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을 읽으며

시편 1편

by jungsin




1

두렵다. 몸서리쳐지도록 두렵다. 아직 잠도 채 다 깨지 않은 시간. 벌써부터 세상이 두렵다. 몸이 너무나 무겁다. 9시간을 잤지만 아직도 피곤하다. 차라리 깨어나지 않았으면. 밤새 끙끙 앓으며 고민만 하다가 지쳐 잠들었다. 보일러를 약하게 틀어놓고 잠이 들었는지 몸이 으스스하다. 이불로 온 몸을 꽁꽁 싸매고 한 숨 더 잠든다.


한 삼십 분 잠들었을까. 또 깨어났다. 일어나야 한다. 오늘은 친한 여자애의 결혼식이 있는 날. 이 와중에 어젯밤에 난 구두도 닦아놓지 않았는가. 멋있고, 환한 얼굴로

q축하해줘야 한다. 친구 사진 타임에 멋진 웃음도 지어야 하고, 다른 친한 동생들과 뷔페를 먹으며 즐겁게 수다도 떨어야 한다. 이제는 정말 일어나야 한다.


바스락바스락. 부스스 눈꺼풀을 움직이면서부터 피와 절규의 서막은 시작된다. 천근만근 몸이 무겁다. 너무나 피곤하다. 피곤하지 않은데 피곤하다. 내 마음이 이제 어떤 괴이한 요괴의 것이 된 것만 같다.


마음, 마음. 난 이제 조금도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없으니, 확실히 그것은, 이제 내 것은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눈물겹고, 콕콕 아프고, 아린다. 바닥이 없는 새캄한 어둠 속 공중에서 한없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있는 이곳은 광활한 슬픔과 절망의 우주다.




2

가을 햇살이 볼을 간지럽힌다. 아침 7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다. 5시간을 잤지만 너무 달게 잤다. 온몸에 기운이 솟는다. A siNgle New DaY! 내 앞에는 새롭고, 긴 하루의 시간이 펼쳐져 있다. 모험으로 가득한 시간 속에서 난 어떤 행복을 만나게 될까.


싱그러운 풀내음이 나는 샴푸로 싱글벙글 머리를 감고, 찬 물로 어푸어푸 세수를 하고, 치카치카 양치질을 하고 흥얼거리며 오늘의 행복을 꿈꾼다. 따뜻한 드립 커피를 내리고, 한 모금. 아, 내 온몸의 모세 혈관에 고소한 커피 향이 퍼지는 것 같다. 행복이란 이런 것. 양치질과 커피와 샴푸와 의욕. 칙, 칙. 향수를 손바닥에 뿌려 푸파 푸파 머리에 문지른다. 보일러실에 놓았던 깨끗한 구두에 발을 넣고, 구둣주걱을 뒤꿈치에 대고, 스르르 미끄러지며 한 치의 구김도 없이 깔끔하게 구두를 신는다.


헤드폰에서는 조성진의 쇼팽 발라드 no. 1이 나온다. 인생은 재미로는 충분하지 않아. 의미에 관해 생각한다. 오늘의 의미. 내가 만날 여자나, 남자들과 나는 무슨 말을 나눌지, 어제 읽은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 관해 운을 뗄지, 새벽 한 시에 눈을 비비며 보았던 토트넘과 리버풀의 경기에서 손흥민이 얼마나 시원하게 골을 넣었는지 이야기할지. 어떤 것이라도 좋을 것이다. 이미 나는 행복하니까 내 행복이 그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3

나는 1번의 절망에 있다. 아등바등 발버둥 친다. 이렇게 사느니.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다이소에 가는 일조차 너무 무겁다. 공과금이 할인되는 카드로 공과금 자동납부를 신청해야 하고, 바리스타 학원 국비교육 신청도 등록해야 한다. 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 산꼭대기의 커다란 암벽 바위처럼 몇 날 몇 달 그대로 있다. 모두 때려치우고, ‘이렇게 사느니’ 뒤에 생략된 수많은 상상들을 당장 실천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난 왜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답답한 인간이 되었는가. 좀 시원하게, 남자답게, 에스파의 가죽 바지 입은 여자들처럼 넥스트 레블로 나가지 못하는가.


나는 크리스천이다. 절망의 늪을 허우적거리다 힘겹게 성경앱 버튼을 누르고 겨우 시편 1편을 열어본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에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편을 간신히 읽고, 발악을 하듯 본문을 해설한 유명 외국 목사의 경건 서적을 읽고는 골몰히 생각에 잠긴다. 마음이 나아진다. 한 모금의 따스한 커피에 노곤해지듯 신기하게도 마음의 대혼란이 잠잠해진다. 한 소뜸 죽었다. 그래도 나,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가, 도대체 왜 이러시는지, 그가 도대체 뭘 하시려는지, 그의 사랑,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어떤 고집 때문인지, 난 아직 눈물도 터트리지 않았다.


굿윌 헌팅에서의 맷 데이먼과 로빈 윌리암스의 침묵의 상담 시간처럼, 큰 소파에 파묻혀, 길게 엉덩이를 빼고 불량하게 하나님과 무릎을 마주 겨루고 앉아 있는 것만 같다. 수십 분 동안 서로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마주 보며,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던, 그 긴장과 분노와 열정의 시간처럼.


하나님께는 입도 뻥긋하지 않고, 내 눈에는 눈물만 그렁그렁 맺혀 있다. 나쁜 하나님.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정말 나쁜 하나님. 당신은 제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저는 대체 당신께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까. 또 앞으로, 저는 당신께 무슨 불경건한 짓을 저지르고 싶어 하는 것입니까.


지금 제가 슬프고 떨리는 손으로 연거푸 홀짝이고 있는 것이 만일 커피뿐이 아니라면, 당신이 보시기에 그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다시 활짝 웃을 수 있겠습니까, 좀 어떻게? rifiorore. 다시 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못하리라면 이 삶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까. 그렇지 못할 바에, 이렇게 사느니의 가정법 수십만 개가 차갑고 외롭게 나부끼는 이 블랙홀 안이 당신이 보시기에는 어떤 것 같습니까. 여러 시편의 형식이 그런 것처럼 저의 시도 탄식과 탄원을 넘어 찬송과 송영으로 끝날 수 있겠습니까, 과연?


하여튼 슬픔도, 다이소도, 삼성카드나, 1층 인테리어나, 부동산에 찾아가는 일이나, 세금이나 모두 하나님께 맡겨드리오니 홀로 높임과 영광과 찬양받으소서. 주님. 제 생각과 감정을 의의 길로, 당신의 쉼으로 인도하소서. 제 앞이 너무나 캄캄해, 이 어둠보다 캄캄함 것을 알지 못해, 이 공포보다 더 무서운 것을 알지 못해, 이렇게라도 더듬거리며 길을 찾고 있사오니. 그러하오니.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소서.


살아있는 한 아름다워야 할 텐데, 화내지 않아야 할 텐데, 그게 가장 걱정이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