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다이빙

프렐류드

다이빙

by jungsin



다이빙



prelude




나는 글을 계속 써왔다.


그러니까 20대 후반 정도부터였을까.

언젠가부터 내 안에서 하고 싶은 말들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표현하지 않고는 간지러워 견디기 어려웠던 날들이 하루하루 지속되었고, 그런 날들 동안 나는 무언가를 계속 썼다.


하지만 습작이었다. 어디까지나, 언제나 그랬다. 나의 글쓰기에는 아무 규범도, 배움도, 제약도 없었다. 유치원생이 스케치북에 크레파스로 우주를 그리듯 쓴 것이었다.


습작으로써의 글쓰기는 목마를 때 이온 음료를 마시는 일 같았다. 해갈은 되는데, 어딘가 여전히 목마른 느낌. 마시는 순간, 빠르게 수분이 몸에 퍼지는데 아직도 물을 마시지는 않은 것 같은 느낌.


쓸수록 해갈되는 것이 아니라 목마름은 심화되었다. 나의 근원적인 목마름은 오직 ‘물’을 마심으로써만 채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고 쓰곤 했다. 허전한 감각이 정신의 저기, 어떤 감각의 끝에 있는 채 쓰는 것이다. 그 일은 고기나 계란 프라이가 없어 허전한 감각을 갖고, 불평을 꾸역꾸역 참으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먹는 엄마의 밥상 같았다. 내가 토끼냐고, 왜 반찬이 풀밖에 없냐고. 엄마 사랑해.


물이란 읽기의 세계, 순수 문학의 세계, 또 예술가(전문가)들의 세계였다. 미대에 가지 않고, 연습장에 1000 장의 스케치를 한 경험을 가진 견습생이 클로드 모네와 빈센트 반 고흐를 목말라하듯 나는 물에, 또 넓은 바다에 목이 말랐다.


쓰기 뿐 아니라 읽기에 대한 갈증을, 또 그것들에 대한 배움의 필요를, 그런 일체에 대한 목마름을 갈수록 절실하고 진정하게 느끼게 되고 있었다. 그런 감각들은 나의 영혼 속에서 점점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그럴 수 있으리라고만 생각했지,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고, 해갈할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나는 늘 갖춰진 제도와 시스템 안에서 ‘제대로’ 배우기를 좋아했고, 그렇게 배운 사람들을 인정하고, 동경하는 사람이었다.)


쓰기와 읽기, 그러니까 문학(literature)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지평에 관한 한 전통과 정통의 의미가 많이 희미하고 유연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각은 아주 오랫동안, 쉽게 유연해지지 않았다. 나의 보수적인 태도와 달리 시대는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고, (나도 모르는 새) 배움에 대해서는 특히, 더욱 전통과 정통을, 그리고 제도와 자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체질마저 달라지게 되고 있었다. 이즈음은 마침내 제도 안에서 배우는 것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던 관점을 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나에게는 나름대로 신선한 것이다.


그러니까 주어진 여건에서 글쓰기에 대해, 또 예술 또는 문학에 대해서 나름의 탐구와 연구를 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그 일은 그 자체로 나에게 어떤 독특성을 안겨 줄지 모른다. 그런 것들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들이다.


이제 그러한 목마름의 일환으로 ‘물’의 세계로의 다이빙을 하려 한다. 게토레이나 파워에이드가 아닌 물의 세계.




이 글은 다이빙에 앞선 준비운동 같은 것이다. 나는 내 안으로, 내 밖으로 다이빙하며 탐구하고 공부할 것이다.

다이빙의 방법은 여전히 쓰기와 읽기이다. (영상 정보는 피하려는 의도가 있다.)

또 가능하면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넘기며 읽어보고 싶다.

오직 쓰기와 읽기를 향한 쓰기와 읽기의 방법으로 쓰고 읽을 것이다. 독특할 것 하나 없는 다이빙이지만 ‘스스로’라는 점이 독특하다.

나 스스로 쓰고 읽으며 사유할 것이다.

추적추적 젖은 걸음으로 걷는 그런 발자국들은 어쩌면 나만의 문학적, 인격적 지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떤 수도를 하듯 나는 진지하게 이 일을 하고 싶다.



스스로.
혼자.
쓰고 읽으며,
나는 이제 물속으로 뛰어들고
그것을 마셔 보려고 한다.



그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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