다만 장기려가 살아간 인생은 범인에게는 흉내조차 내기 벅찹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우수한 실력을 가진 의사로, 누구나 탐낼 만한 자리들이 주어져도 이를 모두 마다하고, 남루한 조건으로 시작한 병원에서 그나마 받는 급여도 어려운 사람들한테 나누어줘버리고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까지 물건 몇 개 남기지 않은 옥탑방에서 지낸 모습은 조금도 탐나지 않습니다. 남긴 재산이 천만원 든 통장 하나, 그것도 간병인에게 주어버리고 떠났으면서, 자신에게 가진 것이 많다고 하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어려운 환자에게 치료비를 받기는커녕 모르는 사람에게도 냉큼 자신이 가진 것을 주고 마는 모습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특히 획일주의와 전체주의의 탑 꼭대기에 경제적 이익의 추구라는 지향을 가지고 눈 먼 채 달려가는 세태에는 더욱 어렵고 낯설게 보입니다.
돌이켜 20세기의 문화를 자랑하는 현대인은 어떠한가? 현대인은 언행의 일치를 기하되 행실 뿐 아니라 말까지도 선하지 않음을 귀히 여기며, 위선을 꺼려하는 고로 공연하게 불의를 말하고, 비례를 행하면 도리어 솔직하고 철저하다는 사회의 찬탄을 받는 세상이다. 현대인은 도의의 근본을 파괴하고 선의 표준의 전복함으로써, 청천백일하에 불의를 감행하여, 위선의 필요성을 없이 하였다. 오호라. 이제는 위선도 그리운 세대로다(김교신)
내 삶이 사실은 오로지 사적 이익 극대화를 향해 전력투구하는 삶에 불과하면서, 발끝도 따라가지 못할 사람을 '패션'처럼 언급하여 그 분에게 누가 될까 염려됩니다. 김교신의 글을 떠올리며 위선으로나마 지침 삼을 용기를 겨우 냅니다. 이병혜는 장기려의 아들 장가용과의 인터뷰 후에 '아들이 본 아버지 장기려 박사의 의사로서의 삶은 어찌 보면 시대가 만들어낸 성인 같은 의사지만 온전하게 따라가기보다는 얼마만이라도 참 의사로서의 삶을 닮아가기로 한다면 그 자체로 보람이라는 생각이셨다'고 기록한 점이 위로가 됩니다. 다만 흉내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고민이 있습니다.
"인술이 다른 거 아닙니다. 자기 눈앞에 나타난 불쌍히 여길 것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인술하는 사람이에요. 누구나가 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거예요. 다만 하는가 안하는가 그것의 차이지 인술할 마음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1989년 인터뷰)
방법에 대한 고민이 무색하게, 장기려는 실천을 강조합니다. 장기려가 인생에서 내린 결단과 그 실천들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설립한 것처럼 위대한 업적 뿐만 아니라, 사소하고 소소한 선택과 결단들 하나하나까지도, 그 자리에 나를 대입해보면 결코 쉽지 않은 결정들 뿐입니다. 지금 내리는 결정이 실현 가능한 것인지, 이후로 닥칠 불이익은 어떤지, 선택을 하지 않았을 때 누릴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할 수 있는지, 선택 후에 닥치는 미래가 두렵지 않은지 등 여러 고민들을 이겨낸 것이라는 점이 존경스럽습니다.
난 언제나 또한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그 동기가 좋고 방법이 정당하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온 것 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그의 뜻대로 이루어 주시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특히 결과를 묻지 않는다는 말은 울림이 큽니다. 선행은 기본적으로 손해보는 것입니다. 단지 내 것을 내어주는 것이 경제적 손해의 발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한한 선의와 끝없는 나눔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과 행동이 상대방이나 주변의 오해나 미움을 사기까지도 하니,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러나 손익을 고려하지 않는 선행을 계속하려면, 최종 인정이라는 궁극적인 이익마저도 내려놓고, 그 결과에 상처받고 무너지지 않는 꿋꿋함이 필요합니다. 후지이 다케시의 '패배의 승리'도, 장기려의 유명한 아래 아포리즘도, 결코 가벼이 써내려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의 세계는 나의 사랑하는 곳에 있다. 그것은 나의 영원한 왕국이다. 아무도 빼앗지 못한다.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슬퍼하지 말라. 우리는 자진해서 사랑하자. 그러면 사랑을 받는 자보다 더 나은 환희로 충만하게 되리라."
한편 놀라운 것은, 장기려가 걸어간 길이 홀로 걸어간 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장기려가 "복음병원은 전재민과 가난한 환자들의 치료를 위하여 출발한 것, 처음에 천막 셋과 직원 7명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건평 약 2111평의 4층 건물과 직원 210명의 큰 병원으로 되었다. 겉모양을 볼 때 근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현실에 도저히 만족할 수 없다. 그것은 처음에 충만하였던 긍휼히 여기는 자비심이 벌써 사라지고 자기 중심주의로 되는 경향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는 까닭이며, 또 하나의 건물과 규모가 커짐에 따라 유지비가 많이 필요하게 되므로 수입을 올려야만 되게 되었다. 수입을 올려야만 되게 되므로 기업적으로 되게 되고 그래서 큰 건물과 시설을 갖추도록 힘쓰게 된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또한 결국 병원 측으로서는 병원장 정년을 낮춰가면서 장기려를 퇴임시키기에 이른 것처럼, 장기려의 많은 결단들은 주변의 지지를 받기가 여간 어려운 것들이 아닙니다. 배임이란 말을 듣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입니다.
이번 평전에서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은 복음병원을 시작할 때 직책이나 나이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월급을 지급한다는 취지에 따라 병원장과 식구 수가 같은 앰뷸런스 운전기사가 같은 월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산정현교회에서 출발한 그 상상의 파격도 놀랍지만, 그에 대해 구성원의 동의를 받아낸다는 것이 여간한 뚝심과 신념, 주변의 장기려에 대한 주변의 지지와 확신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그 행간에 담긴 의사결정의 과정이야말로 존경스럽습니다. 장기려가 가진 결단력과 실행력이 결코 적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물론 그러한 실행은 좋은 동료와 함께 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장기려는 "돌이켜보면 별 능력이 없는 내가 그런대로 대과 없이 일을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내 주위에는 위에 말한 제자들 뿐 아니라 유능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만날 동료에 대해서도 많은 기대가 있습니다.
"의학공부는 철저히 하셨어요. 그러니까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를 하더라도 실력 있는 의사가 되어야지.. 저는 학생들한테도 그런 얘기하거든요. '실력 있는 의사가 돼서 봉사를 해야 그 환자가 덜 불쌍하지, 가난한 사람들이 실력 없는 의사한테 진료를 받으면 더 비참하지 않느냐!'고 생각하시고 공부를 하셨던 것 같아요."(장가용, 이병혜와의 인터뷰 중)
장기려가 얼마나 선한 마음으로 선행을 해왔는지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전문가'의 선행은 반드시 전문지식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능력없는 선의로 피해자를 두 번 울리는 일들은 종종 있습니다. 전문성의 극대화를 통해 의뢰인에게 최선의 결과물을 제공하겠다는 사이의 다짐은 그러한 실태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저 착하기만 한 전문가는 사실 착한 것도 아닙니다. 마음만 따뜻한 전문가의 열정은 명예욕이나 다름없는 껍데기 뿐인 선의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악행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사안을 전문적으로 바라볼 능력이 없어 끝내 뭐가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기려의 학구열은 단지 그가 우수한 성적과 유능한 실력을 가졌다는 점을 증빙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70이 넘어서도 대학원생과 함께 강의를 들으며 새로운 의학지식 습득에 나서고, 수술 직전에는 반드시 해당 의학서적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수술실에 들어간 장기려의 모습은 전문성이 결여된 선행이 얼마나 후진 것인지 잘 알았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그 후부터는 나는 환자를 진료하면서 '내가 환자 자신이라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아졌다. 특히 수술을 권할 때는 '나같으면 이 병으로 수술을 받겠는가?'하고 자문자답을 해보고 결론을 내린다. 신체 부분을 절제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두고 경과를 본 후 결정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할 때도 환자가 곧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면 거의 틀림없이 올바른 판단이 내려지게 되는 것을 종종 경험하고 있다. 의사가 환자를 자 기와 동일화시켜 진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장기려는 환자를 진료할 때 '내가 환자 자신이라면'하는 생각으로 진료를 했습니다. 또한 이만열은 "예수가 의사였다면 이런 때 어떻게 했을까"를 끊임없이 물은 결과였다고 평가합니다. '내가 환자라면', '예수가 환자라면', '예수가 의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고민과 마음가짐을 바탕에 두고 환자를 대한 것이 장기려가 전문가로서 보여준 태도의 근원입니다.
십자가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세워 두거나 달아 놓거나 달고 다닐 것이 아니라 악의 세력과 싸우는 십자가를 져야 한다. 유형적 십자가를 표방하는 것은 자기는 십자가를 지지 않는 담담한 표정이다. 희생적 사랑은 세계평화를 이룩하고야 말 것이다. 너희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
마찬가지로, '내가 의뢰인이라면', '이 의뢰인이 예수라면', '이 의뢰인을 맡은 변호사가 예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업에 임하는 것은 평생에 걸쳐 되새길 만한 자세입니다. 그리고 겉으로 어떻게 표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마 장기려가 수술과정에서 일으킨 잘못에 대해 겸허하고 진실된 모습을 보일 용기도 평소 가진 의사로서의 자세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느 해 설날이 되어 제자들(북에서 같이 월남한 사람들)이 장기려 박사를 찾아와 세배를 하였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그중에 총명하기는 하지만 욕심이 많은 제자가 염려되어 덕담을 했습니다. “여보게, 올해는 날 좀 본받아 보게나.” 그 제자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스승님을 닮으면 바보 되게요.” 장기려 박사는 허허 웃으시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바보 소리를 듣는 것 보니까 이제 성공한 것 같구만. 여보게, 세상에서 바보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자네 아는가?”(한겨레, 문병하 칼럼)
장기려는 "5학년 졸업할 때는 입학시험 합격할 자신도 없었을 뿐 아니라 가산이 부채로 몰락하게 되므로 학비가 큰 문제가 되어 경성의전을 택했고, 만일 입학하게 되어 의사가 된다면 의사를 보지 못하고 죽는 가련한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서원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생을 불태웠습니다. 그 꿋꿋함은 새해에 다시금 일으키는 개인적인 다짐과 역사가 길지 않은 법무법인의 1년 계획에도 많은 참고가 됩니다. 그러나 결국 실천의 문제일 것입니다.
장기려가 살아온 인생의 여러 순간에 변호사로서의 나, 법무법인으로서의 우리를 대입해보면서 읽었습니다. 올해는 아주 조금이나마 따라갈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바보로 사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다만 작은 부분에서나마 그럴 수 있길 바랍니다.
새해의 시작으로 아쉬움이 없었던 장기려 평전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