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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gsin Mar 21. 2024

타임지와 로마서 공부의 공통점




마침내 들어올 수 있었다. 여덟 시 십 분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정숙하고 조용한 예배당에 목사님의 목소리만 정갈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우선은 포근함이나 어머니의 품 같은 것보다, 어떤 정숙함의 압박이 느껴졌다. 맨 뒷자리에서 몇 칸만이라도 더 앞자리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토록 낯익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예배당의 압박감을 뚫고 한 칸도 더 앞으로 밀고 들어갈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목사님과 거의 제일 먼 자리에 앉았다. 높은 단상이 있는 오른쪽 앞자리와 내가 앉은 왼쪽 맨 뒷자리 간의 거리는 이십 미터에 가까운 거리였다. 삼층 뒷자리에 앉으면 백 미터는 족히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복음교회보다는 물론 가까웠다.



다시 보니 예배당의 천장이 퍽 높았다. 높은 천장 위에는 전구색과 형광색의 작은 조명들이 예배당을 환히 내려 비추고 있었다. 교회의 눈부신 밝음. 중앙 단상 뒤 벽에 매달려 있는 유광의 은빛 십자가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오래된 장의자의 정겨움과, 십자가의 느낌을 비롯한 어떤 차가움들이 뒤섞인 익숙함- 과 낯섦.



삼일 간의 사경회 중 첫날. 마침 이제 본격적으로 주제 말씀인 로마서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당초 난 로마서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무언가가 그립고 추앙되어서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너무나도 오랜만에 또 이렇게, 이 공간에 발을 디뎠다. 그것은 교회일 수도 목사(의 품)일 수도 엄마일 수도 있을 텐데, 자신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른 채였다. 아무튼 다 아득했다. 이곳에 마지막에 왔던 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아득히 오랜만인 느낌이었다.



예배당 뒷벽에 바싹 붙은 봉사자 자리에 앉아 계시던 한 권사님께서 사경회 순서지를 내 앞으로 내밀어 건네셨다. 그리고도 왜인지 한참을 내 뒷자리 쪽에 서 계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설마 했는데 서서 손수 성경을 들고 오늘 사경회의 본문 말씀을 찾아주고 계신 것이었다. 하기는. 느지막이 가죽 재킷을 입고 싱겁게 들어온 내 모습이란 충분히 성경과 거리가 멀어 보일 법한 것이었다. 덕분에 봉사자가 성경의 본문을 찾아 건네주는 아득한 정겨움도 한번 더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하셨을 어느 권사님에 의해, 좁은 장의자 책상 위에는 실물 성경이 로마서 1장이 펼쳐 보이도록 고스란히 놓였다.



고스란히 로마서 1장이라니. 어떤 데자뷔 같았다. 눈이 부시게 같은 Time slip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어떤 길을 애우고 돌아 자꾸 똑같은 자리에 서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또는 흡사 평생의 짐 같은 것처럼. 스무 살 때 Mooc 철제 다이어리에 볼펜으로 야심 차게 눌러쓴 타임지 공부하기나 편입 단어 외우기나 토플 공부하기처럼 말이다.



고스란히 로마서 1장



영어 공부는 광풍이자 영원한 숙제였다. 학생회관 한 편의 좋은 자리에서 위용을 떨치던 타임 연구회 동아리실을 지나며 무거운 마음의 짐을 느껴야 했던 X세대의 대학 시절. 타임지는 당시에도 십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연간 구독을 신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부와 실행은 언제나 반비례 그래프를 그리곤 했고, 월간 타임지를 읽는 일은 그 그래프의 극단에 있었다. 매달 배달 온 빨간색의 얇은 타임지 열두 권은 그렇게 차곡차곡, 옥탑방의 책상 서랍 한편에 고스란히 쌓였더랬다.



타임지든, 벽돌보다 두꺼운 더글라스 J. 무의 로마서 주석이든, 신학생 때 주머니를 털어 창고개방 이벤트 날 달려가 샀던 대한기독교서회의 칼 바르트 로마서 강해 낱권들이든, 옥탑방의 낡은 책장 어딘가.. 깊숙한 어둠 속에서 여전히, 숨죽이고는 죄인처럼 숨어 지내고 있을 것이다. 장손 집안의 족보나 위험한 마법사의 책처럼 쉽게 한번 펼쳐지지도 못한 채로. 내 삶에서 타임지와 로마서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평행이론이 있는 걸까. 궁금함을 뒤로하고 기도 시간에 아련히 빠져나왔던 사경회.




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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