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second-hand book, or e-book
오랜만에. 느낌 상 아주 아주 오랜만에 산 신간. 중고도 아니고 이북도 아닌 새 실물 책을 다시 사게 될 줄, 사실 몰랐다. 책, 이제 거의 안 사게 될 줄 알았는데. 못 참고 조금씩 또 야금야금 사고 있다(거의 중고와 이북). 편집은 우선 훌륭하다. 가격은 18,600. 비싸서 더 탐스러웠다. 비싸서 더 먹고 싶은 쉑쉑버거와 같은 책.
음대생이 어딘지 사람이 비싸 보이는 것처럼. 책도 음대생과 같은 책이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예술 분야의 책들은 대체로 약간씩 좀 비싼 편인 것 같다. 하지만 사실 문학 책보다 그렇게 꼭 재밌지는 않을텐데. 혹시 비싼 돈으로 배우고 경험했기에, 비싼 돈에 팔겠다는 것이라면 그것은 숭고한 예술 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 정신 아닌가. 물론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가면 원가는 올라가겠지만. 다 모르겠고, 예술 분야 책이 비싼 것에 대해 별로 탐탁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20대에 다니던 대학에는 음대 단과대 건물이 학교에서 거의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도도하게도 너무나 한참 높은 곳에 있었다. 내가 주로 수업을 듣던 건물은 교문보다 약간만 걸어올라가면 되는 정도의 고도에 있던 사회과학관이었고. 때문에 난 음대를 거의 갈일이 없었다. 음대 전체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내가 속한 기독교 동아리의 대표 학생 한명뿐이었다. 그 여자애가 졸업연주회를 할 때 딱 한번 음대의 광휘를 느껴볼 수 있었다.
나는 사회과학관에서 대학원관으로, 또다시 학생회관으로, 수업에 늦을 세라, 캠퍼스 예배에 늦을 세라, 점심 시간이 끝나서 학생식당이 문을 닫을 세라 뛰어다녔다. 내 이마에는 송골송골 늘 땀이 맺혀있었고, 체크무늬 남방도 살짝 젖어있곤 했다. 나의 분주한 캠퍼스 생활과 달리 음대생들은 대체로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나는 혼자 발바닥이 뜨거워질 정도로 캠퍼스를 바삐 다니다가 스치듯 음대생을 목격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들은 고고해 보였다. 우아한 한 마리 백조처럼 또각또각 예쁜 구두발 소리를 내며, 큰 오르막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정장 류의 단정한 옷에 악기 가방 같은 것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언론영상학부였던 난 음대생의 도도함과 고급스러움이 좋으면서도 약간 볼성사납기도 했다. 허세라기보다 허상처럼 보였다. 예술 관련 학과 학생들이 추구하는 예술이 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예술이라면 무엇이든지 목말라하고 동경하며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곤 한다. 예술은 신학과 마찬가지로 어떤 숭고한 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도 난 언론영상학부를 사랑했다. 돌아보니 난, 그랬다. 공부는 하나도 안 했지만 광고학과 교수님이 너무 멋있었고, 쉬는 시간에 건물 밖에 서서 담배 피는, 손톱이 긴 여자애들도 멋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젊음은 그 자체로 빛나는 것이었다. 그 여자애들도 그걸 좀 알았어야 했을 텐데.
언론영상학부 아이들은 찌질한 가운데서도 뭔가 치열하게 노력하는 애매한 엘리트들과, 정말 모범생 스타일과, 아니면 정말 그냥 찌질하기만 한 아이들이 아무 규칙 없이 뒤섞여 있었다. 모두가 혼란스러워 했고 모두가 특별한 꿈을 갖고 있었다.
이 눈부시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빛나는 젊음에 대해, 그리고 ‘언론영상학’이라는 광대하고 추상적인 전공에 대해 모두가 혼란스러워 했다. 겉으로는 모범생처럼 보이거나, 끼많은 기자나 방송 pd처럼 보이더라도, 내면적으로는 모두 불안해 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것을 미세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젊음은 아직 너무나 눈부신 것이기에, 아직 아무 꿈도, 어떤 날개도 접을 수가 없는. 그 시절의 언론영상학부 학생들은 참으로 신비로운 존재들이었다.
조모임을 해보면 몇몇에게서는 독특하고 특출난 끼가 보이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그냥 대학생이었다. 굳이 언론영상학부라고 하지 않더라도, 다른 어느 과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어리고 싱그러운, 무색무취의, ‘그냥 대학생’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 한 과에 모여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성원들에게서 일정한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다들 날라리 같았고, 학교를 공허하게 느끼는 방랑자들 같았는데, 조별 실습 등의 어떤 프로젝트에 임하는 자세나 시험기간에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모범생들 같기도 했다.
아무튼 언론영상학부는 내게 그런 느낌과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그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의 시간이 젊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무척 설레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프랑스. 파리. 그런 단어들은 내게 음대이기보다는 언론영상학부다. 프랑스, 그리고 공연 비평, 그러니까 이건 환상적이기는 하다.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무력감을 느끼는 지금의 나에게도 왠지 가슴 뛰는 단어들이기는 하다. 프랑스는 한번 가보고 죽어야지 그런 생각이 들만큼 미답의 서방 세계에 대한 미련이 있다. 자유, 사랑. 그런 것.
저자의 궤적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분명히 우울하고 또 독특한 꿈으로 하루하루 살았겠지 뭐.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제목도 정말 잘 지었어. 일단 읽어보자.
예술도 삶도 몰라도 그 안의 열정을 어쩔 줄 몰라, 소중한 젊음을 어쩔 줄 몰라, 대학원관 앞 언덕길에 서서 긴 컬러 네일을 하고 퍽퍽 담배를 피워대던 언론영상학부 여자애들처럼. 뇌쇄적이고 무기력한 눈빛으로 그냥 아무 희망 없이 읽어보자. 아무 희망이 없는 눈빛으로, 희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희망한다는 것. 고작 그런 걸 배우는 과정이 인생이라니. 인생. 정말 별 볼 일 없고 짧고 덧없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한가지 예외가 있다. 이 모든 걸 뒤집어 버리는 것, 사랑이다.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엄마의 국어는 차라리 침묵. 엄마의 유일한 언어였던 사랑은 차라리 침묵. 나의 희망과 슬픔도 차라리 침묵. 침묵으로 사랑해. 침묵으로 읽고, 침묵으로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