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떡볶이 사이에서, 100페이지를 되살려낸 72시간
Dear Seon,
It’s been a rather tough stretch, hasn’t it?
Even in life’s hardest moments, light finds a way through. And your sun is nearly here.
The GitBook operations team will be in touch with you shortly.
Wishing you the very best of luck.
Take care,
안녕. Seon.
참 고생스러운 나날이다 그렇지?
인생이란 게, 참 힘든 날들 속에서도 어떻게든 해는 비치더라.
깃북 운영팀이 너에게 곧 연락할거야.
행운을 빌게!
- 깃북 본사 전 경영진으로 부터 받았던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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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년 전 쯤에 회사 전체 소프트웨어(솔루션) 설명 가이드를 날려먹은 일이 있었는데 그 회사는 자사 솔루션이 3-4개정도가 되었어서 해당 가이드북들이 전부 깃북에 저장되어 있었다.
가이드북 수정 때문에 깃북을 만지다가 뭐에 홀렸었는지... 나는 내가 테스트중이던 깃북 스페이스를 삭제하려고 했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DELETE 버튼을 눌렀다가 해당 깃북 계정 전체가 폭파된 일이 있었다.
삭제를 누르고 나는 .. '뭐지? 이게? 꿈인가?' 하고 그때는.. 정말 사색이 되어서 해결되기 전 까지는 밥도 제대로 못먹겠고 안색도 안좋았고 지나가며 동료들이 다 힘내.. 라고 말을 걸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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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서들은 당시 운영팀 매니저님이 모두 혼자 작성해주셨는데, 제일 먼저 매니저님에게 사과를 드리고 나는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 문서들은 당시 CS 운영팀 매니저님이 모든 내용을 혼자서 다 작성해주신 거였고, 나는 제일 먼저 매니저님께 사과드린 뒤 어떻게든 복구 방법을 찾아야 했다. 100페이지가 넘는 설명서를 처음부터 다시 써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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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고객센터에 연락해 '실수로 삭제했는데 복구해주세요'로 요청 메일을 보냈는데, 당근 칼 거절 당했다. 나는 번역기를 붙들고 어떻게든 '대체 왜! 소프트웨어인데!! 서버에 기록이 남았을 거 아니야! 삭제 되도 남아 있는거 다 아는데ㅠㅠ 제발 해줘!' 라고 2차로 보냈지만 무시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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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들을 날려먹고 정말 한 3-4일간은 집에 도착을 해도 잠도 못자겠고 이걸 대체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를 밤새 고민하다가, 삼일째 되는 날 새벽에 번뜩 깃북 재직중인 분들 모두에게 링크드인 메시지를 보내봐야 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무작정 링크드인을 키고 @gitbook 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회신이 올까? 라는 생각이 크긴 했지만 ..)
그날은 그렇게 링크드인에 재직중/퇴사하신 분으로 등록된 모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그 다음날은 구글링으로 재직중/경영진/퇴사자 상관 없이 깃북에 근무 했다고 하는 분들의 이메일을 찾아서 그 분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링크드인으로 보낸 메시지에 어떤 재직중인 직원 분이 반응해주셨지만.. 실질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고.. 그렇게 절망을 거듭하던 중, 이메일 발송 이틀 후인가.. 새벽에 내가 보낸 이메일에 한 분이 답을 주셨다!!! 그 내용이 바로 아래 내용이다. (ㅠㅠ 원본 이메일을 고이 보관했었는데 어디에 둔지 모르겠다. 최대한 기억나는 내용을 적어본다. 표현은 정확하진 않지만, 영국식 표현이 강하게 느껴지는 문장들이었다.)
Dear Seon,
It’s been a rather tough stretch, hasn’t it?
Even in life’s hardest moments, light finds a way through. And your sun is nearly here.
The GitBook operations team will be in touch with you shortly.
Wishing you the very best of luck.
Take c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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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Seon.
참 고생스러운 나날이다 그렇지?
인생이란 게, 참 힘든 날들 속에서도 어떻게든 해는 비치더라.
깃북 운영팀이 너에게 곧 연락을 줄거야.
행운을 빌게!
새벽에 이 메일을 받고 집에서 말그대로 소리를 질렀었는데 환희의 샤우팅 이후 이어지는 나의 감상은 진짜 영국인 다운 이메일이다(찾아보니 그 분이 영국분이셨다.)하는... 메일을 참 시적으로 쓰네 라는 느낌을 받았다. (괜히 이런 점을 배워야 겠다 생각..)
당일 오후 시간에(한국 시간 기준) 깃북 운영팀에서 메일을 받고, 메일 수신 후 3시간 내로 삭제한 100여개의 가이드 문서 파일을 전부 깃허브로 복구받을 수 있었다. (하나도 빠짐 없이, 백업 파일도 생김)
이 일을 마치고서, 퇴근 후에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집에가서 떡볶이랑.. 튀김이랑.. 세상 맛있게 먹었다 ..
이 일은 아직도 주변에서 하하 호호 하며 지나가는 에피소드로 남아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는 가장 뿌듯한 일 중 하나다. 위기 상황을 해결했냐? -> YES, 그렇지만 내가 자처한 위기상황 ....
내가 자처한 스스로의 위험이지만 어떤 것들을 배울 수 있었냐면
- 가능성이 10%밖에 없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는 일은 드물다.
- 내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 발버둥치기보다, 생각의 틀을 바꾸고 시야를 다르게 가져보려는 시도가 훨씬 더 강력한 해결책이 된다.
- 언어의 장벽? 간절함 앞에서는 별 의미 없더라. 진심이 있다면 뜻은 다 통한다.
-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태도와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내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임했을 때의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제일 큰 배움은 '삭제'버튼을 누르지 말자.^^
뭐 전부 자기계발서에 나올 것 같은 배울점이지만.. 현실로 체감하니 문장이 와닿는 느낌이 다르더라.. 실제로 이 이후 왠만하면 나는 업무로 연관된 사이트들에서는 모든것을 지우지 않고 다 백업으로만 둔다.
이 일은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생각나는 에피소드 중 하나인데, 특히 왠 얼굴도 모르는... 어쩌면 스팸처럼 보일 수도 있는 보낸 이메일을 확인하고, 또 그에 친절하게 답변해준 모 깃북 전 경영진님과 .. 그 오더에 맞춰서 발빠르게 복구를 진행해준 깃북 운영팀. 정말 대단했다. (뭐.. Boss 가 오더 한거니까 (지난 사장님 이라고 해도..) 빠르게 마무리 된거겠지 싶긴 하지만..)
무엇이든 포기하지 않고 해결하는 의지가 얼마나 개인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는지 알 수 있게 해준 교훈과 함께, 영어도 어설프고 예의도 부족했던 나에게 시적인 표현과 함께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얼굴도 모르는 그 분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