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Someone different.

by jungsin


찻길가에서 한 가게를 보았다. 푸른색 외형이 확 눈에 띄었다. 보통, 빵집들은 좀 다른 파란색이거나 녹색, 검은색, 짙은 갈색, 하얀색 톤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편인데, 그 카페의 외관은 지중해 느낌의 블루 컬러를 하고 있었다.



밖에서 보기에 내부 인테리어도 참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매력적인 빵집으로 보였다. 무척 궁금했다. 다른 색과 어딘지 다른 인테리어. 제빵 실력이야 둘째 치고, 우선 무조건 꼭 한번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유는 어딘지 달라 보인다는 것뿐이었다.


핵심은 ‘다름’이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만으로도, 순간적으로 큰 궁금함을 자아냈다. 뻔하지 않다는 것이 가진 힘이 새삼 놀라웠다.


사역자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역자는 기본적으로 존재 자체로써 어떤 독특한 설득이 돼야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으려면 우선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라야 한다. 인격적으로, 궁극적으로 다르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유교 문화나 부동산과 증권, 단편적인 좌우의 이념전쟁 등, 한국사회의 거시적인 전형성에 지배받는 사람들과도 물론 달라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섬세하고 진지하게 달라야 하는 두 가지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이익’과 ‘시시비비’의 세계관이다.


현대의 한국인은 이익의 문제에 있어 매우 민감하다. 경조사부터 식사 비용까지, 놀랍도록 디테일한 계산법에 익숙한 우리다. 사역자는 우선 이익의 가치관을 가볍게 뛰어넘어야 한다. 조건 없이 집에 초대하고, 식사를 대접하고, 친분이나 이익 관계와 상관없이 기쁨과 슬픔의 자리에 달려갈 줄 아는, 그처럼 다른 인격적 조건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또한 시시비비의 감각에 민감하다. 줄을 서서 커피를 주문할 때도 뒷사람과 앞사람, 그리고 직원과의 관계에서까지 세세하게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가릴 줄 아는 감각을 지녔다. 현대 한국인은 지나치게 율법적이고 불편할 정도로 서로 예의가 바르다.


그러나 기독교의 진리는 고작 시시비비의 차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성서와 이천 년 기독교의 역사가 노래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시시비비의 감각에서 자유롭고 유연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그의 사랑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익과 시시비비를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며, 그들을 사랑하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 사역자는 바로 그러한 문제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져야 한다.


그러한 사람이 되어가는 시간 안에 있는 사람. 그는 이미 이 사회의 어떤 거대한 힘의 지배에서 벗어난, 완전히 다른 존재다. 꼭 사역자가 아니더라도, 그러한 사람이라면 푸른색의 빵집처럼, 누구나 은근히 궁금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어떤 위로를 받고 싶어지는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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